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힙한 할머니 얘기 좀 들어보실라우?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공연]

by 윱인

뮤지컬, 영화 그리고 소설은 창작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뮤지컬이 최초의 원작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여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뮤지컬이 그 이후에 만들어진다.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역시 소설 '마담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토대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엄청난 흥행에 뒤이어 2022년에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신작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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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보기 전부터 이 뮤지컬이 이혼으로 아이들을 보기 어려워진 한 아버지가 할머니 보모로 분장해서 벌어지는 '웃긴' 에피소드를 줄거리로 두고 있다는 점은 대략 알고 있었다. 그런데 뮤지컬을 보기 전,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영화에 비해 뮤지컬이 공간을 구현해내는 것엔 한계가 있는 건 일정 부분 맞기 때문에, 뮤지컬을 관람하기 이전에 영화를 보고 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이 정도의 내용만을 알고 있는 채로 뮤지컬을 볼 것인가?'


두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하는 건 행복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고민을 계속 이어 나가기도 잠시, 뮤지컬을 보러 가기 직전까지도 영화를 볼 시간이 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후자를 택했다. 하지만 때론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줄거리만 안 채로 뮤지컬을 본 후 동명의 영화를 관람했던 이번 방식은 꽤 성공적이었다.


예술에 관한 비평을 발견할 때면 대부분 읽어보는 편인데, 읽다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먼저, 내 생각은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일 뿐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생각하는 흥미로운 지점은 다음의 지점이다. A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A 장르가 가진 특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장르를 좋아한다. 한편 A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 중 A와 대척점에 있는 다른 B 장르를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B 장르가 A 장르가 가진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B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너무 어렵게 설명한 경향이 있으므로, 언급한 A 장르와 B 장르가 무엇인지 바로 예시를 들어보고자 한다. 내가 언급한 A 장르는 뮤지컬이고, B 장르는 영화다. 집에서 TV를 틀어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각 장르의 비평가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에 대해 서로 논평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한 비평가(이하 뮤지컬 비평가)와 영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비평가(이하 영화 비평가)가 케데헌에서 전개되는 여러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뮤지컬 비평가는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지루할 틈 없이 노래가 등장해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영화 비평가는 뮤지컬 비평가가 극찬한 바로 그 지점, 즉 곳곳에 나오는 노래가 '느닷없다'고 평가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뮤지컬을 좋아하고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영화를 볼 때면 '지금 보고 있는 이게 뮤지컬이라면 딱 이 포인트에서 노래가 나오면 더 재밌을 텐데'라며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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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영화보다는 음악적 요소가 더 있는 예술을 선호하는 취향을 가진 나로서는 뮤지컬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특유의 방식과 언어를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뮤지컬을 먼저 본 뒤에 원작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영화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이 어떻게 뮤지컬 속에서 '음악화'되었는지를 찾아보는 작업이 내겐 2차적 재미였다. 누군가는 영화를 먼저 보고 가건 말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갔더라면 내가 이번에 경험한 이 재미는 반감되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란다와 이혼한 후 양육권까지 상실당했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보기 위해 그리고 양육권도 되찾고 싶었던 다니엘은 미란다의 가정집에 일종의 위장 취업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는 입담이 넘치는 푸근한 보모 할머니가 된다.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는 와중에도 자신의 아이들을 볼 수 있기도 하고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던 아내 미란다가 여하튼 자신 덕분에 행복해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다니엘은 춤을 추며 청소기를 돌리고 빗자루로 힘껏 바닥을 쓰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게 보모 업무를 수행해낸다.


요리하다가는 자신이 입은 다웃파이어의 흰 블라우스를 태우기까지 하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니엘은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되어 보기 전까지는 하지 않았던 요리를 아이들에게 손수 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일이 술술 풀리는 듯 했지만, 자신의 생사가 걸린 회사 미팅 일정과 다웃파이어 보모로서 참석해야 하는 미란다의 생일파티가 같은 장소의 같은 시간에 잡히게 되면서 생기는 웃기지만 마냥 웃을수 만은 없는 해프닝 같은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안에서 뮤지컬의 핵심이 되는 넘버(노래)로 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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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웃음과 슬픔, 그리고 감동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내가 본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영문판 오리지널 버전이 아닌 한국어로 번역된 '라이센스 버전'의 뮤지컬이다. 이때 미국 내에서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웃음 포인트나 상식과 같은 문화적 가치들은 한국에서의 그것들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번역을 거친 뮤지컬이 처하기 쉬운 공감의 어려움을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한국어의 말맛이 느껴지는 맛깔나는 번역을 통해 당차게 극복해낸다.


다니엘이 음성 변조를 하면서 미란다에게 읊조리듯이 지어낸 이름인 다웃파이어는 사실 'doubtfire'다. 영화에서는, 미란다가 음성 변조한 다니엘에게 이름을 묻자 그는 우연히 보던 신문에서 '경찰은 이 사건을 방화(fire)로 추정하다(doubt)'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보고 이름을 만들어낸다. 이때 이를 그대로 직역했더라면, 그 장면을 본 한국의 관객은 그 장면이 웃음을 지어내는 포인트라고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변형된다. 다니엘이 길거리에서 미란다에게 전화를 하는 사이 옆으로 지나가던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왜 자기보고 오빠라고 부르냐고 남자가 묻자, 여자가 잘생기면 '다 오빠야'라고 말하는 얘기를 듣고는 '다옷빠이야'라는 이름을 기어코 만들어낸다.


전화 면접에 성공한 다니엘이 실물 면접을 위해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분장 스튜디오에 가서 자신을 여성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자 친구는 어떤 느낌의 여성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다. 이때 매혹적인 여성과 지혜로운 여성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가 제시되는데, 이때 한국인이 아는 유명한 여성 인물들이 언급된다는 게 또 하나의 포인트다.


현지화 전략이 주는 가장 극대화된 효과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마주쳤을 때의 느껴지는 이질성 자체를 그대로 감상해보는 데 있다. 더군다나 이때 후자에 해당하는 인물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사임당'이 무대에 등장하는 게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다.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 속 장면들이 뮤지컬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낯선 미국 문화의 장벽을 굳건히 깨부수고 한국적인 감성이 더해진 푸근한 다웃파이어 할머니를 만나고 싶다면, 오는 12월 7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될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관람해볼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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