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치유
실패로 마음이 다쳤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이만큼 살았으니, 웬만한 일로는 꿈쩍도 안 할 것만 같이 생각했는데, 아직도 살다가 넘어지면 똑같이 아프다. 기대했다 실망하면 여전히 가슴이 총 맞은 것처럼 뻥 뚫리고, 차가운 시선과 비난에는 한없이 마음이 시리고 절여온다. 인간은 통증에만큼은 결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런 게 바로 그 때문이가 보다.
그래도 마흔이면 이젠 좀 적응할 때도 됐는데. 인생한테 조금 섭섭하네. 살아온 연륜을 이렇게 인정 안 해주기 있기 없기?
오랫동안 기다렸던 결과가 나왔는데, 보기 좋게 미끄러져 버렸다. 30명이나 선발하는데, 그 사이에 끼지도 못했다. 애당초 끼게 될 것이라 언감생심 기대를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을까? 아무튼 생각보다 내상은 컸다. 안 그런척하면서 속으로는 과대망상으로 혼자 기대를 부풀리고 있었던 탓이 큰 것 같다.
결과 발표까지 기다리는데 기간이 어찌나 길었던지. 그 기간이 이렇게 길지만 않았어도 차라리 빨리 단념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염원은 쓸데없이 더 강력히 부풀려졌던 모양이다. 괜한 것에 역정까지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왜 떨어졌을까?
사실 나는 살면서 나름 메타인지가 발달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메타인지라는 것이 내 스스로가 어떤지를 가늠하고 있는 능력이라는 개념이 맞다면, 나는 살면서 그래도 대략 높은 승률로 내가 합격일지 불합격일지 정도는 파악을 해냈다. 완전히 운이 작용하는 추첨 같은 것이 아닌 한, 노력이나 실력으로 응모한 것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예상외의 선전을 거둔 경우가 더 많았는데.
이제 그 능력마저 녹이 슬어버린 걸까? 아, 이제는 뭘 믿고 이 험한 세상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하나?
기운이 쪽 빠져버렸다. 왜? 왜? 대체 왜? 대답해 줄리 없는 누군가를 붙잡고 계속해서 묻고 따지느라, 실생활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게 문제다. 주말은 내가 맡은 임무가 한가득인 날. 곁에서 계속 보채는 아이가 고민의 늪에 허덕이는 맥을 끊고, 이런 내 심경을 알 턱 없는 남편은 무심하게 너무도 평소대로다.
용기 내어 겨우 아픈 마음을 말해보았지만, 돌아오는 위로가 너무도 짧다. 눈빛도 너무 애절도가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나와 함께 수심 1만 리 해저까지 가라앉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오래, 조금만 더 아픔에 공감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면 내가 이 모든 걸 훌훌 털고 일어나 단박에 힘을 얻었을까?
어차피 나는 결론적으로는 다시 일어나 새 길을 찾을 셈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당장은 어느 정도의 애도의 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인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은 그 시간을 함께해 주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거나 너무 건조하다고나 할까?
어쩔 수 없다. 도움 안 되는 자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지 별 수 있겠나.
어차피 내 마음이 이런 이상, 실상은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밖에서 위로를 찾아봐야 무엇할까? 더 큰 실망과 상처만 입을 뿐.
자가치유. 몸도 면역체계로 스스로가 제 상처를 치료하는 게 자연계의 법칙인 걸 보면, 결국 마음도 자기 아픔은 스스로 삭이고 보듬어가며 치유해 가는 게 맞는 것일지 모른다. 물론 면역체계가 최종 작업을 끝낸다 해도 약을 바르거나 봉합수술을 하는 조치들은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내 마음에도 그런 도움이 되는 조치를 먼저는 조금 하고 싶었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의 존재로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적절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만한 이들을 곁에 두지 못했거나.
아무튼 시간이 가장 위대한 치유자임은 이미 알고 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잠. 그런데 잠이란 놈은 이럴 땐 꼭 어디 집을 나간 듯 잘 들어오지를 않으니 문제다. 이런저런 의문과 슬픔으로 골치 아픈 머리에서는 잠을 피해 자꾸만 과대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그러면 정신을 딴 데 팔 수 있게 연속으로 미드라도 시청하지 뭐. 가만, 정신을 팔며 한참 지칠 때까지 보고 나도, 이후에 밀려드는 먹먹한 마음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뿐.
그럼 뭐 남은 한 가지는 독서 밖에 더 있겠는가? 요 며칠 한참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라는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제목을 잘못 지었다고 해야 할까? 내용은 제목에 비해 훨씬 심도 있고 밀도가 있는 책이다. 상처와 좌절을 겪었을 때야말로 책을 읽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아무리 어려워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던 책이라도 술술 읽힌다. 세상 모든 내용과 주제가 결국 내 비애와 슬픔으로 통하는 것만 같다. 나에게 계시를 내려주려 이 삶은 책들 어딘가에 메시지를 숨겨놓았을지 모른다. 암호를 해독해내듯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한 며칠 책이나 읽으며 지내야겠다. 아픔에는 그에 걸맞은 의식과 기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너무 빨리 이겨내고 헤쳐내려고 무리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억지로 기쁜 척하고 다닐 필요도 없지 않을까? 슬프면 슬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안색 좀 어두우면 뭐 어떤가? 이런 비대면 시대에. 어차피 마스크로 다 가린 얼굴은 표정이 없을 텐데.
충분히 슬픔의 독을 빼내고, 실망의 고름을 짜내어야, 덤덤함이라는 딱지가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때 서서히 내 마음의 면역은 자가 치유를 하게 되겠지. 아직은 조금 힘겹지만, 그래도 감사를 드리는 일만은 거르고 싶지 않다. 감사가 어쩌면 내 상처에 연고이자 봉합 수술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먼훗날 이 상처는 삶에 그 어떤 의미로 변환되어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 의미의 인과관계를 깨달을 수 있게 하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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