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센티아 Aug 30. 2021

한국인은 행복하기 어렵다고?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유전적으로 행복감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선천적으로 적게 분비되기 때문인데, 아난다마이드란 마라톤을 할 때 일정한 시간을 넘어서면 희열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로, 인간에게 공포심과 불안감을 이기게 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이 아난다마이드가 부족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고도로 몰입하거나 소유와 성취를 통해서만 자긍심과 만족감에서 비롯되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오마이갓! 이거 실화?

© Capri23auto, 출처 Pixabay



행복을 느끼는 아난다마이드가 부족한 민족들일수록 부지런하고 성실한 민족성 덕분에 커다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하니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인들이 상대적으로 아난다마이드의 자연 분비가 적다고 한다.



성실하고 머리가 좋으며 눈치가 빨라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한국인들은 오늘날 전 세계 여러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근저에 깔려있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라고 하니 조금은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국가적 큰 도약과 발전이 뭐 꼭 개인의 성장이나 행복과 절대적으로 연동되는 것도 아니니, 더 효율적이고 더 근면 성실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조가 내 인생을 더 신바람 나고 풍요롭게 해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역의 관계가 더욱 도드라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모두가 무엇인가에 몰두해 열심히 노력하고 성취를 이끌어내려는 사회적 분위기, 그 속에서 개인들의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어 서로가 서로의 경쟁과 시샘을 한층 부추기는 거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부터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부지런히 나이가 들어가며 자기관리에 점점 더 게으름 없이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감이나 평안이 더 증대되는 것 같지는 않다. 도리어 예전보다 훨씬 많이 가졌고, 더 많이 알게 되었으며, 아까운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며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차고 효율적으로 보내보겠다고 난리지만, 행복의 빈도와 크기는 점점 더 드문드문 옅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이걸 어쩌지?

© blende12, 출처 Pixabay


그러니 자꾸만 문득문득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성공하는 것이고 행복해도 될 자격을 얻는 거야? 그렇게 자꾸만 고개를 돌려 남들은 대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으며 내가 그들에 비해 과연 행복해도 될 자격이 있는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좋아 보이는 것들을 선별해 목표로 삼고 언젠가 그것들만 손에 넣으면 내게도 행복이 올 거라 믿지만, 막상 가져봤자 기대했던 만족감이나 기쁨과는 조금 다른 현실. 그런 갭으로 인한 실망감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삶에 대한 열의도 자꾸만 식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과 걱정을 다 해소하고도 남을 만큼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만 그나마 약간의 행복감이라도 느낄 수 있겠다고 해석한다면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더 많이 가져야 할 비교 대상 자체가 끝도 없이 계속해서 레벨이 높아가기만 할 테니 말이다.



그래도 아주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습성이 결국 나 혼자만의 특질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은 했 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한국인이 거의 그렇다지 않은가! 그럼 그걸로 되었지 뭐. 나 스스로가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인데, 이것이 애당초 이 구역의 디폴트 세팅이라면 차라리 안심이 되기도 한다. 자, 소수를 제외하곤 누구나 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이건 그냥 따질 필요도 없는 기본 조건으로 보면 그만인지 모른다.



마치 지금이 여름이라 더운 걸 뭐 어쩌란 말인가 하는 얘기와도 같은 것이다. 한국인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면 그렇게 살아야지 뭘 어쩔 것인가 말이다. 불안도가 높고 가만히 있어서는 도무지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행복해져보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뭐라도 찾는다는 것 아닌가. 무시당하거나 뒤처질까 무서워 열심히 부지런히 발버둥 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종자들이라는 건데 그걸 무슨 수로 막으리오.


© jimmydean, 출처 Unsplash


나 또한 그러하다. 더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는 생각에 차라리 홀가분해졌다. 어차피 한국 땅에서 여생을 살 거라면 나 역시 이 틈에서 열심히 불태우며 살다 죽는 수밖에는 없을지 모른다. 가만히 있어봐야 저절로 행복하지도 평안하지도 않을 거 더 열심히 살아나보자.



결론은 또 버킹엄인가? 캬~ 나도 무쟈게 옛날 사람 (이거 알아들은 사람들도 마찬가지 ㅎ)



아난다마이드를 주사기로 몸에 주입할 수 있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냥 맨몸으로 때우며 살아야 한다. 어디 한 번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가보자. 어차피 '무소유' 정신을 추구하며 누르고 눌러 마음 다스리는 편보다 이쪽이 차라리 쉬울 수 있어.


© whitney_wright, 출처 Unsplash


그게 여태 살며 겨우 얻은 결론이라면 결국 10년 전쯤 원점으로 회귀인가?



그건 아니지.


결론만 같은 뿐, 그 속에 꾸역꾸역 내포된 함의를 어찌 몇 자 글 따위로 풀어낼쏘냐.


인생이란 또 사람이란 그리 간단치가 않을진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많은 마음 수양을 하다하다 못해, 그 노력을 차라리 성취에 쏟아 붓는 것이 나으리라고 그렇게 관점을 전환해 보기로 한다.

© blende12,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여도 꽤 괜찮았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