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보다는 속도'라고요?

나만의 속도 감각을 찾아서

by 에센티아

오늘도 어김없이 모닝 요가로 찌뿌둥한 몸을 풀어주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책상 앞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셔봅니다. 누가 보면 여유롭기 그지없어 보이겠지만, 제 마음은 분주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틀간 밀린 처리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기 때문이죠.


주말에 아들의 유치원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와, 이틀간 유치원이 휴원을 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아들은 진단 결과가 음성이 나왔고, 확진자 아이와는 같은 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가격리 대상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유치원은 소독과 방역으로 휴원을 하는 바람에 이틀간 집에서 종일 제가 돌보고 있어야 했답니다. 오늘은 드디어 유치원에 나갈 수 있게 되어 겨우 짬이 생기게 되었어요.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제 마음엔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함께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접어두고, 비자발적 독박 육아로 종일을 보내게 되었어요.


7살이 되면 모든 것이 수월해지고 편해질 거라 믿었지만, 아직도 아이를 돌보려면 제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언제쯤에나 아들과 한 집에 머물러도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내며 만족스럽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먼저 아이를 키워 보신 분들은 적어도 제 질문에 대한 답을 아시겠지요? 초등학교 3학년? 그도 아니면 중학교 1학년쯤?


photo-1463018122985-d3ece5248b05.jpg?type=w1 © challengart, 출처 Unsplash

물론 아이가 서너 살 때에 비하면 지금의 상황은 정말이지 양반입니다. 저는 그 시기에 아이와 단둘이 있으면 정신을 차리기 조차 힘들었어요. 온종일 아이 수발을 들고, 열심히 반응해 주다가 기가 빨리고 기진맥진해져서 스스로를 위해 쓸 에너지나 여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요.


어떤 아이들은 그냥 보기에도 참 순해 보이고, 엄마를 덜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그런 엄마들에게 제가

"너희 애는 참 순해. 발로 육아를 하는 듯 보여."

라고 말하면 다들 손사래를 치며, 집에선 영 딴판이라고들 극구 부인하긴 했지만요. 다만, 저희 아들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똑같이 나대는 스타일이었던지, 다른 사람들도

"참 힘들겠다"

라는 인정과 동감의 반응을 해주었던 것 같아요. 그게 뭐 특별히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요.


시중의 육아서에서 나오는 각종 육아에 대한 팁이나 훈육의 방식은 저희 아이에겐 하나도 통하지 않는 듯했어요. 나중엔 그런 속 편한 얘기하는 책 내용의 한 줄 한 줄이 어찌나 염장을 지르고 분노를 유발하던지요. 더 이상은 읽기를 그만두었더랬지요. 수면교육이며, 책 육아며, 프랑스식 육아? 핏 웃기고 있네~. 그땐 눈앞의 현실이 너무 버거워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다이어트 얘기하고 있는 걸로 밖엔 안 들렸던 것 같아요.


그 모든 전쟁 같은 시간들을 다 뚫어내고 나니, 그래도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정말이지 천국입니다. 이제는 아이와 고급 수준의(?)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만 하는 시절은 막을 내렸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육아에 있어 새로운 차원의 지옥문(?)이 열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복병이었죠.


54e0d0464354ac14f6da8c7dda79337c143adbe1534c704f752979dc954ec75c_1280.jpg?type=w1 © Lars_Nissen, 출처 Pixabay


그동안은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종일 있어주기만 하면, 적어도 낮동안은 오로지 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시종이나 노예(?)가 아닌, 당당하게 사람다운 삶으로 복귀가 가능했지요. 이제는 다시 제대로 제 인생 경로를 설계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할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할 서막이 열리는구나 하며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초에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은 그런 저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돌려놓더군요. 외부 환경적인 제약도 큰 역할을 했지만, 아이의 유치원 등원이야말로 직접적으로 큰 몫을 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면서도 그와 병행해 글만 잘 쓰고, SNS 활동도 다 해내며, 공구에 뭐에 인플루언서로까지 활동하시는 그런 능력자들은 대체 어떻게 그 모든 걸 해내는 걸까요? 저는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애 하나를 돌보는 것이 버거워 동시에 다른 건 손에 잡히지도 않던데. 거기에 애가 둘, 셋인데도 살림과 육아는 물론이고 돈벌이까지 척척 해내는 분들은 또 어떤가요?


역시나 세상에는 탁월하고 뛰어난 '슈퍼 파워'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각자 다 다른 분야에서 발휘되는 모양이고요. 저는 육아에서만큼은 도무지 그런 '모조'가 발휘 되지를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고요.


어젯밤 남편과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의 육아는 어째서 그토록 힘들었던 걸까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바탕 토론을 벌여보았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초저녁 무렵에 일찍 잠이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정말로 잠이 없고도 짧은 우리 아들이 이렇게 예고 없이 잠이 드는 일은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인데 말이죠. 아무튼 결론인즉슨, 우리 아이는 '과잉행동'적 성향을 띤 아이였다는 것이 첫 번째 원인이었고, 두 번째로는 육아를 보조해줄 조부모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는 것이 핵심 요인이었다는데 합의를 도출했답니다. 네, 확실히 그랬습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우리 부부는 지난 7년간 그토록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과잉행동(Hyperactivity)이란, 행동이 과도하게 많다는 뜻으로, 차분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부산하거나 계속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자주 넘어지고 다치거나 높은 곳에 기어오르며, 흔히 ‘굉장히 활발하다, 시끄럽다, 극성맞다, 에너지가 넘친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과잉행동은 어릴 때부터 일찍이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아이들에게서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활동적인 모습과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고, 규칙을 지켜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평가하면, 보다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과잉행동의 경우 여아보다 남아에게서 더 많이 관찰된다. 과잉행동은 밖으로 증상이 드러나므로 사회적, 가정적인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반항적 행동으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고, 사고로 인한 부상도 많으며,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도 많은 편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에는 팔다리를 흔들고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에게 말을 걸거나 장난치고 쓸데없는 소리를 내고 나대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꼼지락거리고 다른 아이에게 집적대거나 연필을 씹는 등 자잘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이처럼 과잉행동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강하다.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이전보다 훨씬 차분해 보이는 느낌이 들며, 대체로 청소년기나 성인기가 되면 그다지 행동이 크거나 과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ADHD의 증상



사실 저희 아이가 ADHD로 진단받을 정도로 유별나거나 심각한 증세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정도의 차가 있을 뿐, '과잉행동'이라는 성향으로 묘사된 모든 특성을 자라면서 다 보여왔던 건 사실입니다.


‘굉장히 활발하다, 시끄럽다, 극성맞다, 에너지가 넘친다, 가만히 있지 못한다’

정말이지 저로서는 우리 아들을 남들에게 묘사하자면, 딱 이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분한 성향의 제 입장에서는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도 많은 편이다'

딱 이런 심정이었답니다!


한 가지 희망은, 이러한 과잉행동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강하다'라는 사실이겠네요. 실제로도 해가 갈수록 이전보다는 아들의 과잉행동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거든요.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이전보다 훨씬 차분해 보이는 느낌이 들며, 대체로 청소년기나 성인기가 되면 그다지 행동이 크거나 과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된다'

저는 이 문장을 종이에 써서 벽에 붙여놓고 무슨 부적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photo-1507925921958-8a62f3d1a50d.jpg?type=w1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라 이거지?! 하지만 고학년이면 아직도 한 3, 4년은 더 남았다는 얘긴데. 당장 1년이 아니라 한 달도 제게는 아쉽고 귀하게만 여겨지는데 말이지요. 그동안 정신줄 놓고 있던 사이에 휙 하고 저만치 떠나버린 세상의 빠른 변화와 트렌드를 한시라도 빨리 따라잡고 싶어 몸이 다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조급증이 든다 해도, 결론은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속도보다는 방향'


요즘 자꾸 여기저기서 이제는 '방향보다는 속도다'라고 떠들어대는 통에 잠깐 헷갈렸던 것 같네요. 귀가 얇은 편은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열심히들 달려 나가는 사람들에게 자극받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나만의 속도 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떨 땐 스피디하게 치고 나가는 게 최선의 방법인 듯 보이겠지만, 역시나 자기 상황이라는 것이 각자 모두 다른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를 따라가려고 몸 달아봐야 그건 하나 좋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결국 억지로 무리를 하게 될 테고, 40대부터는 그런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건 결코 어떤 것에도 답이 될 수 없으니까요.


여력이 되거나, 딸린 식구도 없어 자기 한 몸 불사르며 가도 되는 분들이라면, 꼭 그렇게 해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한때는 할 수 있는 만큼 엄청나게 무리를 하며 살았습니다. 두세 마리는 물론이고, 다섯 마리 열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정을 쏟기도 했고요. 그런 시기가 있었으니, 어찌 되었건 지금은 집도 차도 있고, 걱정 없이 밥이라도 먹고살며 아이도 키우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런 식으로는 인생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가정이 있고 아이를 기르는 한, 그 어떤 저의 욕심도 가족에 대한 제 의무와 사랑에 앞서게 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이렇게 사는 것이 언젠가 두 눈을 감는 순간, 일체의 후회도 없을 최고의 삶의 우선순위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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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미래를 향한 들끓는 의욕과 욕심으로 인해, 그 크기만큼 따라주지 않는 제 무능력과 처지, 그리고 상황들이 짜증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려고 합니다. 당장 세상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해서 큰일 날 것은 없을 거예요. 불안한 내 마음을 부추기고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수많은 악의 무리(?)들 만이 옆에서 계속 속삭일 뿐이지요. 설사 그런 악의 무리들조차 제 여력이 된다면야 얼마든지 긍정적인 자극제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다만, 그게 안 되는 처지라면, 가끔은 과감하게 끊어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겠지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나만의 속도 감각을 찾아보려 합니다. 누군가가 '방향보다 속도'라고 하는 말에 만큼은 동의할 수가 없네요. 진짜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속한 진입을 강조하려다 보니 그런 거겠지요.


언젠가는 저에게도 모든 것을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올 것임을 압니다. 그러니 방향만 맞다면 아주 천천히라도 가면 되겠지요.


아까 들었던 분주한 마음을 깊고 느린 복식호흡으로 단숨에 날려봅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잡무들은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 가보려 합니다. 다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들인데, 압박 속에 좇기며 한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결국 행복하기 위해 슈퍼 파워 따위는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진짜 중요한 게 무언지 아는 분별력과 조급해하지 않는 여유, 그리고 약간의 감사하는 마음, 그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요.


모두들 속도보다는 방향을 추구하는 삶을 사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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