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의 그리움이 담긴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
지난 9일 폐막한 ‘프리즈 서울’을 관람하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작품 가운데 하나가 변월룡(1916~1990)의 ‘어머니’였다. 학고재 갤러리에 들어가 그림을 보는 순간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이후 국내에서 여러 차례 전시되었던 변월룡의 보석 같은 대표작이지만, 실제 그림으로는 처음 보는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그림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변월룡의 어머니는 1945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변월룡이 어머니를 그린 것은 1985년이었다. 그래서 그림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베어난다. 하얀 머리의 어머니는 흰 저고리에 짙은 갈색의 치마 차림이다. 두 손을 매만지고 있는 어머니의 눈은 이미 제대로 뜨기가 힘들어 보인다. 어미니 옆에는 장독이 놓여있다. 늙어버린 어머니와 장독의 형상이 그 시절 우리들의 삶의 서사처럼 느껴진다. 사실 복잡하지 않고 장독 하나 놓여있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온 한 편의 서사를 보는 것만 같다.
변월룡은 지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과 제주도립미술관이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을 계기로 국내에 뒤늦게 소개된 화가이다. 한국전쟁 이후 활동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화가였는데 북한 미술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천재 화가'라고 불리울 만큼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다가 2016년 이후에야 국내에서 그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변월룡을 발굴해 국내에 소개한 이는 미술평론가 문영대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로 유학을 갔다가 1994년에 국립러시아미술관에 걸린 변월룡의 그림을 보면서 그를 국내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소련 사회에 들어갔지만 민족 차별을 심하게 겪었고, 북한에서는 숙청됐으며, 남한에서는 그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었다. 뒤늦게야 접하게 된 변월룡의 작품들, 특히 '어머니'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보았던 가장 인상적인 몇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변월룡은 그림 속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이 그림을 그렸고, 이 무렵 뇌졸중으로 고생하다가 그림을 완성하고 몇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웠던 어머니를 저 세상에서 만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