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이라는 삶의 멘토

내 인생 드라마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없다

by 에센티아

1월도 2/3가 벌써 훌쩍 지나버리고, 남은 날은 달랑 열흘.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마흔에 진입하자 시간의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되어간다. 이대로라면 50, 60이 되었을 때는 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감에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는 것인지? 정말이지 어르신들은 매일매일이 너무도 아까워서 몸서리 쳐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궁금해하고 있는 이 문제를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거나 묘사해 줄 수 있는 분이 과연 누가 계시려나? 엄마를 비롯해 주변에 계시는 할머니들께는 이런 질문을 드려봤자, 자신이 알고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을 언어로 잘 설명해 주실 수 없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강연을 듣는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직접 살아낸 경험이라 해서 남들에게 그것을 알아듣기 쉽게 잘 체계화해서 설명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법이니까.


그래서인지 문득 지혜로운 어른이 단 한 분이라도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나보다 앞서 산 인생의 이야기를 물어보면 대답해 줄 수 있는 그런 멘토 같은 이가 있다면. 물론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고 나에게 애정을 가진 이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아름다운 관계가 되기는 힘들 테니까.


하지만 이번 생은 내게 그런 이가 거저 주어지는 운명은 아닌 듯하다. 그런 엇비슷한 멘토를 만났다고 착각했지만, 결코 끝이 좋지 않았던 몇 번의 나쁜 기억은 내게서 영원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하긴, 한 인간이 뭘 다른 인간에게서 진정한 멘토를 기대하고, 또 스스로 멘토가 되려 하는가! 그런 생각조차가 자아의 독립과 정신의 자유를 영원히 훼방놓고, 오만과 갑질의 세계로 스스로를 인도하는 길목이 될 수 있다.


어른이란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배우되, 온전히 스스로 사유하고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존재인 것을. 알면서도 이따금씩 그리스 희곡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누군가 '뿅'하고 나타나, 내게 신박한 혜안이나 묘안을 던져주고 갔으면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이루어지든 말든 적어도 열망과 바램은 자유일지니. 그에 따른 실망을 어떻게든 스스로 끌어안고 감당해낼 작심만 있다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틴어: deus ex machina)는 문학 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플롯 장치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기계 장치로 (연극 무대에) 내려온 신"(god from the machine)이라는 뜻이다. 호라티우스는 시학(Ars Poetica)에서 시인은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신을 등장시켜선 안된다고 일렀다. 신고전주의 문학 비평에서 갑작스러운 기적으로 풀리는 이야기는 나쁜 연극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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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나의 전적인 스승으로 모시거나, 또는 내가 그런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한없이 갈팡질팡하며 던져진 세상 속에 살다가는 한 인간일 뿐이라고 인식한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참고로 삼으며 배우고 돕고 살아가는 것은 공동체를 이루고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운명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자 규칙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알려주고,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며, 친구는 다른 친구를 돕고, 약한 자를 돌보며 보살핀다.


그리고 때로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자신이 삶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여 남긴다. 누군가는 그 기록으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더 순탄한 길을 택할 수 있는 실마리를 가지도록. 다른 이들보다 깨달은 바를 조금 더 유능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들. 아니면 진솔하고 섬세하게 잡아내어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런 이들의 기록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 정도라도 너덜너덜한 인생 지도를 붙잡고 내 삶의 여정을 이나마 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나도 내 하루하루의 잔상들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담아내 본다. 답답한 심정이든, 신바람 나는 기분이든, 감격스러운 감사의 기분이든 뭐든, 아무나 말로 표현해낼 수 없는 인간이면 울컥 솟는 그 무엇인가를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 내 존재의 사명이자 재능일지 모른다. 뭐 아님 말고.


한 평생은 완주해내려면 결국 소명이 존재를 굳건하게 지지해 주어야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야 존재의 뿌리가 단단하고도 건강하게 유지되어 일상에 예쁘게 꽃을 피우는 것이다. 뿌리가 시원치 않아도 죽지 않고 연명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런 인생은 시들시들하고 생명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먼저 자신의 소명을 찾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일평생 목마르지 않을 수 있다.


살다 지쳐 기운이 빠지거나 힘이 나지 않을 때, 이 소명을 멘토 삼고 내 안의 최상의 모습을 스승 삼아 그렇게 다시 일어나 보련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갈구했지만, 역시나 그런 일은 사람이 알에서 깨어나고, 바다에 세이렌이 산다는 신화에나 적합한 콘셉트인 듯싶다. 내 인생 드라마엔 그딴 플롯은 애당초 없어!


1월의 나머지 1/3을 힘내서 또 채워가 보자. 살면서 스승이나 멘토는 단 한 명이라던가 반드시 사람의 형태여야만 할 리라 없다. 내가 무언가를 느끼거나 깨닫게 해주는 그 모든 세상사가 다 스승이며, 내가 사는 이 삶이 곧 나의 멘토일지니. 그런 의미에서 햇빛 스승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따뜻한 볕을 드리워 이 땅을 이리도 환하게 밝혀주시니.

photo-1550502369-d54b8f36db78.jpg?type=w1 © ddealmeid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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