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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Nov 25. 2020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건

Everything changes Nothing changes

첫째를 낳기 전이였으니 태어난 지 11년 된 그녀의 나이로 생각해보건대 12~13년쯤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유럽 출장을 다녀온 남편은 프랑스에서 대접받은 온갖 맛있는 코스요리와 독일의 맥주와 치즈 등에 예찬을 늘어놓았다. 희미한 기억의 실타래를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도무지  선물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내 선물은  공항 면세점에서 세트로 팔던 걔 중 가장 가성비 좋은 화장품이었을 게다. 남편은 공함 면세점을 돌아다니다 너무 예쁜 가방을 보았다고 흥분했는데,  명품이라면 질색하던 그도 그런 가방이라면 하나쯤 사고 싶다고 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hem이라는 철자를 보았다며 이름이 햄 으로 시작하는 브랜드를 찾아보라고 했다. 비싼거라면 고개부터 젓지만 예쁜 건 잘 알아보는 그가  반했다던 그 가방은 다름 아닌 Hermes 에르메스였다.  물론 그 가방의 가격을 확인한 남편은 다시는 그 가방을 사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어마하게 비싼 브랜드의 가방은 Sns 시대의 개막과 함께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고 비슷하게 생긴 가방들도 여러 군데에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물론 진품과 구별하기 어려울수록 가품의 등급도 높아지며 그 가격 역시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러든 저러든 나랑은 크게 관계없는 일이라 딱히 관심은 가져 본 적은 없다. 다만  그곳에서 나오는 화려하고  세려 된 문양의 스카프는 가끔 나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나풀거리는 스카프를 멋지게  두른 멋진 여자들을 보면 저 고운 천이  저 바닥에 어디쯤  떨어진 나의 자존감을 적어도 발끝정도까지는 올려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카프 하나가  쉬이 걷어올려줄 만큼 당시 내가 느끼는 바닥은 얕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1-2년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동갑의 남편은 나랑은 성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메사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털털한 나에 반해 목표하는 것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신을 쏘아댔다. 감수성이 철철 넘쳐 노래 한 구절 소설책 한 권에도 마음이 쉬이 철렁이는 나와 달리 매사에 현실적이었으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을 가진 나를 한심해했다. 너무나 다른 우리가 결혼이라는 관문을 넘어설 수 있었던 건 캐나다의 푸른 나무 아래서 함께했던 그 시간의 그를 믿으려는 나의 마음, 내가 아들 셋 큰며느리로 어느 정도  역할을 해 낼 것 같다는 남편의 기대, 그리고 30살이 되기전 철부지 같은 두 아이를 얼른 결혼시키려는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양가 부모님 덕분이었다. 하지만 신혼여행부터 나와는 너무 다른 그의 비난이 칼날처럼 가슴에 박히곤 했다. 딩시의 나는 "견뎌낸다"라는 표현을 종종 일기장에 적곤 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이었다. 어릴 적부터 현실적이었던 그는 4학년 2학기를 남기고 있었고  돌아가서 취업을 못할 경우를 대비해 영어  과외라고 하겠다며 TESOL 수업을 신청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건설일을 하셨던 아빠는 중동 건설현장에 오래 나가 계셨기에 나는 아빠와의 기억이 별로 많지 않았다. 당시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하시겠지만 우리 아빠 역시 바쁜 일에 가정은 뒷전인 경우가 비일비재했기에 나는 꼭 가정을 우선 히 하는 자상한 남자와 만나리라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엔 당시의 남편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정을 책임질 사람 같아 보였고 다소 안 맞고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내가 맞추어가면

꿈꾸던 다정한 가정을 만드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되었다. 중간에 흔한 다툼과 이별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나와 너무 다른 그와의 생활은 성공적이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는 깨달음으로 변해갔을 땐 이미 10번도 넘는 결혼기념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요즘 그는 조금 달라졌다. 우는 일이라곤 구경할 수 없던 그가 영화를 보며 콧물을 훌쩍이며 울어댄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나에겐 참으로 생경한 일이다. 신혼 초기에 친구에게 그는 눈물이 없는 사람 같다고 한숨 섞인 이야기를 한 적도 있으니까. 그런 그가 TV 화면 앞에서 훌쩍이고 있다니. 호르몬의 변화인가? 비단 눈물뿐만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 종종 뾰족해지던 그가 근래에는 둥글둥글 무뎌져 찔러도 아프지 않은 바늘이가 되었다.  귀국 후 많은 변화와 스트레서 오는 일시적인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15년이 되도록 보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모습들이 조금 놀랍기는 하다. 사람이.. 변하는 건가?

Everything changes Nothing changes 에르메스의 광고 캠페인에서 나온 말이다. 회사는 변해도 핵심 가지 친 장인정신과 최고의 품질은 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이라고 한다. 책을 읽다 발견한 이 구절을 보며 나는 10여 년 전 이 고가의 브랜드를 처음 알고 흥분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 우리는 많이 변했을까? 외모도 생각도 기운도 모든 것이 조금쯤은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밤새서 무언가를 해도 지치지 않던 체력도 그러하고 부모 되기 전 치기 어린 시선으로 보던 세상사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캐나다에서 길을 걷다 엎어진 나에게 다정히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고 흙이 묻은 손을 깨끗이 닦아주던 그 사람은 분명 마음이 따뜻한 이였다. 그는 마음이 약하고 동정심도 많아 착한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못 견뎌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따뜻한 마음이 변했던 적은 없었으나 다만 생활이라는 현실의 늪이  그 마음에 장막을 드리우곤 했던 것뿐이리라. 요즘의 변했다고 느끼는 그는 실상은 변한 게 아니라 항상 있는 "그"인지도 모르겠다.


위의 광고 카피를 소개한 그 책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의 본질과 그의 본질. 수많은 다른 이유를 댄다 하더라도 그와 내가 만났던 건 서로의 본질을 알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이 남자가 이 여자가 이러한 사람일 거라는 근본적인 믿음 말이다. 그 안에 세부적인 것이야 하나도 맞지 않아 매일 삐걱거리고 싸워나가지만 그에게도 나에게도 서로를 선택했던 변하지 않는 핵심 가치가 분명 있을게다. 비록 결혼이라는 삶이  다른 핵심가치가 더 중요하다 이의제기를 한다고 해도 말이다 .  꽉 채운 15년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결혼생활 이란건 잘 모르겠다. 다. 그래도 말이야.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건 하나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참 안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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