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삶은
세상을 배반하는 것인가

by 유창선


독자들 가운데는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나를 위한 삶을 산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누가 하는가. 그것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역사는 개인의 밀실이 아니라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온 것이 아닌가. 혹시 건강을 잃은 뒤라 심신이 약해져서 시끄러운 세상과 단절하고 혼자만의 삶을 살려는 것 아닌가 추측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죽을 고비를 넘긴지라 이제는 무거운 정신적 짐을 내려놓고 싶은 바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기 이전부터 나는 그런 삶을 그려왔다. 뜨거운 정념이 넘치는 광장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를 돌보는 삶, 그것이 내 생의 후반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왔었다. 내 생의 마지막 작은 촛불을 피울 곳은 바로 나 자신의 마음 속이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에 투병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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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석하게도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많은 한계를 안고 있는 유한자有限者이며 결함투성이의 존재들이다. 저기 저 높은 지위에서 세상의 박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많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능력이 있으면 자기 도취에 빠져 자기 수양과 성찰을 소홀히 하기 쉽다. 사람은 좋고 진실되지만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은 저마다 갖고 있는 것과 모자란 것이 서로 다르게 돼 있다. 그러니 누구든 자신의 유한함과 부족함을 겸손하게 성찰할 일이다. 자신이 마치 무오류의 인간이며 전지전능한 듯이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흔히 내가 없으면 세상이 안 돌아갈 것처럼 착각하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대신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내가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면 세상이 안 돌아갈 것 같은 착각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없어도 너무 잘 돌아간다.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낸 셀프 사명이었던 것이다.

개인에게 충실한 삶을 굳이 각박하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세상은 나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수천 년 인간 역사를 통해 수없이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자기 삶의 행복을 만들겠다고 자기로 돌아가는 삶은 서로가 격려해줄 일이다. 세상이 행복하지 않은데 나만 행복하려고 하면 되느냐는 피해 의식은 어찌 보면 게으름의 소산일 수 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행복하려고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행복하지 못한데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은 조작된 거짓 희망이다. 내가 행복해야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아는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미셸 푸코는 생애 마지막 3년 동안 주체와 진실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기 배려’ 개념이다. 푸코에 따르면 “자기 배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행위”이다. 푸코의 자기 배려가 권력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고 개인적 윤리의 장으로 피신한것은 아니었다. 푸코는 자기 점검과 자기 수양을 거친 윤리적 주체가 진실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푸코의 자기 배려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을 돌보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자신이 광장 속에 서 있으면 광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광장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기가 있던 곳을 볼 때 전체가 보인다. 때로는 관조하는 삶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열정을 식히고 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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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지성은 집단의 열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독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모두가 집단이 되어 하나로 획일화될 때 역사는 다시 뒤로 후퇴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삶은 정당하며 인간 본연의 가치를 살리는 길이다.


세상도 삶도, 칼로 두부 자르듯이 나누어지지 않더라. 그러니 굳이 칼로 잘라서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물을 일은 아니다. 여러 색깔의 삶 모두가 저마다 가치를 지닌 삶이다. 그 삶들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때 세상도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제가 쓴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사우, 2019)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브런치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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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3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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