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가 『부정 변증법』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겨냥한 철학은 칸트에서 시작 되어 피히테와 셸링, 그리고 헤겔을 대표적 철학자로 두고 있는 독일 관념론이다. 이때 그들(관념론)의 주장을 관통하는 일관된 내용은 인식론에서 주체에게 일방적으로 부여 된 객체 ‘구성성’이다. 아도르노는 이를 ‘구성적 주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비판을 정식화한다.
‘구성적 주체’는 칸트의 용어로, 대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을 가진 주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기본적인 테제는 주체는 객체에 앞서 있는 것으로서, 객체의 성립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구성적 주체의 그러한 구성적 계기를 철학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그 주체는 자족성을 지닌 것으로 실체화된다라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아도르노는 구성적 주체의 ‘발생사(Genesis)’ 를 재구성하여, 그 주체가 실질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1) 사회-역사적 근원과 2) 생리-심리학적 근원을 밝혀냄으로써 기존 관념론의 테제가 잘못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는 사회-역사적 근원이 되는 첫 번째의 것으로, 17세기의 ‘시민계급의 형성’을 든다. 시민계급은 자신들을 지배하던 거대한 봉건 질서에 맞서면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시민계급의 시민적 사유는 이내 자신들이 이뤄낸 해방이 더 진보적인 가치와 이념 에 의해 폐기될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러한 불안은 체계에 맞서면서 형성 된 시민적 사유가 역설적으로 질서를 강화하는 행동 양식을 자신의 특징으로 가지 도록 만든다.
즉, 시민적 사유는 자신이 부정했던 외부의 질서를 ‘자신에서부터’ 산출해내게 되고, 시민계급의 이러한 두려움은 이론적 체계로까지 투영된다. 그 근원의 두 번째로 아도르노는 ‘교환원칙’을 든다. 그는 사유의 형식으로서의 동일 성 사유와 그것이 학문에 반영된 것인 체계 철학은, 인식의 차원을 넘어 실제 사회 현실과의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사회 현실에도 그 지배력을 전이시킨다는 점을 사회의 교환체계 원리를 통해 설명한다.
구성적 주체가 근거하고 있는 생리-심리학적 요인으로는, 사회-역사적 근원에서도 설명했었던, 시민계급이 경험한 ‘불안’이 있다. 즉, 자신의 유한성을 견딜 수 없는 의식은 무한해지려는 ‘보상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도르노는 그러한 구성적 주체 의 체계적 욕구를 인류의 정신 이전적인 ‘동물적 삶’이 연장된 것이라고 본다.
구성적 주체의 실질적인 발생적 근원을 살펴본 뒤에는, 구성적 주체가 객체를 인식할 때 정당성이 확보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세 겹의 동일성 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 주체가 사용하는 인식 형식의 발생적 근거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심리적 차원의 자아 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모든 경험을 겪는 동안에도 동 일한 것으로 유지된다고 상정되는 하나의 자아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둘째, 주관이 행하는 사유의 논리적 보편성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즉, 주체는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적 언어의 일관성을 근거로 하여 대상을 고정하고 질서 짓는다. 셋째, 개념을 객관이 가진 특징의 통일체로 간주하고자 하는,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때 아도르노는 첫 번째 겹-동일성의 심리학적 계기-과 두 번째 겹-동일성 의 논리학적 계기-이 유착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사유의 논리적 보편성은 자아의 동일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획득될 수 없고, 반대로 자아의 동일성이란 논리적 보편성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유지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유착 관계의 발생사를 설명하기 위해 『계몽의 변증법』에서 트로이 전쟁을 치른 후 오디세우스가 귀향하기 위한 10년간의 여정 서사를 다룬다. 그리고 그 서사를‘근대 시민적 주체의 형성사’라고 부른다. 즉, ‘자아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자기 동일적 자아를 형성하도록 만드는 발생적 근원이라는 것이다.
가령, 사이렌들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봉하고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갈 것을 명령한다거나, 오디세우스가 모험 도중 감정이 끓어오를 때마다 ‘자기 가슴을 치면서’ 마음을 다잡는 모습들은 흔들리는 영혼의 계기들을 하나로 획일화함으로써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갖게 되는 자아의 형성과도 유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아’의 형성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대가로 형성된 것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자기보존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 자아에는 자기 파괴의 소지가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인식 주체가 자기 동일성이라는 이러한 반복적 특성을 획득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식 대상과의 거리 확보를 통해 그것의 질적 계기를 제거하여 통일적인 객체로 설정하고 이를 반복함으로써 그것을 객체에 대한 앎을 획득했다고 착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인식은 객체의 빈곤화를 넘어 주체 자신의 소진과 빈곤으로도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