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내 발로 걸어가는 인생

인생살이와 닮은 재활의 과정

by 유창선

재활병원에는 장기 입원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환자들이 지치지 않도록 외출과 외박 제도가 있다. 보호자의 요청이 있으면 매달 정해진 횟수 이내에 집에 다녀올 수가 있다. 수술하러 집을 나선 지 꼭 다섯 달 만에 집이 그리워서 잠시 집에 들렀다. 겨울 옷을 입고 입원했는데 어느덧 한여름이 되고 말았다. 종양만 제거하면 얼마 후에 집에 오는 줄 알고 집을 나섰는데 이렇게 오래되고 말았다.


이 날은 처음으로 휠체어를 차에 싣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집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여러 감회가 교차했다. 아, 내 발로 걸어서 집에 들어가는구나. 조심해서 걸어 다녀야 하는 상태지만, 한동안 앉기만 해도 실신하던 때를 생각하니 걸어서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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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내가 살아서 다시 집에 발을 디딘 것이 무척 반가웠나 보다. “집에 오니까 좋아?” 몇 번을 물었다. 사실 병원에 있으면서 집에 다녀오는 것에 대해 특별한 기대 같은 건 없었다. 그 집이 그 집인데 뭐 특별히 새로울 게 있겠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직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니 아내가 차려주는 집밥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대신 집에 가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나무가 우거져 있는 아파트 뒷길을 걸어서 탄천길로 내려가 산책을 한 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입원하기 전에는 흔하게 하던 일상인데,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길을 걸으면 마치 그때의 건강을 되찾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마침 무더운 날이었다. 아직 기립성 저혈압 때문에 강한 햇볕 아래 있으면 어지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해가 약해진 시간에 밖으로 나가자고 나를 붙잡아두었다.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산책을 나서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같았다.


아파트 뒷길로 가서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려는데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럴 때는 혹시라도 쓰러질 위험이 있으니 일단 앉아서 쉬거나 몸에 피가 잘 돌게 다리를 들어주어야 한다. 그날은 무더위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조금만 걸어도 어지러움이 반복적으로 느껴져서 조금 걸어가다가 벤치가 나오면 앉기를 반복했다.

“이상하다. 병원 운동실에서는 7층 옥상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사람인데.”


마치 자존심이라도 상한 듯이 나는 의아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 아내는 내가 사기를 잃을까 봐 걱정해서인지, “날이 무더우면 혈관이 확장되어서 저혈압이 심해질 수 있어. 그래서 무더운 날에는 조심해야 해”라며 좀더 의학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조금씩 걷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 몸이 풀렸다. 한번 몸이 풀려서 피가 원활하게 돌면 거침없이 걸을 수 있다. 그래서 탄천길을 한참 걷고는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내가 잘 걷고 있을 때도 아내는 옆에서 계속 물어본다.


“안 어지러워?”

“응. 괜찮아.”

“어지러우면 바로 말해. 벤치 없으면 그냥 바닥에 앉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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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갔다가 탄천길을 걷던 그날 한동안은 걷다가 벤치에 앉기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몸이 풀려 발동이 걸리니까 걷고 싶었던 길을 결국 다 걸었다.


내가 그날 걸은 길이 흡사 우리의 인생살이와 닮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출발부터가 쉽다. 그래서 남보다 앞서서 나아갈 수 있다. 다만 그가 가고자 했던 곳까지 갔는지는 나중에 가봐야 아는 일이다. 하지만 출발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환경 탓에 늦게 출발하고 좀 더디게 나아간다. 그렇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는 가고자 했던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걷다가 앉아서 몸을 풀기를 반복했던 것은 더 멀리 걷기 위한 나의 방법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결국 그날 가고자 했던 곳까지 걸어갔다. 휠체어 없이 온전히 내 두 다리로. 그러면 된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걸으면서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다.



제가 쓴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사우, 2019)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브런치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책 소개 바로가기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3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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