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좋은 날들로 가득할 수는 없어도,

뮤지컬 '르 마스크' [공연]

by 윱인

프랑스 파리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파리를 상상해보면, 운치 있는 거리와 풍경, 바게트, 파리지앵 그리고 거리의 연인들과 같은 낭만적인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아름다운 것들만으로 모두 설명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프랑스는 수많은 나라를 침탈하여 식민지로 삼았고, 정복한 나라의 많은 문화유산을 약탈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대한 욕망으로 한껏 부풀었던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자국 내에서도 수많은 사상자들을 생기게 했다.


20250828194403_rwathnle.jpg

뮤지컬 [르 마스크]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를 배경으로 하여, 전쟁으로 인해 얼굴이 훼손된 군인 프레데릭에게, 전쟁 이후 설립된 '초상 가면 스튜디오'에서 그를 위한 가면 제작 기회를 가지게 된 레오니 사이에 생겨난 이야기를 다룬다. 조각에 소질이 있었으나, 장애가 있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늘 허드렛일만 해오던 레오니는 프레드릭을 위한 가면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고자 할 만큼 삶의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와 달리 프레데릭은 전쟁과 자기 얼굴의 상처로 인해, 꿈으로 가득했던 그는 냉소적으로 변했고 삶의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러나 레오니는 그에게 계속 다가간다. 계속되는 레오니의 다가감에 프레데릭도 이내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극의 후반부가 되면 다가감의 방향은 뒤바뀐다. 레오니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했던 말을 기억한 프레데릭은 그녀가 방황하며 망연자실해 있을 때, 그 역시 그녀가 했던 방식으로 레오니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안부를 묻는다.


사실 레오니가 프레데릭의 가면을 잘 만들고자 했던 것에는 복합적인 마음이 담겨있다. 그녀에게는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프레데릭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선한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잘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다 레오니는 그 두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상처를 회복해가던 프레데릭을 다시 상처 속으로 깊이 매몰되도록 하는 안타까운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극은 레오니의 그러한 복합적인 마음을 비난의 시선이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기에 이 극의 주제와도 관련될 수 있는 소재와 관련된 나의 상담 이야기가 이 극을 보면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상담 선생님이 내게 자주 강조해서 말씀해주시는 조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에서 발현된 것이 아닌 것으로부터 내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면, 그 외부적 대상이 사라졌을 때 다시 무기력해질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말을 나에게 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말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선생님의 조언에 대해서 내 생각을 조금 더 밀고 가보자면, 자기로부터 비롯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이상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타자적인 것으로부터 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생겨났다면, 모든 의미를 상실하여 삶의 의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 역시 추구할 만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것은 외부 요인에 따라 변할 수 있고 깨지기 쉬운 연약한 바람이어도, 삶의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는 무엇이든 이전보다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추구할 만한 것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프레데릭의 마스크를 제작하는 과정이 전개되면서, 불완전하지만 성장해가는 레오니와 프레데릭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완성해내야만 비로소 자신도 쓸모있는 존재로 증명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불안해하던 피오니 그리고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상황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던 프레데릭은 서로가 가진 아픔을 들여다 보고 그리고 그 아픔을 서로가 진심으로 헤아려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아직 우린 살아 있어'라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사실 앞에 그들은 각자 자기 삶의 의미를 다시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극의 제목이 '르 마스크'인 만큼, 마스크를 만드는 과정을 더 상세하게 그려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2막에서 레오니가 선의에 했던 행동이 프레데릭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했던 대립에 많은 서사가 할애된 나머지, 갑자기 어느 순간 마스크가 완성되는 흐름이 나에게는 조금 급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극의 처음과 끝 모두에 넘버(노래)로 나오는 'Bonjour!'라는 말을 언급함으로써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말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사말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Good day!'인데, 아마도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인사를 받는 사람이 좋은 날 보내기를 바라는 뜻에서 보내는 인사말이 아닐까.


요즘은 "요즘 네 상태 괜찮아?"라며 안부를 묻는 것도 밈으로 승화될 만큼 사람 사이에 감정을 주고받는 일이 흔치 않아진 시대라지만, 힘들 때면 레오니가 프레데릭에게 했던 것처럼 그리고 프레데릭이 레오니게 해줬던 것과 같이, 서로 간에 친근하게 안부를 물어봐줄 수 있는 따스함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럼에도 저스트 휴잇!(Just Huey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