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생일, 어김없이 눈을 뜬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얼굴을 이불에 파묻는다. 나는 엄마가 싫은데 엄마는 왜 미역국을 끓여. 기어코 나와서 아침밥을 먹으라는 엄마를 무시할 만큼 모질지 못하다. 쓸데없는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로 간다. 잠시 주저앉아 눈두덩이를 문지르다 찬물에 헹군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으면 그만이야. 아빠가 이미 식탁에 앉아있다. 피하고 싶은 생일파티, 공연히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스스로 지은 이름을 고수하던 레이디 버드. 그가 자신을 다시 크리스틴이라 부르는 것은, 애써 부정하던 자신의 동네, 집, 가족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레이디 버드가 그저 '레이디 버드'로서 평생 하늘을 날길 바랐다. 새크라멘토 출신의 여자애가 아니라, 가난한 집의 자식, 엄마의 딸이 아니라 그저 레이디 버드로서. 그런데 레이디 버드는 그렇게 고대하던 뉴욕으로 떠나 다시 크리스틴이 된다. 새크라멘토 출신이자, 엄마의 딸로서 뉴욕 생활을 시작한다.
내가 엄마를 미워할 수 있을까? 당연히, 엄마가 내게 상처를 줬으니 엄마를 미워했다. 엄마에게 정을 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벌써 옛날이다. 엄마에게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린 한 집에 사는 남인 거야. 남보다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서로를 위한 말을 하지 않으니까. 머리가 큰 다음부터는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저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쉬운 방법이었다.
엄마를 부정했다. 내 삶에 엄마의 존재가, 그의 흔적이 없어도 나는 온전하다고 생각했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자란 '레이디 버드'로, 둥지를 버리고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마다 생일이 돌아온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음을 끊임없이 다시 알려준다. 엄마는 야속하게도 생일상을 준비한다. 엄마가 낳았으면서. 생일상 앞에서 맞는 뻔뻔한 아침이 매번 비참하다. 밥상 앞에서 눈물을 한 번 쏟고 나서는 다신 그러지 않도록 애를 쓴다. 엄마를 미워하겠다는 결심이 일 년에 한 번씩 무너진다.
나는 여전히 '레이디 버드'이고 싶다. 내 안의 엄마의 존재를 지울 수 있는 만큼 지우고 싶다. 그게 나를 강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크리스틴을 보고는 헷갈린다. 내가 이 집에서, 이 사람들과 살아온, 그리고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이 시간들을 과연 내 맘대로 지울 수 있는 것인지. 더욱 차갑고 단단해지려 애를 쓰다 일 년에 한 번씩 실패하는 것은, 무의식중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를 지키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더욱 밀어내야 할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여전히 어미 새를 죽이고 둥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한 마리 어리석은 새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