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어린 시절 TV에서 '2020 원더 키디'라는 만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80년대생인 나에게 2020년이란 해는 그야말로 지구에 외계인이 침공할 정도로 먼 미래일 것 만 같았다. 그런 2020년이 되고도 벌써 반년이 지나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뇌는 의미 없는 기억들을 지워버린다
내년이면 마흔
사실 시간이 흐르는 감각이 점점 가속화되었다는 걸 느낀지는 한참 되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매번 놀라는 나 자신에게 참으로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금도 현기증 나는 이 속도보다 더 빨리 시간이 지나가게 된다는 걸까! 이제는 정상적인 삶의 속도라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전에 내가 느꼈던 시간 감각과는 멀어진 지 오래니까.
뇌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생활이 단조로워지고 색다른 경험이나 놀라움이 없을수록 우리 뇌는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굳이 과학적 증거를 들이밀지 않아도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이런 원리를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더 길게 산 것처럼 느끼려면 끊임없이 삶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모험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뇌는 굳이 기억할만한 가치가 없는 반복되는 일상을 과감히 한 뭉텅이로 압축하거나 지워버릴 테니까!
작년 겨울
아들과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왔다. 그 한 달 동안 내게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과 활동은 한국에서 평소에 할 경험의 몇 달 치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지나가다 오랜만에 마주치는 이웃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 달이나 여행을 다녀온다 해서 상당히 길 줄 알았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난 거야?! "
아마도 그네들의 일상이 그다지 다채롭지 못했던 탓에, 내게는 마치 3개월 정도는 된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그리도 순식간에 지나간 듯했나 보다.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은 한껏 쇄신된 기분으로 활기차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의 루틴이 거듭되며 나는 예전에 살던 시간의 속도로 이내 복귀하고 말았다.
또다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예전의 기억들이 더 선명해지는 건 왜일까
"뭘 했는지 모르게 벌써 또 일 년이 흘러버렸네!"
2020년 새해가 되며 또다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수 년째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나 자신을 인식하고는 퍼뜩 정신이 든다.
분명 무언가 하며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은데, 떠올려 보려 하면 지난 한 해의 기억들이 바로 소환되지가 않는다. 이건 나의 뇌가 그 모든 일들을 그다지 의미 있다거나 중요하게 기억하지 않았다는 얘기인 걸까!
암만 생각해도 해외여행을 갔었다거나 생일 파티를 했던 것 같은 큼직큼직한 이벤트들만 떠오를 뿐이다. 심지어는 최근보다 예전의 굵직굵직했던 사건들이 더욱 선명하게 기억나기도 한다.
유학 생활을 하며 박사과정을 밟았던 20대 시절, 원 없이 해외 출장을 다녔던 6년 간의 대기업 생활, 서른셋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던 잊을 수 없는 경험, 워킹맘의 고단함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3년 전 퇴사를 하고 전업주부가 되기로 했던 결심...
한때는 누구보다도 더
세상의 궤도에 진입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준비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나다니며 일을 꾸미고,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지만, 정작 당시에는 인생의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 조차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퇴사를 하고, 아들을 돌보며 지냈던 지난 3년 간은 난생처음 시간의 속도를 온몸으로 느껴본 시간이었다. 활동량은 예전에 비해 1/10도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신도시로 이사를 하고, 살림과 육아를 하며 라이프스타일을 전에 비해 극도로(?) 심플하게 바꾸었다. 만나는 사람을 소수로 하고, 운동과 독서를 꾸준히 하며, 가끔 가족과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보통 주부에 비하자면, 여전히 상당한 활동량이었지만.
이런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시간은 어찌나 눈 깜짝할 새에 흐르던지. 외부와의 소통이 전보다 줄어든 만큼 나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상념과 감정들에 시달렸다. 거기다 육아를 하다 보면 불쑥 찾아드는 뜻 모를 우울감과 무능감이 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한참 일하면서 밖에 나가 있어야 할 사람이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혼란.
'내가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동안 갖은 노력과 투자를 했던 건가. 살림만 하는 애 엄마로 살려고?'라는 좌절.
매일매일 이렇게 살다가는 어느덧 정신 차려보면 생애의 끄트머리에 다다라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무상하게 흘렀냐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무섭게 빠른 시간의 속도를 견딜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회사를 그만 두기로 선택을 내린 것은 바로 나였다. 꿈에도 전업주부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편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 남부럽지 않은 단란하고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 이런 것이야말로 다들 붙잡으려 그토록 안달복달인 행복의 형태가 아닌가.
내게 결핍된 것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감사하며 사는 마음을 가지려 부단히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한 부분이 있었고, 그 틈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은 어느덧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누구누구의 엄마나 아내로서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지분을 주장할 고유한 나만의 정체성, 내 일, 내 자리였다!
'내 인생 구하기'의 저자 개리 비숍이 '카펫으로 덮어둔 바퀴벌레 시체'라고 표현한 것처럼, 들추어내지 않으면 썩어서 언젠가 악취를 풍기게 될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방치해둔 내 열망이 서서히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 이상은 무섭도록 실감 나는 이 시간의 속도를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단조로움과 변화 없는 일상으로 인해 뇌리에서 삭제되어 버리는 내 삶이 아까워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이대로 올 한 해도 가버린다면 나는 곧 마흔이 될 텐데.
이 시간의 속도를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다!
성에 차지 않을 뿐
삶을 사는 동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 펼치면서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사는 것, 그것 이상 가는 삶이라는 게 있을까. 목표를 향해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그런 느낌을 가지며 살 수 있는 인생이야말로 실로 축복받은 삶이 아닐까. 한때는 그런 나날을 살아본 적이 있기에 나는 확신한다. 그건 정말이지 끝내주는 기분이라는 걸!
지난 3년이라는 시간을 자꾸 단조로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게되지만, 실상은 사내아이를 키워내는 일이란 내 생애 가장 고되고 스펙터클한(?) 일이었다. 애가 둘셋이나 되는 열혈 워킹맘들도 있지만, 내게는 육아가 회사생활과는 도저히 병행할 수 없을 만큼 벅찼기에 퇴사를 한 것이었다. 사람마다 사정과 처지가 다르니, 감당해낼 수 있는 시련의 종류와 크기도 다른 것이겠지. 나에게 육아란, 3년간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갈아 넣어서야 가까스로 한 아이를 여기까지 키워낼 만큼 힘든 레벨의 과업이었던 것이다.
아들은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고, 나는 이제서야 조금 내 인생을 챙기고 돌아볼 정신이 드는 느낌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토록 힘겨웠던 육아의 시간들이 너무도 순식간에 지나버린 듯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자꾸만 실상과는 전혀 다르게, 단조롭고 반복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고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일 투성이었던 투쟁과 도전의 하루하루였을텐데.
지난 3년 간
나는 과연 내 삶이 반짝반짝 빛나도록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았던 걸까?
살림에서 딱히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엄마 노릇'이라는 역할도 닥치는 대로 꾸역꾸역 버텨냈을 뿐이었다. 차라리 회사를 다녔다면 승진을 했을 테고 커리어가 쌓였겠지. 분명 아이는 멀쩡히 커 있는데, 그동안 나는 대체 뭘 했는지 갑자기...
잘.모.르.겠.다.
지난 3년의 시간을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기르는 둘도 없는 행복과 경이를 맛본 나날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살면서 가장 완전한 사랑을 경험했고, 내가 이 생을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이유와 목적을 다시는 의심치 않게 되었다. 인생이란 트레이드오프(Trade-off)니까, 하나를 얻었다면 놓친 다른 하나를 아쉬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맞겠지.
실제로는 살림하고 아이만 기르고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활동을 해왔다. 운동에, 독서에, 강연에, 여행에... 항상 욕심이 많았던 나는 자기계발과 성장에 대한 욕구의 끈을 놓지 않고, 나름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냈던 것이다.
다만, 이제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을 뿐.
"I'm still hungry"
이번 생에서 될 수 있는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살겠다
한평생이라는 시간의 길이가
사람마다 다 똑같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리라. 그래서 시간의 상대성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의 연구가 그토록 높이 평가되는 걸까.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인생을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나날들로 보내버리고 싶지 않다. 한 번뿐인 삶이 시시하게 찰나처럼 지나가버린다면 너무나 아쉽고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 없다.
즐겁고 의미 있는 일들로 일상을 가득 채워서 살아가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것이다. 나의 뇌가 인상 깊은 경험이라고 판단해 기억해 둘 만한 일들을 꾸미고 이뤄내며 인생을 쓰겠다!
그렇게 살다 보면 이번 생에서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내게는 그것이 세상으로 나가서 일하며 내 재능을 한껏 펼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모습인 것 같다.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안락하고 안정적인 들, 내 삶에 진정한 의미와 희열을 채울 수는 없으리라는 진실을 지난 3년이 처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아이가 나를 가장 필요로하는 시간동안 그 곁을 지키고, 그 후엔 이 세상 그어딘가에 있을 나만의 영역을 찾아 새로운 모험을 나설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익숙함과 연륜에서 오는 시간 감각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매번 처음 만나는 세상에 경탄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루틴과 습관화된 일상의 의무도 응당 받아들이고 감당해내야 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도전과 변화를 주며 충실한 일상을 사는 것이 삶의 속도를 그나마 조절할 수 있는 방법 이리라.
매번 해가 바뀔 때마다 한 것도 없이 또 순식간에 세월만 갔다고 푸념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일을 꾸미고, 낯선 사람들을 사귀며, 안가 본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 만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며, 자기 속의 재능과 열정을 세상으로 아낌없이 쏟아내는 하루하루를 사는 수 밖에는 없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살아가는 시간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며, 의미 있는 삶의 기억들을 몇 조각이라도 더 챙겨갈 수 있으리.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나도 어서 그렇게 해보려 한다. 이번 생에 될 수 있는 제일 빛나는 모습으로 반드시 살아보고 싶다.
서둘러야겠다. 2020년은 이제 반년밖에 안 남았으니.
Tick Tack! Tick 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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