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 보다 가까운 곳부터 살필줄 아는 삶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열정적이었던 쥘리엥 소렐의 야망과 사랑, 그리고 파멸을 그린 작품이다. 중심 줄거리는 출세하기 위해 사제가 되려는 꿈을 가진 쥘리엥과 두 여인의 사랑 얘기지만, 단순한 애정 소설은 아니다. 귀족 집안의 레날 부인, 그리고 마틸드와의 사랑은 신분 상승을 위한 쥘리엥의 욕망과 맞물려 있다.
쥘리엥은 신분 차이를 넘어 마틸드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예전에 사귀었던 레날 부인이 마틸드의 아버지인 후작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쥘리엥은 곤경에 처한다. 격분한 쥘리엥은 레날 부인을 찾아가 총을 쏘고,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쥘리엥은 자신이 가졌던 욕망에 대해 토로한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멸시한다면 내게 무엇이 남겠습니까? 나는 한때 야심에 차 있었지만 그 점에 대해 자책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의 욕망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욕망이었다. 쥘리엥은 출세의 욕망을 가졌지만 귀족사회의 모습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혐오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진실을 사랑했다. …그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도처에 위선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협잡 뿐. 가장 덕망 높은 사람들에게도, 가장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그리하여 그의 입술에 역겨움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다, 인간은 인간을 믿을 수 없다.”
쥘리엥은 단지 욕망에 눈먼 비루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한 자존심을 가진 인물이다. 귀족들을 보며 야망을 불태우면서도, 여인과 사랑을 하면서도 자존심을 건 줄타기를 한다. 사랑과 야망, 자존심이 뒤섞인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존경받는 사람들이란 다행히도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들일 뿐이다. 사회가 내 뒤를 쫓으려 보낸 고발자도 수치스러운 짓으로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사형이다. 하지만 그 행위만 제외하면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발르노 같은 인간은 나보다 백배는 더 사회에 유해한 인간이다.”
사형을 앞둔 쥘리엥이 남긴 말이다. 그는 신분 상승의 야망을 가졌지만, 결국 그 사회에 대한 혐오를 토하며 죽었다. 우리는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자신이 혐오하는 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이루고자 욕망했던 쥘리엥의 삶은 애당초 비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쥘리엥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갖고 있는 부조리와 허위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도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가려는 모습을 도처에서 목격한다. 정의감과 욕망이 내면에서 교차한다. 자기가 사는 사회를 혐오하기에 성공함으로써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도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고, 그러면서 자아 분열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 속에서 인간의 삶은 종종 비극적이었다.
우리 삶의 딜레마는 이런 것이다. 고독 없이는 자기를 지키는 자유는 불가능하다. 한쪽에는 고독을 수반하는 자유의 삶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무리 짓는 성공의 삶이 있다. 고독을 수반하는 자유가 아니면 자유가 없는 성공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은 두 번째 길을 선택한다. 첫 번째 길은 고집스러운 소수 사람들만 간다. 나는 언제부턴가 첫 번째 길을 걸었다. 나는 그 길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저 나로서 살아왔다. 나는 끝까지 ‘나’이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나는 자기를 돌보는 자기 배려의 삶을 살게 되었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 상당 기간 더 노력해야 할 내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자연과 생명의 순리이다. 그 과정에서 세상과 더욱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세상의 한복판이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늙어가는 조용한 삶 말이다. 반드시 아파서가 아니라, 애당초 내가 그렸던 말년의 삶이 그런 모습이었다. 자기로 태어나서 세상으로 나갔다가 마지막에 다시 자기로 돌아오는 삶의 순리를 온전히 받아들일 생각이다.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서는 화려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삶이 꼭 존경받는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쥘리엥이 말한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들’은 아닐지라도 사회적 성취라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이 존경받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여러 겹의 겉모습을 벗겨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참 모습이다. 존경은 인간들 사이의 마음이다.
우리는 흔히 시대의 영웅을 존경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칭송하니까 함께 존경하는 습관에는 나의 진실이 제대로 자리하고 있지 못하다. 굳이 영웅이 아니고 거인이 아니어도, 내 주변에는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계급장 한번 달아본 적 없지만 내 진심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는 그가 작은 영웅이다. 남편이 아내를, 자식이 부모를, 후배가 선배를 믿고 존경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남들 따라 존경하는 유행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시선은 세상의 한복판에 놓인 화려한 무대만을 향해왔다. 이제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는 게 어떨까. 세상의 중심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숱한 화이팅을 외치기에 앞서, 고락을 같이해온 내 옆지기의 손을 한번 잡아주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닐까.
이제 내 삶은 세상으로부터 뒤로 한발 더 물러서 있게 될 것이다. 나의 시선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로 많이 향하게 될 것이다.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살아갈 사람은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존경의 언어들보다,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받는 신망은 비할 바 없이 깊은 것이다. 먼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부터 살필 줄 아는 삶이 곧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