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를 낋여오거라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공연]

by 윱인

여타의 문화예술 장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를 누군가 나에게 말해보라 한다면, 단연코 뮤지컬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뮤지컬을 좋아하게 된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다 보니, 뮤지컬 내에서도 좋아하는 장르가 어느 정도 굳어져 버린 것이 사실이다. 나는 희극보다는 파멸로 끝나는 비극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비극이 주는 극적 여운이 희극보다 더 강렬하다고 이제껏 느껴왔기 때문이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하 스웨그에이지)'은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이 극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유형의 극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논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런데, 이 극은 그 섣부른 판단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고 결국엔 내 마음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고야 말았다. 어렵게 느껴지고 이 시대의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고 여겨왔던 시조에 대한 선입견은 이 극에서 가해진 현대적 변형을 통해 완전히 깨져 버린다. 시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단지 한자가 나열되어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조선시대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삶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시조로 표현해내는 과거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삶을 노래로 표현해내곤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툭하면 무언갈 하면서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는 내가 조선시대에 살았더라면 극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처럼 툭하면 시조를 읊곤 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세상이 점차 글로벌화될수록, 내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의 정체성을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왜냐하면 각지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게 되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걸까? 그것에 대해 흔히 '정(情)'의 문화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것의 한 부류로서 '민중의 유쾌한 해학 문화'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을 높게 쌓는다고 노역에 불려가고, 전쟁에 징용되어 다리 한 짝을 잃고, 그리고 하루아침에 대감집으로부터 쌀을 도둑맞고.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당연히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마냥 비관하지 않고 삶의 애환을 시조에 담아내어 그 아픔을 승화시킨다. 나아가 시조를 부채에 적어 사람들이 좀 더 일깨워지도록 이끄는 '골빈당'은 백성들이 자유의 권리를 더욱 찾을 수 있도록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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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밈(meme)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스웨그에이지'는 한국인이라면 혹은 한국적 정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면 그 누구든 극에서 다뤄지고 있는 유머가 극 중간중간에 산재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한 밈이 웃긴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밈은 소위 망한 것이라는, 밈에 대한 밈 이야기도 항간에 떠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에서 다뤄지고 있는 대표적으로 유쾌한 포인트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 뮤지컬이 가진 해학의 포인트는 현대의 영어식 단어를 한자어로 변형하여 표현해내는 데서 오는 푸근함이다. 흔히 '힙하다'라고도 표현되는, 어떤 대상이 가진 특유의 멋을 의미하는 단어인 스웨그(Swag)는 시조의 나라 조선에서 골빈당 단원들이 시조자랑 대회에 출전하여 부르는 '수애구'로 변형된다.


이때 수애구는 단순히 나열되기만 한 단어가 아니다. 수애구는 바로 壽愛謳(목숨 수, 사랑할 애, 노래할 구), 즉 목숨을 바쳐 시조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 시조를 의미한다. 학생 시절 배웠던 시조를 떠올리면, 어려운 한자가 나열되어 있어 어렵고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스웨그의 의미가 변형된 수애구 시조는 똑같은 시조지만 쉽고 멋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것이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골빈당의 수애구 시조가 떠올라서 아직까지도 흥얼거리곤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시조가, 그리고 전통적인 한국 음악이 현대적일 수 있다고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외침에 나 역시 응하였다. 시조의 가락에 중독된 채 오늘도 흥얼거리며 골빈당에게 외친다. "수애구를 낋여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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