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았던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인간의 삶이 우연의 연속에 의해 좌우됨을 보여주고 있다. 양로원을 관리하는 퀴니는 벤자민에게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는말을 하곤 한다.
실제로 영화 마지막에는 수많은 우연에 의해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데이지의 얘기가 나온다. 택시기사가 데이지를 칠 때까지 있었던 많은 일 가운데 단 한 가지만 달랐다면, 예를 들어 택시기사가 중간에 커피를 사러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데이지는 그 지점에서 택시기사와부딪히지 않았을 것이고, 데이지가 택시에 치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무수한 상호작용의 연속이며, 내가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인생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데이지는 그 우연한 교통사고 때문에 댄서의 꿈을 포기하고 만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 포스터
인생을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마다 꿈과 계획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아주 갑작스럽게 혹은 우연하게 발생한 일은 계획을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계획 없이 사는 인생의 위험과 나태함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인생은 늘 앞을 알기 어렵다. 미래가 이성이나 의지가 아니라 종종 우연한 사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며 미래를 설계할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살다보면 우리의 삶이 항상 논리적 인과관계에 따라 구성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나락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나의 2019년도 그러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제주도로 봄 여행을 갔을 것이고, 내년 총선의 해를 앞두고 방송 출연을 많이 했을 것이며, 좌담과 강연회에 다니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초겨울에는 중남미로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만큼 키운 우리 부부는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구경 다녔을 것이다. 그것이 나와 아내의 꿈이었고 설계였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사건으로 인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앞으로의 삶 자체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뇌종양이라는 무서운 병이 순식간에 내 몸을, 내 일상을, 내 삶을 덮쳐왔기 때문이다. 이 몹쓸 병이내 삶에 가져다 준 영향은 단순하게 끝나지 않을 망이다. 수술받고 몇 달 입원해서 치료하고 나면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그러니까 단순히 인생의 시간표가 조금씩 미루어지는 그런 모양새가 아닐 것 같다.
지금 겪고 있는 몇 가지 후유증이 앞으로 어디까지 회복될지 아직 알 수 없다. 1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으면 증상의 몇 퍼센트까지 회복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참고 기다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생활방식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단 6개월 후의 내 상태가 어떠할지를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약이 될지 아닐지는 가봐야 아는 일이다. 뇌종양 수술이 나의 삶을 지배하는 일대 사건이 되어버린 셈이다.
나는 과연 예전과 같은 삶을 다시 살 수 있을까?
버스 타고 먼 곳에 갈 수 있을까? 혼자서 도서관이며 카페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예전처럼 방송에 출연하여 시사에 대해 얘기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문학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뇌종양 수술이라는 사건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억울하지만 나는 병마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물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나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들이다. 나는 내 머리 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재활병원에서 재활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나에게 벌어진 이 모든 일이 나의 의사나 선택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그저 우연하게 생겨난 일로 내 삶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평소 의지의 힘을 그렇게도 강조했는데, 내 인생이 고작 우연히 찾아온 병 때문에 순식간에 함락되고 만다면 너무 어이없는 일이 아닐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우연이 만들어낸 엉뚱한 운명을 향해 탄식하며 욕을 해대겠는가, 아니면 순응하며 받아들이겠는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헝클어져버린 삶을 어떻게 추스르겠는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벤자민은 시간을 거꾸로 가는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배를 타면서 만난 선장은 전쟁 중 총에 맞아 죽으면서 벤자민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현실이 싫으면 미친 개처럼 날뛰거나 현실을 욕하고 신을 저주해도 돼. 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받아들여야 해.”
아주 우연히 찾아온 뇌종양이라는 사건이 언제까지나 나를 지배하도록 항복할 생각은 없다. 나는 주어진 현실을 담담하게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살아나갈 것이다. 병마가 만들어낸 운명을 이겨낸다는 것이 그 현실을 욕하고 저주하고 탄식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나쁜 병이 찾아왔을 때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이런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겁니까? 신이여,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습니까?”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그 현실을 이겨내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연한 재앙이나 병마가 착한 사람은 피해 가고 나쁜 사람만 골라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을 흔들어놓는 재앙이나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결코 원하지 않았던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현실이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만들어갈 수 있다. 우연은 때로는 인생의 설계를 뒤흔들어 놓지만 결국 그것을 다시 정돈하고 바로잡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계획한 것이든, 우연이 만든 것이든, 고정된 운명이란 없는 셈이다. 그러니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많다. 패배의식 속에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니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