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라는 범주를 설명하는 철학자 아도르노(Adorno)의 서술에서 주목해볼 만한 특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오늘은 그 중 첫 번째 특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그는 숭고 개념에 대한 논의를 미와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미와의 관련 속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도르노는 칸트가 미적 경험에 대해서 미와 숭고를 상관적으로 다룸으로써, 미의 경험이 감각적으로 편안한 것이라는 미에 대한 전래의 규정과는 별로 맞지 않으며, 오히려 칸트가 숭고에서 설명했던 것인, 동요되고 떨리는 것, 즉 '긴장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그러나 아도르노에 따르면, 칸트는 미와 숭고를 오로지 주관과의 관계에서만 다뤘기 때문에 예술은 단지 감상하는 주관을 위해 반사작용을 일으키는 조직적인 자극 체계로 환원되어 버렸다.
아도르노는 예술에 대한 그러한 환원적 이해는 미를 규정하는 칸트의 대표적 계기인 '이해관계 없는 편안함'의 계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미는 객체에 대한 고려 없이 주관 자신의 인식 능력이 유희하는 과정에서 조화롭게 일치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쾌감의 표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미'의 영역이 정립되어 온 실제적인 발생사를 설명하면서 그 규정에 반박한다. 즉, 그는 예술이 고유한 자율성의 영역을 역사적 과정에서 구축한 사실과 관련지으면서, 고유한 자율성 영역의 획득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두려운 것을 영역 바깥으로 배제해버리는 역학이 예술의 영역 내부에 존재해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로부터 그는 이러한 형식화된 '미'가 성취하고자 한 '형식의 순수성'은 자신의 동일성을 의식하게 되면서 비동일적인 것을 점차 배제하는 가운데 형성해가는 주체의 순수성을 모방하여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정신의 이러한 규정을 통해, 미 범주는 타자로 간주되는 것을 배제하면서 타자에 대해 느끼는 불안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자신의 고유하고 밀폐된 영역을 설정하고, 그 과정에서 형식화되지 않은 모든 것들은 그 과정에서 '추'로 규정된다. 따라서 미는 전통적 미학이 주장해왔던 것과 달리 순수한 시초를 이루고 있지 않다. 또한 그것은 칸트의 규정처럼 고정된 결과물처럼 조화로운 상태로 존립하고 있지도 않다.
이때 아도르노는 이러한 변증법적 사실을 드러나게 하는 개념이 바로 '숭고'라고 본다. 칸트에게 논의되었던 '부적합성'의 계기는, 아도르노에게서도 고정된 결과에 일종의 틈을 발생하게 하여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경험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도르노는 기존에 논의되는 한정적인 미의 영역에 숭고를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