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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가 되었던 하이데거

철학은 관념이고 역사는 구체적 행동의 기록이다

by 유창선

"그렇기 때문에 쇠사슬의 제거만을 진정한 인간의 해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저 외부에 머물러 있으면서 인간을 그의 고유한 자기 자신에서 장악하지 못한다. 그저 형편이 달라질 뿐이지 그의 내적 상태, 그의 의지는 바뀌지 않는다. 결박에서 풀려난 자는 결박에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는 그렇게 바라면서 무의지를 바라는 것이다." (하이데거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테아이테토스≫ 가운데서>


“오직 총통 한 사람만이 독일의 현실이며 독일의 오늘, 독일의 미래입니다. 그리고 독일의 법입니다..... 히틀러 만세!” (하이데거가 1933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 학생신문에 쓴 글 가운데서)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있다.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테아이테토스≫는 하이데거가 1931/32년 겨울 학기 프라이푸르크 대학에서 했던 강의록이다. 국내 번역판이 절판된 상태라 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고 도서관들을 검색해봐도 찾기 어려웠는데, 분당도서관에 한 권이 있길래 빌려와서 읽고 있는 중이다.하이데거는 이 책에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재해석하면서 진리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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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권의 책은 이본 셰라트가 지은 ≪히틀러의 철학자들≫. 저자는 히틀러와 철학자들의 추악한 관계를 고발하고 있다. 거기서 대표적인 인물이 하이데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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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혼란스러움이 생겨난다.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 하이데거란 말인가. 철학자 하이데거와 인간 하이데거는 분리될 수 있는가, 그가 나치의 열렬한 동조자였다면 우리는 하이데거를 가르치거나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철학계 안팎에서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앞의 책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 대한 독해를 통해 인간이 참된 해방으로 이르는 길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방될 자가 해방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해방은 실패한다. 오직 해방될 자 자신이 자기 자신에로 자유로워지고 그리고 자신의 본질의 근거 안에서만 서게 될 때에만 그러한 해방이 진정한 해방이다." 진리를 찾아 근원적인 빛을 찾아가는 인간의 본래적인 해방을 얼마나 잘 통찰하고 있는가. 그런데 빌어먹을, 하필이면 그가 나치의 공모자였다니.....


하이데거가 이 강의를 한 것이 1931/2년 겨울 학기였고, 그가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나치를 찬양하는 연설을 한 것이 1933년이었다. 어찌보면 인간 하이데거가 철학자와 나치의 경계선에 있을 즈음에 했던 강의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안겨다주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철학은 관념이고 역사는 구체적 행동의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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