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가오는 것들>과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 <다가오는 것들>과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가는 중년의 삶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중년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가를 그리고 있다.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홀어머니의 딸로서 바쁘지만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는다. “왜 그걸 말해? 그냥 모르는 척하고 살 순 없었어?”라고 되물으며 그녀는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다. “평생 나만 사랑할 줄 알았는데… 내가 등신이었지!”라는 탄식과 함께. 어린 아이처럼 관심과 애정을 끊임없이 요구했던, 그래서 나탈리를 힘들게 했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다. 때마침 출판사는 시대를 못 쫓아온다며 나탈리를 철학총서 집필진에서 뺐다는 통보를 한다. 한꺼번에 들이닥친 상실의 시간이다. 그동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다 떠나가 버리고 만다. 나탈리에게 이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많은 것이 자신을 떠나갔지만, 나탈리는 슬프게 울지 않고 일상에서 자유를 찾는다.
중년에 찾아온 자유. 나탈리는 마흔의 나이를 지나서야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비로소 자신을 위한 일상을 챙겨나간다. 나탈리는 혼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꿋꿋한 중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수화된 40대 철학 선생 나탈리의 모습이 제자 파비앵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나탈리는 젊었을 때 공산주의 전단지를 뿌리며 혁명운동을 했던 전력이 있다. 파비앵은 그녀의 ‘신념과 행동의 불일치’를 비판한다. 그때 나탈리는 이렇게 말한다.
“급진성을 얘기하기엔 난 너무 늙었어. 게다가 다 해본 것들이기도 하고. 응, 나는 변했어. 세상은 나빠지기만 했지만 말야. 난 더는 혁명을 바라지 않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나탈리는 세상을 바꾸자는 청년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난 됐어. 이미 해봤거든.” 혁명에 대한 꿈에서 나탈리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파비앵은 나탈리의 과거이고, 나탈리는 파비앵의 미래인 것일까.
세월이 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생기고 다가오는 것들도 생긴다. 그러한 우리네 삶이 영화에서 잔잔히 그려진다. 영화는 딸이 낳은 손자를 안고 있는 나탈리의 모습에서 끝난다. 나탈리의 행복은 이제 다른 색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온전한 자유를 찾았다고 말한 그녀는 과연 더 행복해진 것일까. 막상 내 손으로 잡으면 바스라지는 가짜 행복이 아니라 두고두고 지속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국 스스로 자유를 찾는 것이 그 길이 될 것이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지루한 일상에서 일탈한 장년 남성의 자유로운 며칠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파스칼메르시어의 같은 제목 소설을 빌 어거스트 감독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오랜 시간 고등학교 선생으로 평범하게 살던 57세 남성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히 길을 가다가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던 한 여성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비에 젖은 붉은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끌림으로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열차 안에서 아마데우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으며 감동을 받은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라는 인물의 삶을 추적하는 길에 나선다. 영화는 아마데우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1974년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의 시기로 거슬러가며 전개된다.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열차에 오른 작은 사건은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강한 궁금증에 휩싸인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 아마데우의 옛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40년 살라자르 독재정권 시절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것에 반감을 가지며 성장한 의사 아마데우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아마데우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동료들과 반독재 결사조직을 결성해서 혁명을 시도했던 청년이었다. 사랑이란 것을 믿지 않았던 아마데우였지만, 친구 조지의 여인 스테파니아와의 사랑 때문에 그들 사이의 우정은 무너진다. 그레고리우스는 레지스탕스에 함께 몸담았던 아마데우, 조지, 스테파니아에 얽힌 우정과 혁명과 사랑, 질투와 배신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오던 그레고리우스에게 아마데우들의 열정적이고 뜨거웠던 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말한다.
“그의 삶이 너무나 특별해서 제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그레고리우스가 남긴 마지막 자조적 독백.
“내 인생은 뭐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까. 인생은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님을,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결단을 내려야 함을 두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나의 가슴은 너무 오랫동안 식어 있지는 않은지,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느덧 습관처럼 살아가는 삶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오늘을 사는 중년들에게 나탈리와 그레고리우스는 묻고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는 대답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용기를 내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