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도덕으로 단죄할 수 있나

영화 <화양연화>, 영원 속에 봉인된 사랑 이야기

by 유창선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하지만 그 시간은 더 지켜지지 못했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왕가위 감독에 양조위와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 <화양연화> 얘기다.


상하이에 있는 한 건물에 두 가구가 마침 같은 날 이사를 온다. 홍콩 지역신문사 기자 차우 부부와 무역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리첸 부부. 두 사람은 이삿날부터 우연하게 계속 마주친다. 차우는 수리첸의 핸드백이 아내와 똑같음을, 수리첸은 남편의 넥타이가 차우 것과 똑같음을 발견하고는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마침내 자기들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정은 있지만 외로웠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가며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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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와 수리첸 두 남녀의 만남은 통속적인 불륜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전혀 통속적이지 않다. 두 사람은 감정이 깊어질수록 절제한다. 비록 바람을 피우는 자기 배우자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그들과 다름을 강변하려 한다.


“절대, 절대 선을 넘지 말아야 해요. 우린 그들과 달라요.” (수리첸)


영화에서는 그 흔한 러브신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시작한 남녀의 웃음도 들뜬 대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를 둔 관찰자의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이미지만 이어질 뿐이다. 그러니 보는 관객들에게 이들의 밀회는 불륜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는다. 이미 왕가위는 영화를 시작하면서 자막을 통해 이들의 사랑이 그럴 것임을 예고했다.


“그와의 만남에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버렸다.”


차우는 수리첸에게 미리 이별 연습을 하자고 제안한다. 차우가 손을 한번 잡아주고 떠나는 연습을 하자 수리첸은 눈물을 글썽이다가 그의 품에서 서럽게 울고 만다. 결국 차우는 수리첸을 위해 그녀를 떠난다.


차우는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사랑을 앙코르와트 사원에 있는 한 구멍에 영원히 봉인했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채 그렇게 봉인되었다. 만약 차우와 수리첸의 사랑이 봉인되지 않고 세상에 나타났다면 둘의 사랑에는 불륜이라는 딱지가 붙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전해진 것은 가슴 속에 영원히 묻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유부남과 유부녀의 사랑을 불륜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도덕에 반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우리가 <화양연화>를 보면서 애잔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두고두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도 모른 척 눈 감고 이 영화를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수리첸의 말을 믿어서일까.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아름답다고 믿는다. 남들과 다르다고. 그래서 모든 사랑은 단죄와 승복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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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감정이 충돌했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다운 것인가. 나를 억압하며 도덕의 질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도덕적 파산을 감수하며 자신의 감정을 따를 것인가. 차우와 수리첸의 사랑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은 이유가 단지 숨겨진 비밀로 봉인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 안에서 억압되어 있던 본성이 살아나 공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우리는 혼인과 가정이라는 제도 속에 갇혀 산다. 그 울타리를 감히 넘어서려는 행동은 도덕적인 지탄을 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경계하며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화양연화>는 자신이 도발해보지 못한 혼외 사랑의 대리만족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들’과 다르고자 했던 두 남녀는 함께 절제하며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도덕적 부채의식을 덜어주고 있다. 가정이 쳐놓은 경계선을 넘어설 엄두도 내지 못하며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차우와 수리첸의 사랑이 미완성으로 끝난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었을 게다. 자신은 그런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지언정, 그렇게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랑은 아름답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는 보호받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 하더라도.


영화의 마지막에 차우와 수리첸이 나눈 사랑의 덧없음을 말하는 자막이 나온다.

“그는 지나간 일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 모든 것을 볼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희미하기만 하다.”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영원 속에 봉인된 그런 사랑이 있었지 않은가.



제가 쓴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사우, 2019)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브런치에 맞게 다시 정리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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