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기행 - 로스앤젤레스 6
만약 내가 돈을 달라는 모든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줬다면
당신처럼 거지꼴이 되었을 거요.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부자들이 있다. 금수저 환경을 자식들한테 조건 없이 그대로 물려주는 부자가 있는가 하면, 혈연일지라도 투자의 가치를 냉철하게 따져보는 부자도 있다. 영화 <올 더 머니>에 나오는 석유 재벌 진 폴 게티(Jean Paul Getty)가 바로 후자의 경우다. 아끼는 손자가 납치를 당했는데도 몸값을 협상하고, 그 와중에 국가에 납부할 세금을 감면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 내가 들어본 부자 중 가장 독특하고 기이하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긴다. 그를 보면 과연 '부자의 마인드'란 어떤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석유붐이 한창이던 1914년, 그는 23살의 나이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만 달러를 유전에 투자하여 이듬해에 백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된다. 그야말로 '백만장자'가 된 것이다. 이만하면 인류를 통틀어 가장 초고속으로 부자가 된 케이스가 아닐까. 물론 석유 사업을 하고 있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초기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아버지보다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게티 석유’를 창업하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중동 지역으로 유전 투자를 확대하여 1956년 포춘지에서 '세계 제일의 부자'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그런 대부호인 게티에게 부러운 점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인문학에 조예가 깊었다는 점이다. 학생 때 별명이 'Dictionary Getty'일 정도로 책을 좋아했던 그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뿐만 아니라 아랍어까지 능통했으며, 고전을 좋아해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덤으로 익혔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어학 실력은 중동 지역의 사업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고, 고전에 대한 애정은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취미로 이어졌다.
그렇게 모은 소장품으로 1954년에 갤러리를 품은 대저택 '게티 빌라(Getty Villa)'를 설립하였고, 그 후 점점 늘어나는 컬렉션으로 인해 곧 2번째 전시관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종합 예술 캠퍼스와도 같은 '게티 센터(The Getty)'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그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매력적이지만, 안타깝게도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시내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고 중심지에서 멀어질수록 배차간격도 일정하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는데,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다녀온 지인에 의하면 이곳만의 독특한 컬렉션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정원과 산타모니카 해변까지 보일 듯한 전망이 압권이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돈을 준다면 나머지 손자들도 모두 납치될 것이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규모의 게티 센터가 지어진 시기는 1974년도. 그리고 그의 손자가 유괴된 때는 그보다 한 해 전인 1973년의 일이다. 당시 16세였던 게티 3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영화 장면에 의하면) 방황하고 있었다. 안색과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걸로 봐서 약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 그는 마약에 찌든 아버지와 함께 유럽에서 살았으니까. 그러니 애초에 그렇게 해이한 정신 상태로 돌아다닌 손자의 잘못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몸값으로 1700만 달러를 요구해온 납치범들에게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던 게티를 냉혈한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이런 으리으리한 저택에 고가의 예술품을 쌓아놓고 살았던 그였지만, 생활 습관은 자린고비에 버금갈 정도로 검소했다고 한다. 호텔 세탁비가 아까워 욕실에서 와이셔츠부터 양말까지 직접 빨고, 손님들이 쓰는 전화비가 아까워서 집에 공중전화를 설치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그가 아낌없이 돈을 쓴 데가 바로 예술품 수집이었다. 납치된 손자의 몸값을 흥정하는 중에도 그림 한 장을 사기 위해 170만 달러를 투척할 정도였으니.
세상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적당한 값을 매기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값'과 '가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굳이 따지자면 객관과 주관의 의미가 아닐까. 값은 세상이 매겨놓은 '객관적인 숫자'이고, 가치는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매겨놓은 값'일 테니.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가치 없는 것에는 한 푼도 쓰지 않는 것은 부자든 아니든 만인에게 해당되는 공통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게티에게 손자의 가치는 과연 얼마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사실은 나도 이 부분에서는 그의 인성이 의심스러웠다. 그는 손자의 귀가 잘려 오자 그제서야 몸값을 170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로 네고하고, 그중 세금이 붙는 80만 달러에 대해서는 4%의 이자를 조건으로 아들에게 빌려준다. 그리고 상속세를 내지 않도록 공익 재단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는데, 이처럼 끝까지 계산적이었던 그의 행위가 결과적으로는 입장료가 무료인 거대한 문화유산을 인류에 남겨준 꼴이 되었다.
부자가 되는 건 쉽지만 부자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부자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돈을 벌고 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영화는 게티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 돈을 축적하기까지 남다른 생각과 습관으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돈이 많은 사람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고귀한 사람'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하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재산을 수호해서 인류 전체에 위대한 유산을 물려준 게티의 삶도 한편으로는 고귀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모든 것을 사회로 돌려놓았으니 이만한 '무소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