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희극, 끝은 비극'이 주는 대비감의 미학

뮤지컬 '등등곡' [공연]

by 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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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등등곡'은 사실과 허구가 섞인 faction 장르의 뮤지컬이다. 그런데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정여립의 난'은 그것이 실제의 일인지 아니면 허구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인지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 '정여립의 난'은 선조 23년, 선조에게 동인 출신의 정여립이 대동계라는 사병집단을 이끌고 한양 도성으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게 된 후로 선조와 송강 정철이 정여립과 같은 동인 세력을 대거 처형 및 고문한 사건을 의미한다. 이때 그 이후 서인 세력 자제들의 모임 '등등회'가 열리면서 극은 시작된다.


공연을 보기 전 과연 '등등회'의 뜻이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등등회의 수장 '영운'이 시조를 읊으면서, 그 등등회의 뜻이 여러 가지임을 알려주는 장면이 재밌었다. 그것은 바로 等(같을 등)이면서도, 혹은 한없이 오르고자 하는 登(오를 등)을 의미하는 동시에, 기타 등등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5인의 등등회 회원들은 탈을 쓴 채 시조를 읊으며 선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한다. 그런데 다섯 인물 각각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져 있는 사실을 탈 속에 숨긴 채 그저 즐거운 척 탈놀이에 몸을 맡기고 논다.


기축사화가 끝나고 이제 서인들의 세상이 도래했기에, 서인으로만 구성되어 있을 것 같은 이 무리에는 그러나 사실 동인 출신의 몰락한 선비 '초'와 정여립 선생의 이상에 크게 동감하여 대혁명을 꿈꾸는 '영운'의 속내가 숨겨져 있다. 그런데, 내면의 갈등을 숨기는 이는 비단 동인 출신의 초와 서인 출신임에도 혁명을 꿈꾸는 영운 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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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 아버지가 정승임에도 노비 출신의 어머니 묘 앞에서, 그녀의 신분 때문에 어머니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시대의 부조리함에 탄식하며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노래한다. '경신'은 등용되어 입신양명을 이루려는 야망을 마음속에 지닌 자다. 다른 한편, 송강 정철의 아들 '진명'은 아버지 정철의 주도 아래 가혹하게 행해진 처형에 대해 크나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승이 된 아버지 가문 밑에서 자랐음에도, 약을 먹지 않으면 죄책감이 자꾸만 올라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 처해 있다.


5명의 인물 중에서 나는 송강 정철의 아들 '정진명'이 가장 인상 깊었다. 정진명은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정진명이라는 인물은 정철이 행했다고 여겨지는 가혹한 고신을 가한 정승의 아들이 실제로 겪었을 법한 복잡한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상당히 큰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다. 송강 정철에 관한 다른 역사적 주장으로는, 정철이 기축사화 당시 정계에 있지 않았기에 실제로 정철과 기축사화를 통한 동인세력의 척결 사건은 크게 관련이 없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현재까지 사실로 여겨지는 역사적 내용을 극중에서 사실로서 취한다. 즉, 정철이 동인 세력에 대한 가혹한 형벌을 내렸고, 그로 인해 정진명은 그 사실에 괴로워하며 아버지의 일이 시대의 소명에 따른 일이었다면서 아버지의 행적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러한 합리화는 너무나 나약한 것이었기에, 진명은 정여립과 함께 반역을 이끌었다고 여겨지는 인물 '길삼봉'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돌자 견딜 수 없이 불안해 한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으로 여러 견해가 나뉘는 사건이기에 어느 견해에 동의하며 극을 관람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지점이 있기도 했다. 정여립은 과연 난을 정말 벌이려고 했는지 자체도 근원적으로 궁금해졌다. 또한 극에서 정여립의 난은 모든 사람이 신분으로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대동 사회를 꿈꾼 것에서 기인했다는 측면에서 정당한 일로 정당화되고 있다. 그러나 극은 동시에 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웠음에도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이 죽고 다치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과연 대의를 위한 소의의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동시에 반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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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마지막은 비극이다. 그러나 극의 시작은 희극이었다. 그로 인해 뮤지컬 '등등곡' 전반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대비감'이었다. 비록 관람하는 관객들은 이 다섯 명의 인물들이 각자 다른 생각과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극 초반에서부터 미리 알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등등회 초반만 해도 그들은 서로 막역하고 친한 사이었으나, 점차 서로 간의 이념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부터 서로의 사이는 틀어지고, 그것은 이내 막역한 지음(知音)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져버린다는 사실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시조를 짓고 노는 평화롭고 익사스러운 초반의 분위기는 극 후반부에서 나타나는 비극적 분위기로 인해, 이념 간의 치열한 갈등이 한 인간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시들게 하는지를 대비의 효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리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념 갈등'이라는 문제가 인간사에서 얼마나 뿌리 깊고 지난한 갈등의 역사를 차지해왔는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한 무수한 시도와 실패의 역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그저 범인(凡人)일 뿐이기에, 이 이념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이러한 시사점을 주는 매체를 접할 때마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을 뿐이다.


대혼란의 시대에, 서로 다른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과 복잡함의 한가운데에 던져져 있었던 다섯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범인으로서 그 해결의 씨앗을 감히 고민해보았다. 언젠가 그 해결의 씨앗이 싹트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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