- T가 느끼는 오늘 -
인간관계를 네트워크 형태로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상의 주인공인 '나'를 중심으로 과녁 같은 모양이 더 쉽게 인지된다. 아마도 관계 맺기에 서툴거나 어쩌면 단순한 사고방식 때문인가 생각도 한다.
관계는 가족 같이 강제로 주어지는 것들과 선택으로 만드는 친구 같은 것이 떠오른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며 관계의 순서를 떠올리니 가장 처음이 가족이다. 가족은 강제로 주어진 관계라 가장 소중할 수도, 또 가장 끔찍할 수도 있는 관계. 우리 가족은 교과서에 나오는 다정하거나 친근한 부모님은 아니지만 나름 사람 좋은 아빠 엄마와 적당히 직장 생활하거나 결혼하거나 길은 달라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자매들이 있다. 별생각 없이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된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끔 불만이던 가족구성원들이 모두 감사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끔찍한 관계에 대해 생각난 이야기가 있어 잠시 샛길로 다녀오겠다.
지인의 어머니는 자기중심적이었고, 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였으며 심지어 딸의 명의로 돈을 빌려 사회초년생인 아이의 3년을 마이너스통장으로 출발하게 하였다. 결혼 후에도 한 번씩 경제적인 지원을 요구하였고 추후 거절당하자 친척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결국 주기적으로 사고 치는 엄마의 연락을 피하자 직장에 찾아가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나에게 본인이 엄마를 버려도 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듯싶다.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을 것 같다. 나야 당연히 손절이 답이라고 했고, 엄마가 먼저 엄마임을 포기하고 딸을 손절한 것이니 관계를 포기한 것은 엄마이지 네가 아니라 말해 주었다. 이것은 위로라기보다 사실과 분노의 조합이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날 혼자 부모 법적 손절을 검색해 보았었는데 자동검색어 인 데다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글들이 있어 내심 놀랐었다. 최신글들이 흔하게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고 답도 명확했다. 부모 자식 관계는 끊을 수 없고 접근금지 신청을 하고 가족의 개인정보(등본 초본)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 후 이사를 가는 식이었다. 가족이 있고 직장이 있는데 다 감출 수도 없을 것 같고 피해자의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 더 강한 제제가 필요할 것 같았다. 물론 이는 피해자가 있을 때의 상황이라, 별일 아닌 이유로 부모 봉양을 회피하고자 하거나, 무책임하게 자식을 버리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강제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인 듯도 싶었다.
다시 돌아와서,
다음으로 맺은 것은 어느 정도 자유롭게 선택하는 친구 관계다. 한 반에 많은 아이들이 강제로 모이는 듯싶지만 그중 내가 맘에 맞는 아이와 선택적으로 만날 수 있고, 쉬는 시간 다른 반의 친한 친구와 놀고 왔던 것을 떠올려도 선택적 요소가 더 강한 관계이다. 나와 비슷하거나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만 길게 이어오다 보니, 스스로 나름 외향적이고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의 관계들은 반강제적이라 표현하면 적당할까.
사실 관계들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직장에서의 관계 때문에 시작되었다. 새로 입사한 친구들은 적절한 시기에 커리어를 쌓기 위해 직장을 옮기는 것이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누구나 그만둘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반강제로 표현했다. 그렇더라도 한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균 1-2년 정도는 될 테고 경제활동을 30년 정도 한다고 가정할 때, 내 삶의 긴 시간이 강제적인 관계의 연속임은 분명하다. 이 속에서 무난하게 잘 지낸다는 것에 대한 정도를 아직 찾지 못해 어렵기만 하다.
스스로 인간관계에 서툴다고 느끼고 있다. 아무런 트러블 없이 잘 지내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는 유난히 어려운 사람으로 다가왔다. 상대방이 문제라면 모두 그와 대부분 나쁘게 지내야 하는데 -내가 유리하게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나와 더 유난히 나쁜 관계라면 그것은 나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 그런 고민으로 땅속 깊이 파고들었다. 만약 내가 대단한 인간이라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하고서도 나의 잘못이라면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상대방의 생각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고민이 길어지곤 했다. 트러블이 생긴 직후에는 분노와 자괴감이 뒤섞이고,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상대에 대한 비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했다. 답답함에 술자리나 친구와의 통화에서 그 분노를 표출하고 나면 분노는 사라지기 때문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 자괴감만이 남아있어 이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우울감이 뒤따랐다. 내 생각에 문제는 없는지 친구와 연인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위로받기도 했다. 여러 방식으로 쉽게 넘기는 법을 배우고 인내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제멋대로 살지 못하는 나의 무능에 대해 반성도 했다.
이렇게 긴 시간 사회생활에서 느낀 것들을 지금 정리하며 내가 흔들릴 때 다시 읽어볼 자료로 삼고 싶었다.
1. 맞지 않는 관계는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일처리에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과 성실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일단 약간의 삐걱거림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또 적당한 능력에 뛰어난 관계성으로 일을 풀어가는 사람과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독불장군처럼 혼자 일하는 사람은 서로 호감을 갖기 어렵다.
대부분 누군가가 잘못해서 틀어진다기보다 이런 관계임에도 많은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일을 해야 하는 강제성이 트러블을 부를 때가 더 많다. 나에게 문제가 없지는 않겠으나 내 눈에 정말 이상한 사람이 누군가와 잘 지낸다고 나처럼 자책하는 시간을 오래 갖진 않았으면 한다. 지금 머무는 회사에서 내가 배울 것이 있다면 내 목표가 중요한 것이지 날 화나게 하는 상황이나 사람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야 한다. 그저 너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정도의 정성만 보여주자. 우리가 친구와 가족이 아닌데 적당한 거리감에 상처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2. 트러블 있는 상황 이외의 다른 즐거운 카테고리들을 증가시켜 내 감정을 분산한다.
나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자원을 분산투자하는 것이 내 행복의 평균에 안정적이다.
회사와 집이라는 2개의 카테고리뿐이라면 회사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 50%가 우울하다. 꾸준히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 기분전환을 하는 것 등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면 회사의 화는 겨우 20%가 되고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잊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다른 것에 집중하며 보내는 시간 속에서 상황이 바뀐 것은 없을지 모르나, 문제를 대하는 내 태도는 변화가 있었다.
3. 특정 대상/비슷한 상황에 대해서 누적하여 생각하지 말고, 각각의 상황만 따로 보자.
성격이 급한 사람(=나)은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화를 낼 때가 있다. 이미 경험했던 상황이 다시 내 눈앞에서 반복될 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화가 나 있다. 특히 같은 사람이 같은 행동으로 화나게 하면 더 쉽게 게이지가 올라간다. 이는 상사나 회사 내의 관계뿐 아니라 연인, 가족처럼 오랜 시간 관계 맺기를 하는 경우라면 늘 경험하는 상황이다. 혹시 상대가 잘못했더라도 과거의 잘못은 이미 지나갔다. 우리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고, 지금 사건에 대해서만 화내는 것이 회사에서는 특히나 유리할 때가 많았다.
4. 거친 표현은 자제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구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상사의 욕은 그냥 기분전환을 위한 취미생활 같은 것이리라. 나도 분노를 절제하지 못한 적도 많이 있다. 정제하지 못한 분노를 표현하는 나를 가까운 사람들은 이해해 주고 위로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로하는 것이지 내 분노의 이유를, 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심지어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또 설명을 위해 지난 상황을 다시 떠올릴 때 기억만 학습되고 분노만 증가시키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정리를 위해서도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싶을 때도 물론 있지만, 분노를 우아하게 표현하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필요하다고 쓰는 것은 내가 잘할 자신이 없어서 빠져나갈 구멍을 주기 위함이지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5. 내 삶의 전체의 방향성과 작은 성취들에 집중하자.
특정 상황과 관계에서의 자극은 막상 내 삶 전체에서는 작은 요소일 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난 이 회사에 돈을 벌고 필요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 다니고 있다. 그 사실에 집중하면 그 사실 하나만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나의 경우는 오래 같은 회사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배움보다는 다른 배움에 에너지를 쏟기도 한다. 자존감을 올리는 것으로 공부를 생각했다. 취미로 금속공예 장식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 6개월 정도 실습을 하며 귀금속공예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또 노후에 대한 막연한 고민에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자격증은 그 자체로 목표라기보다는 작은 성취였다. 그러한 작은 성공들은 나에게 내 세상이 회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퇴사는 능력일 수 있지만 회피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불편할 때 회사를 그만둔 경험들이 여러 번 있으니까. 다만 되돌아보니 조금은 견뎌보고 해결해 보려는 시도는 해볼걸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그만두더라도 경험이라 생각하면 시도해 볼 법하다. 물론 그래도 모든 이들이 원할 때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난 그저 월급쟁이라 직장인을 더 응원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처럼 나이, 능력, 의지, 생계, 상황 그 어떤 이유로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 안에서 나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희망의 회로를 돌리라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안이던 밖이던 숨 쉴 수 있는 곳은 있어야 하니까, 그 탈출구를 다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나는 막막한 터널을 조금은 지난 느낌이고,
작은 성취들을 이제는 자존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위해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관계 맺기가 서툴고 힘들다면, 그냥 내가 잘하는 것에나 집중하자.
네가 잘하는 건, 너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