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드북’ [공연]
뮤지컬 <레드북>은 2018년 초연을 시작으로 어느덧 사연을 맞이한 창작 뮤지컬이다. 나는 이 뮤지컬을 보기 전부터 이미 대부분의 넘버를 거의 다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이 뮤지컬을 볼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9월부터 유니버셜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네 번째 <레드북>을 통해 '레드북'의 이야기를 드디어 맞이할 수 있었다.
내가 뮤지컬 '레드북'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이 뮤지컬의 대표 넘버이기도 한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넘버를 듣게 되면서부터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나서 무언가 내 마음속에 울컥하는 감정이 들고 난 이후부터 '레드북'의 다른 넘버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레드북의 많은 노래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안나가 지은 소설의 제목이면서 안나의 기발하고 아찔한 상상력을 보여주기도 하는 '낡은 침대를 타고'이다.
이처럼 요즘의 시대는 관람을 앞둔 뮤지컬에 대한 정보와 노래들을 미리 찾아 보기가 어렵지 않은 시대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의 풍요 속에도 불구하고 현장까지 가서 관람하는 것이 가진 특유함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그 특유함 중 하나는 바로 내가 생각한 예상 혹은 전개를 꺠는 나만의 포인트를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이 뮤지컬에서 발견한 포인트는, 1막 가장 처음에 나오는 넘버 '난 뭐지?'의 후반부에서 이미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넘버의 멜로디와 가사가 한 구절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나온다는 점이었다. 사실 나는 각각의 뮤지컬이 지닌 각자의 '형식'을 뮤지컬을 볼 때 가장 주의 깊게 본다. 음악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반복과 변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막 가장 첫 부분에서 등장하는 중심 멜로디와 가사 '나는 아직 모르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안나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하고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안나는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 즉, 소위 정숙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녀는 일할 곳을 찾아 들어간 가게의 남자 사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자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이 당한 수치보다 더 큰 희롱으로 자신이 당한 희롱에 맞대응하기 떄문이다.
이때 시대의 부조리한 행태와 관습에 대해 격렬히 저항하는 그녀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내가 강조해서 부각하고 싶은 안나의 모습은 바로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자신을 더 알고 싶어하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당시의 여성들은 (그리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자신에게 집중하여 자기 자신이 가진 욕망이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안나가 일을 구하러 들어간 가게의 남자 사장이 한 말-"여자가 일을 왜 해? 서른이 다 돼가는데 결혼도 안 했어?-은 당대의 여성이 주변의 시선과 기대에 짓눌려 정작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력조차 없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자신의 욕망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의 의미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타인의 기대와 시선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갈 수 있는 강한 의지를 지녔다고 보아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잘 알고 있는 자기 자신'이란 어쩌면 '타인의 시선과 기대가 덧붙여진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안나가 살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자기 자신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결혼과 그를 통한 안정의 욕망'은 사실 당대의 가부장적 문화와 관습이 그녀들에게 강요하여 그녀들이 내재화한 타자의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인들로 시선을 돌려 그들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 무엇일지 고민해본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기의 정신이 투영하는 자기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들이 해내는 성과의 크기만큼, 혹은 나이대별로 가져야 할 사회적 위치만큼 성취해내려고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의 욕망이라고 당연히 여기곤 한다.
'난 뭐지?' 장면에서 안나와 가게 남자 사장이 주고받은 대화가 참 인상 깊었다. "뭐야 늙었잖아.', "네, 그런데 저 서른도 안 됐는데요.","뭐야, 결혼도 안 했잖아?", "대신 다른 걸 더 잘할 수 있어요!", "왜 여자가 일하려고 그래, 남자가 없어?". "아니요, 돈이 없는데요." 으음, (만) 서른이 안 됐고, 결혼도 안 했고, 돈도 없고 그리고 무례한 얘기엔 한 마디도 안 지고 바락바락 대드는 내가 바로 안나라는 이 유별나고도 사랑스러운 인물에 이입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노래를 이미 알고 있는 나의 시점에서, 이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이미 극 초반부터 안나의 노래 속에서 말해지고 있다는 점이 내게는 뜻밖의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치 안나가 이렇게 나에게 말해준 것 같았다. "내가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건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흥미롭고 멋있는 일이야."
최근에 나에 대해 알게 된, 그리고 마침내 인정하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직 나는 좀 더 쉬고 싶다'라는 점이다. 쉬고 싶다는 걸 인정하는 게 도대체 뭐가 어려운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불편해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도와준 덕인지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진 것인지, 쉬고 싶다는 그 마음 자체를 최근에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고, 사회에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고, 사랑도 쟁취해내는 이 뮤지컬 속 주인공 안나와는 비교되는 현실의 '나'이지만, 그럼에도 휴식이 필요한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초등학생 때 나도 만화를 그리는 것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분량은 두꺼운 연습장 두 권 정도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는데, 그땐 뭘 그렇게 써내려가고 싶었던 것인지 지금은 그때만큼의 ';상상력'이 발동하지는 않아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추적해갈 수는 없다.
'레드북' 속 안나는 나에게 어린 시절 그녀 같기도 했던 나를 생각나게 해주고, 지금의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게끔 해준다. 그런 그녀를 즉,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올 안나를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