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이야기, 일방의 기록
#6
시차 열 세 시간, 이 13이라는 숫자가 절묘했다. 이 곳의 낮 10시와 그 곳의 밤 11시. 그 곳의 낮 10시와 이 곳의 밤 9시. 내가 일찍 귀가만 한다면 통화하기 좋은 시간 조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가고 나서야 새삼 느낀 것이 있었다. 그런 적이 있기나 했을까 싶은 정도로 둘 다 평범한 라이프 사이클은 아니었기에 이보다 더 엇갈리기 좋은 조합도 없었다.
덕분에 그녀만이 아는 내 방 전화기는 항상 내가 없을 때 혼자 그녀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더욱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만을 생각해서 전화기 곁에 붙어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안타깝고, 그녀가 전화한 그 자체에 기뻐하다 끝내 난 콜백을 하지 않았다. 무슨 호기인지 그녀가 내 생각이 났기에 전화 했을 그 순간을, 그 순간에, 그 순간의 목소리를 듣기 바랐다. 일면 끝까지 전화하지 않는 그 고집에 대해 내 자존심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얼마 못가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녀가 오해할까 걱정부터 하는 못난 짓이 반복됐다. 살짝 어긋나는 타이밍, 쌓여가는 오해.. 따분한 스토리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드라마에 비해 내 현실엔 잘 짜인 우연은 없다는 것을 알아 불안했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새로운 생활에 완전히 적응을 한 것인지 갈수록 연락이 끔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멀지 않은 때에 ‘행복하게 오래오래 각자 잘 살았답니다’라는 롱디의 뻔한 결말이 더 이상 우리라 할 수 없는 나에게 다가왔다. 확인 도장이 늘어만 가던 내 숙제 노트가 끝나가는 것이다. 잘했다는 칭찬 도장이 모여 비극으로 귀결되려 하다니 모순 아니냐고 내지르고 싶었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그렇게 의식해서 끌어낸 무의식이 시킨 나의 몸부림들도 패잔병이 되어 돌아오는 이 상황. 언젠가, 하지만 지금이 아닌 나중에 보려고 마음 먹은 영화를 강제로 틀더니 시작도 내용도 없이 엔딩 크레딧만 보고 나와야 하는 기분이었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