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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Sep 29. 2023

치매에 걸려 무너지는 우리들의 아버지

전무송 주연의 연극 <더 파더>, 영화 이상의 잔잔한 슬픔

안소니 홉킨스와 올리비아 콜맨이 주연한 영화 <더 파더>(The Father)를 봤을 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일까.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아기가 돼버린 아버지를 돌보는 딸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모습과 말, 감정과 마음을 실제처럼 표현했다.


그런데 연극으로 <더 파더>를 공연한다고 하길래 추석 연휴 첫날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를 찾았다. 아버지 앙드레 역에 전무송,  딸 안느 역에 전현아. 실제 부녀가 극에서 부녀로 출연한다. 안느와 동거하는 피에르 역에는 양동탁, 간병인 역에는 정연심, 요양보호사 역에는 심연화가 나온다.


(사진= 스튜디오 반)
(사진=스튜디오 반)


자존심도 많았던 아버지가 늙어가면서 치매가 악화되니 아무리 아니라고 현실을 부정해도 아이가 돼버리는 아주 슬픈 얘기이다. 영화와 연극 모두 같은 원작에 바탕했기에 스토리 라인은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나왔던 주요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도 나오곤 한다. 


다만 연극에서는 아버지 앙드레가 겪는 불안과 공포심을 전달하기 위한 무대 효과들이 사용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더 높여준다. 딸과 동거하는 피에르는 치매 노인 앙드레를 위협하며 공포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상황인지 앙드레의 환상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버지는 딸의 극진한 돌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치매가 악화되어 점차 허물어진다. 항상 시계를 차고 시계에 집착하지만 정작 시간 구분을 하지 못하게 된다. 과거에 있었던 일과 현재의 일이 분간되지 않고, 사람에 대한 기억이 뒤죽박죽 뒤바뀐다. 자기가 겪은 일이 실제인지 환상인지를 알 수가 없어 혼란에 빠지게 되곤 한다. 피에르는  아무도 없을 때면 언제까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거냐면서 시설로 보낼 것이라고 위협한다. 늙고 병든 아버지에게는 그런 위협 앞에서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런데 피에르가 실제로 그런 위협을 한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사진=스튜디오 반)


앙드레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시계가 안 보이는데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무용담도 늘어놓지만 소용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실수와 착각, 심지어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드러나곤 한다. 그러니 앙드레는 점차 앞날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수치심과 고통 속에 갇히게 된다. 자신은 현실을 부정하지만 점차 인지능력도 떨어지고 큰 착각을 하는 앙드레. 시간과 공간의 모든 것들이 뒤엉켜버린 생각에 그는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결국 아이의 모습이 되어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는 늙은 앙드레. 슬프게 흐느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된다. 아기로 태어나서 결국 저렇게 다시 아이의 모습이 돼버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실 얼마나 유약한 것일까.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모여사는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난폭하고 거칠기만 한 것일까. 마치 세상이 온통 자기 것인 양, 권력과 부와 출세의 욕망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던져주기도 하는 작품이다. 같은 작품을 보고도 거기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스토리는 치매에 걸린 앙드레에게도 난해하지만, 관객들에게도 쉽지는 않다. 어느 것이 실제 상황이고 환상이나 착각인지, 앙드레의 눈을 통해 보는 광경들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굳이 그에 대한 판단을 일일이 내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한 편의 추리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며 맛이다.


영화도 그랬듯이 연극도 특별한 사건 없는 일상의 얘기들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전해지는 슬픔과 감동의 결은 무척 잔잔하고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 영화에서는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가 대단했는데, 연극에서는 전무송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 아니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마침 실제 부녀가 극 속의 부녀로 나왔으니 느낌이 더 왔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유창선)
(사진=유창선)

이런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구나 "아, 나는 치매에 걸리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에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올 수 있는 병이 하필이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슬픈 병일까. 내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라면? 내가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자식이라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래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 마침 추석 연휴에 우리들의 아버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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