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방법
한참을 잊고 있었다. 내 스스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줘야 한다는 너무도 중요한 사실을.
그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때로는 그런 마음이 절로 들지 않을 때가 많을 걸 어쩔 도리가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내 자식 조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나 자신이라 해서 저절로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사랑은 커녕 종종 학대하고 홀대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내가 나에게 하는 대우이다 보니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뿐이지, 살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냉대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의 마음이란 가만히 내버려 두면 결코 성실하지도 일관되지도 않다. 변덕이 죽 끓듯 하고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달라고 투정 부리는 일곱 살 어린애 같기만 하다. 더더군다나 몸은 이만치 늙어버렸는데, 그 속에는 아직도 애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어린아이가 들어앉아 있으니, 평생 이 불일치와 모순을 감당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아무리 다독이고 설득해봐야, 결국 사랑받지 못하면 우리는 외로워 견딜 수가 없다. 남으로부터 또는 나 자신에게라도.
아이를 키우며 가끔씩 깨닫는다. 우리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기같이 절실한 것인지를. 그리고 나 자신의 영문 모를 텅 비고 쓸쓸한 마음들에 대한 답도 거기에서 얻곤 한다.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건 간에 파헤쳐 들어가 보면 근원은 다 마음속에 사랑이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을 때에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칭찬과 격려, 그리고 내 존재가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부족하면, 어느샌가 내 마음은 상처 받은 어린애처럼 토라져 버린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가면에 표정을 숨긴 채 온갖 핑계를 갖다 대며 삶이 나아가려는 발걸음에 훼방을 놓는다.
그럴 땐 토라진 아이를 달래듯 내 마음도 꼭 끌어안고 어르고 달래주어야 한다.
"엄마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단다. 너는 너무나 소중하고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네가 뭔가를 잘 하든 잘못하든 그 사실에는 결코 변함이 없어. 가장 중요한 건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나 주는 거야.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 오직 그것뿐이란다."
요즘 유난히도 장난의 강도가 심해진 여덟 살 아들이 여기저기서 혼나고 돌아온 어느 날, 방구석에 앉아 훌쩍이며 말했다.
"난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야. 맨날 말썽만 부리고 혼나기만 하잖아. 엄마도 내가 귀찮지? "
그 어린것도 자기 존재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보석 같은 눈으로 애절하게 나에게 묻고 있었다. 사랑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을 붙들고 놓지 않을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확신이.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아들에게 아낌없는 나의 사랑의 확언을 들려주었다. 너는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잘하든 못하든 나는 너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말이 실은 나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필요한 말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존재로서의 인정과 사랑에 목마르고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의 거죽을 입고 있는 내게 그런 말을 들려줄 이는 없었다. 생뚱맞게 노모에게 전화를 걸거나 남편을 붙잡아 세워놓고 뜬금없이 솔직하게 생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자꾸만 사랑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엉뚱하게 돌려 말하게 된다.
"요즘 좀 우울하네."
"하는 일마다 잘 안돼."
자기 본심조차 알아 채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와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저 정처 없이 마음이 애 먼 곳을 헤매다가 제풀에 가라앉아버리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 마흔 살 나에게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는 않을 터. 하지만,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보아도 금세 나는 알아낼 수 있지 않나.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세상 몇 명에게 나는 진실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나는 너무도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야말로 나 스스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내 행복과 건강을 얼마만큼 바라고 응원하고 있는지를 한 치도 의심할 여지없이 나는 분명히 알고 있지 않나!
아들에게 해 주었듯, 스스로에게도 따뜻하게 속삭여 본다.
"나는 너무나 소중하고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 오직 그것뿐이야. 사랑해."
세상 그 누구보다 먼저 나 스스로를 챙기기에 소홀해지지 않기로 한다. 내 마음이 무너지고 쓰러진다면 삶의 의미도 빛이 바랠 테고 어차피 그 무엇도 나는 줄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자신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하기를 바란다. 그러니 나에게라고 다른 것을 바랄 리 없다. 필요한 만큼 나를 허용하고 칭찬해 주고자 한다. 그리고 가장 필요했던 그 말을 건네고 싶다.
"괜찮아. 이대로 다 괜찮아"
우리는 모두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