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영화 <다가오는 것들>, 그리고 삶의 자유

by 유창선


일상은 소중하지만 지루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반복되는 삶은 재미도 느낌도 없다.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슴 뜨거운 무엇을 찾기 위해서는 종종 일상의 굴레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렇지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그냥 그럭저럭 습관처럼 살아가게 된다. 단 한 번뿐인 삶인데그렇게 되면 무척 슬픈 일이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중년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가를 그리고 있다.


ef3e827fee9c826186a86df135a2d01e928fd09a.jpg?type=w1200

<다가오는 것들> 영화 포스터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나탈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홀어머니의 딸로서 바쁘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는다. “왜 그걸 말해? 그냥 모르는 척하고 살 순 없었어?”라고 되물으며 그녀는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다. “평생 나만 사랑할 줄 알았는데… 내가 등신이었지!”라는 탄식과 함께.

어린 아이처럼 관심과 애정을 끊임없이 요구했던, 그래서 나탈리를 힘들게 했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다. 때마침 출판사는 시대를 못 쫓아온다며 나탈리를 철학총서 집필진에서 뺐다는 통보를 한다. 한꺼번에 들이닥친 상실의 시간이다. 그동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다 떠나가 버리고 만다.

나탈리에게 이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많은 것이 자신을 떠나갔지만, 나탈리는 슬프게 울지 않고 일상에서 자유를 찾는다.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독립했고 남편도 엄마도 떠났지.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이건 낙원이잖아!”

아, 많은 것을 갖고 사는 것 같던 나탈리도 그동안 온전한 자유를 한번도 누리지 못했었구나. 중년에 찾아온 자유. 나탈리는 마흔의 나이를 지나서야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비로소 자신을 위한 일상을 챙겨나간다.

나탈리는 혼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꿋꿋한 중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은 젊은 제자 파비앵과 나눈 대화의 한 장면.

“중요한 소식이 있어. 남편하고 별거 중이야. 이혼할 거야. 25년을 함께했는데 새 애인을 만났대. 괜찮아, 잘 받아들이고 있어. 여자는 마흔 살 넘으면 쓸모없어져. 그게 진실인 걸. 내 나이에 여자가 바람난거 봤어?… 별일 아니야. 삶이 끝난 것도 아니고. 실은 나도 각오하고 있었어. 동정할 필요 없어.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그거면 족히 행복해.”

나탈리의 영향으로 철학을 통해 삶을 알게 되었다는 제자 파비앵은 급진주의 학생운동가다. 이제는 보수화된 40대 철학 선생 나탈리의 모습이 파비앵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나탈리는 젊었을 때 공산주의 전단지를 뿌리며 혁명운동을 했던 전력이 있다.

파비앵은 그녀의 ‘신념과 행동의 불일치’를 비판한다. 서명이나 하는 참여 지식인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그때 나탈리는 이렇게 말한다. “급진성을 얘기하기엔 난 너무 늙었어. 게다가 다 해본 것들이기도 하고. 응, 나는 변했어. 세상은 나빠지기만 했지만 말야. 난 더는 혁명을 바라지 않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나탈리는 세상을 바꾸자는 청년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난 됐어. 이미 해봤거든.” 혁명에 대한 꿈에서 나탈리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파비앵은 나탈리의 과거이고, 나탈리는 파비앵의 미래인 것일까.

세월이 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생기고 다가오는 것들도 생긴다. 그러한 우리네 삶이 영화에서 잔잔히 그려진다.

당신에게는 나이 들면서 잃어가는 것이 많은가, 새로 다가오는 것이 많은가? 자유를 찾아 나선 나탈리이기에 잃은 것보다 많은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은 결코 잃어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갈수록 더 많은 것이 쌓인다.


ben-white-146950-unsplash.jpg?type=w1200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대답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제가 쓴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사우, 2019)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브런치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책 소개 바로가기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34659









매거진의 이전글인생의 시련을 대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