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야 다 알겠지만, 마음이 안 따라주는 걸

마흔에도 이럴 줄은 몰랐지

by 에센티아
삶이란 에너지 수준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다시 한번 실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에너지, 어네지, 또 에너지다. 고귀함과 평온함, 지혜를 갈구하지 마라, 이 멍청이들아!"

-수전 손택


4월.

달이 바뀔 때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조급해진다. 누가 뭐라고 압박해 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오랜 강박과 내면의 목소리가 내게 외친다.


째깍째깍

금쪽같이 아까운 시간이 가고 있다! 하루하루 조금씩 늙어 가고 있는데, 대체 니가 이뤄 놓은 것은 무엇이더냐?


그러면 다급해진 내 마음은 한바탕 야단법석이 난다. 목표로 여기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힐끗거리고, 내가 만들어낸 숫자들을 체크해보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여지없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성과에 실망과 자책을 느끼며 한없이 쳐지기 시작한다.


아 대체 언제쯤에?

photo-1593642634443-44adaa06623a.jpg?type=w1 © xps, 출처 Unsplash

자기만의 속도와 페이스로 차근차근 꾸준히 해나가고 있음에 만족해야 함을 알지만, 이론과 실제 사이에는 언제나 갭이 있듯, 머리와 마음이 영 딴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머리로야 뭘 모르겠는가? 세상 모든 지혜를 머리로야 읽어서 다 알고 있지! 까딱하면 모두를 앞에 두고 강의라도 할 수 있을 판이다. 입으로야 무슨 말인들 못할까? 정작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머리와 말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이니까 그게 문제지!


내 머리는 생각한다.

다 괜찮다고. 이대로 계속 조금씩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눈에 띄게 점프해내는 날도 올 것이라고. 그래, 자연계에 일어나는 모든 성장의 실제 모습은 점진적 우상향 곡선이 아니라, 갑자기 껑충 뛰는 계단식이라잖아. 임계치를 넘어서고 변곡점이 오는 그 순간, 그 우연의 어느 한순간 폭발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 변화의 한순간이 올 때까지 그만두지만 않고 계속 파들어 가면 되는 거야!


하지만 언제나 덜자란 어린애 같은 내 마음이 또 물고 늘어진다.

그게 대체 언제냐?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그놈의 계단을 폴짝 오른다는 거냐?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 맞냐? 방향 잘못 잡고 엄한데 파고 있는 건 아니냐? 의욕 안 나서 못해 먹겠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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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칭얼대는 못난 마음에 휘둘리다 보면 머리는 이리저리 나름의 방안을 모색해 본다. 이게 진짜 맞는 길인지 의심도 품어 보고, 주위에 물어보기도 해보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수 일을 낭비하고 결국에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원점이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추슬러서 으쌰 으쌰 힘을 내보자고 등을 떠밀어 본다. 어차피 똑같은 패턴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어째서 조금도 더 강해지지 않는 게냐? 아주 작은 실망이라는 실금 한 줄에도 와장창 깨져버리는 유리 같은 마음이여!


나이가 마흔이 되어도 이토록 갈대처럼 흔들리고 연약하고 또 실망할 줄은 몰랐다. 스무 살 무렵에는 마흔이면 세상 사를 어느 정도 다 마스터하고 있을 줄로만 알았다. 내 마음도 뜻대로 다스릴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건 턱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세상에 어른이란 없다. 개념만 있을 뿐,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은 아닌 것이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그래서 이제는 웬만큼 유추해 볼 수 있다. 환갑이 되고 칠 팔십이 되어도 여전히 사람 속은 그다지 변함이 없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겁은 더 잔뜩 주어 먹게 되고, 확신은 더욱 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믿음이나 신념을 유지한다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시기심과 질투는 더욱 강해지고, 너그러움은 그 종적이 희미해진다.

photo-1490349368154-73de9c9bc37c.jpg?type=w1 © maartendeckers, 출처 Unsplash

그래서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조금씩 두려워지는 듯하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내 스스로 이뤄내지 못하게 된다면, 겁만 잔뜩 주어먹은 소심하고 시기심 가득한 뒷말 많은 노인네가 될까 봐서. '내가 해봤는데 잘 안되더라'라는 말 밖에 들려줄 얘기가 없게 될까 봐. 나는 속절없이 시간이 가버리는 것이 안타깝고 애가 탄다.


멋지고 폼 나게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자신만의 속도로 제 갈 길을 가라'라고 우아하게 속삭이고 싶지만, 정작 내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위선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인은 목표 달성에 안달 나 있는 주제에 앵무새처럼 똑같은 강의 대본을 읊조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꾸준해 보이는 모든 이들조차 실은 그 안에 의심과 회의를 품은 채로 어쨌든 해나가고 있다. 나는 개중에 진중하게 어려움을 속에 담아두고는 못 사는 엄살이 조금 더 심한 사람이기에 남보다 앓는 소리를 많이 낼 뿐.


그래도 누군가는 그 소리를 듣고 닥치지 않은 앞날에 대한 감을 조금 더 잘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우직하게 노력해 성공을 이뤄냈다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들보다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꺼질 듯했던 번민하는 영혼들의 이야기가 더 실질적으로 참고가 되니까.

photo-1593642532400-2682810df593.jpg?type=w1 © xps, 출처 Unsplash

4월.

어찌 되었건 또 새롭게 각오를 다져본다. 어차피 똑같은 각본으로 진행될 이야기라 해도, 시작은 하고 봐야 하니까. 다짐에서 기대, 기대에서 열정, 그러다가 기대에 못 미친 실망으로 이어진다 해도 결코 이 서사를 멈출 생각은 없다.


매월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매주, 매일, 또 아침마다 나는 새롭게 그 시간을 열어가겠다. 산다는 게 그런 거지, 뭐 달리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문득 나도 모르게 또 한 계단 디디고 올라서 있을 테지.

photo-1518710098200-0ed3bc1b05e1.jpg?type=w1 © thelensdaddy,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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