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연재를 시작하며
“인간은 장애와 맞서 겨룰 때 스스로를 발견한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인생은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인생의 사건들은 때로는 우리 삶을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놓는다. 올해 초 나는 뇌종양 진단이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았다. 시간을 끌면 돌연사 위험이 크다는 진단에 따라 하던 방송과 강의를 다 그만두고 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입원했다. 그 뒤 수술과 후유증, 합병증을 겪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다행히도 목숨을 건졌지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해야 했고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뇌를 열고 행해진 수술의 후유증은 간단하지 않았다. 뇌신경을 건드린다는 것은 온몸에 폭탄이 투하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겨울에 집을 나와 병원에 입원했는데 계절이 세차례 바뀐 이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 완치되려면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상태이다.
겪어야 깨닫는 것이 인간인가. 때로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때로는 수술 이후의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며, 순간순간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지 않았다. 병상에서는 ‘나는 왜 악착같이 살려 하고 있는가. 나에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떠올렸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에서 비행기 조종사기요메는 눈 덮인 안데스 산맥에 불시착하여 처절한 사투를 벌이다가 구조된다. 생텍쥐페리는 기요메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해준다.
“내가 살아 있다고 믿는다면, 아내는 내가 걷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지. 동료들도 내가 걷고 있으리라 믿을 거야. 그들 모두 날 믿고 있어. 만일 내가 걷지 않는다면, 난 개 같은 놈이 되는 거야.”
기요메는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악착같이 걸었다.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 위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위대한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나도 뇌종양 수술을 받으며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다. 내 몸을 망가뜨린 후유증을 견뎌내며 다시 일어서고자 했다. 내가 다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기에,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병마를 견뎌냈고 긴 재활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생텍쥐페리와 동료들이 그랬듯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사랑으로부터 나왔다. 토마스 만이 『마의 산』에서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라고 했던 이유도, 인간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을 때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픔과 고통의 터널 속에서 삶의 가치를 깨달았고 이제 터널 밖으로 나와 두 번째 삶을 꿈꾸고 있다. 앞으로의 삶은 나에게 무척 소중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하고 힘들었던,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아름다웠던 이 시간을 결코 잊지않을 것이다. 고통은 분명 괴롭고 힘든 것이지만, 고통 위에서 피어나는 꽃은 아름답다.
병상 침대 위에서 틈틈이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내려 갔다. 그리고 글들을 모아 지난 9월에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여기에 연재하게 될 글들은 그 책 가운데 일부이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단지 개인의 아픈 얘기를 다룬 투병기는 아니다. 갑작스럽게 큰 병을 치르게 된 한 인간이, 자신의 사랑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생각했고 꿈꾸고 있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내가 여기에 쓴 글들을 일기장에 보관하지 않고 이렇게 꺼내놓는 것은, 내 생각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웃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돌아보며 삶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함께 공감하고 서로가 마음을 나누고 이어질 수 있는 연재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제가 쓴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사우, 2019)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브런치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34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