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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Nov 28. 2020

요리 맛이 좋아진 비법

한국에 온 뒤로 요리 솜씨가 좋아졌다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코다리찜에 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온 집안 얼큰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을 뚝배기에 담아 식탁에 얼른 올려놓았다. 뚝배기의 열로 아직도 보글보글 끓고있는 국물을  남편이 얼른 한 숟가락 퍼먹어 본다. "신기하네. 똑같이 하는 것 같은데 왜 미국에서보다 맛이 좋아졌지?" 미국에서 돌아온 지 4개월. 남편은 종종 미국에서 보다 요리 맛이 좋아졌다고 얘기한다. 그 비법이란 게..



부끄러운 일이지만 결혼하지 전까지 요리라곤 해본 적이 없었다. 요리만화를 좋아해서 초밥왕이라 요리의 달인 같은 만화 시리즈를 100권도 넘게 읽어댔지만 실제로는 쌀 한번 씻어본 적이 없는 채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당연히 내가 요리를 할 거라 여겼던 남편과 당시 같이 살았던 시동생의 기대와 달리 당황한 난 쌀 씻기를 잊은 채 밥을 안치는 참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그 일은 지금 이 글을 통해 처음으로 밝히는 것이니 당시 그 밥을 먹었던 나의 남편과 시동생은 모르는 일이다. 이 정도야 애교로 넘어간다 하지만 이 똥 손의 요리실력으로 시동생에서 잊지 못할 음식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다.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2006년 나는책과 요리카페를 뒤지며 차마 요리라 말하지 못할 것들을 해댔는데, 어느 날은 용기가 생겼는지 집 앞 장에서 토란대를 사 와 육개장을 끓였다. 자랑스레 끓여놓고 출근을 했는데 문제는 이걸 먹은 시동생이 토란대 알레르기로 목이 부어 병원에 갈 만큼 고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동생이 공무원 시험 준비로 우리 집에 잠시 와 있었는데,  낯선 도시에서 공부하는 것도 힘든 판에  그 고생을 했으니 차마 시동생 얼굴을 볼 낯이 서질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토란대는 아린 맛을 제거하기 위해 쌀뜨물에 이틀 정도 담가 둬야 한다고 한다. 장에서 아주머니가 삶아놓은 것이니 그냥 갔다 끓이면 된다는 말만 믿었는데 하필 시동생이 토란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줄이야.. 다행히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을 걱정한 시어머니가 이삼주에 한 번씩 반찬을 보내주시는 덕에 육개장 사태 이후로는 큰 탈없이 시동생과의 동거를 마칠 수 있었다. 


육개장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더라 주부라는 이름을 가진 이상 요리와  영영 이별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엄마가 되고 나면 맛이 어떻든 아이를 위한 것들을 해내야 하는 것이 엄마의 삶 아니겠는가. 다행히 양가 어머니가 종종  김치 같은 큰 반찬들을 해 주시는 덕에 간단한 찌개나 국, 계란 요리 몇 개면 아이 둘을 건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닌 뒤부터는 점심 문제 또한 해결되었고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나 대신 아이들을 봐주는 친정 엄마가 아이들 저녁을 해 주었기에 나는 아침만 해결하면 되었다. 문제는 솜씨 좋은 시머어님 아래서 자란 입맛 까다로운 남편이었는데, 이 또한 다행이게도 오랫기간 주말부부로 지낸 덕에 주말에는 간단한 요리 한 번과 외식으로 지나갈 수 있었다. 학원강사로 일했던 나는 주말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남편과 아이들이 바로 옆 친정에 가서 밥을 먹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딱히 요리란 건 할 일 없이 13년을 버텼던 나에게 나름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미국 중부 시골에서의 2년간의 생활이었다. 



내가 있던 곳은 다양항 인종이 섞여있는 동부나 서부와는 달리 백인 중심 문화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중부였는데 이곳이 백인들은 자신들이 진짜 미국 문화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들이 자부심이야 어떻든 미국 시골의 작은 도시에서 한국의 식재료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있던 도시에 두 곳의 한인마트가 있긴 했지만 그야말로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라 마트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직수입된 물건들은 꽝광 얼다 못해 돌덩이가 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제들은 한국 제품 같은 브랜드를 달고 있었지만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나마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집어오는 것들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이곳에 온 이들이 누리는 사치라면 싼 고깃값이었는데 안타깞게도 남들이 다 좋아라는 그 고기는 싫어하고 온통 땅 떵이뿐인 미국 중부에서 생선을 그리워했다. 미국 마트에 가면 생선회 등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양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맛이 있지 않았고 생선 등도 한국에서 보던 것들과는 달랐다. 대구 하나 구워주려고 해도 얼마나 비싼지 차라리 소고기나 구워주자며 집게 되었다. 


한인마트에서 얼다 못해 돌처럼 굳은 코다리를 사 오는 날이면 그걸 녹여 손질해야 하는 일에 한숨부터 나왔다. 오븐에 넣어 간단히 구워내는 스튜 같은 것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런 것을 식탁에 내어도 먹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남편은 햄버거를 사 먹는 건 죽어도 싫다며 도시락을 싸 달라고 했고 아이 들고 학교에서 나오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며 역시 도시락을 가져갔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일이  처음 6개월은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여행을 다니면서도 비용을 줄이고자, 혹은 여행지에서 딱히 먹을 곳이 없을 때를 위해 새벽마다 도시락을 쌀 정도로 익숙해졌다. 미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가족들 특성상 그야말로 삼시 세끼를 차려야 했기에 하루 종일 부엌에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종종 있었다. 만두가 먹고 싶으면 꽁꽁 언 만두피를 사다 녹여서 온갖 만두소를 만들어 섞어 만두를 빚었고 어느 날은 단팥빵이 먹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팥을 삶아 조리고 몇 시간의 발효를 거쳐 빵을 굽기도 했다. 당시 엄청나게 삻아둔 팥을 처리하느라 버터를 잘라 앙버터를 해먹기도 하고 단팥빵을 가득 만들어 주변 이웃들에게 잔뜩 돌리기도 했다. 분식이 그리울 때마다 떡볶이며, 튀김은 또 얼마나 했는지.. 미국 가기 전까지 튀김 요기 한 번 안 해봤던 내가 이제 오징어튀김도 제법 두렵지 않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나의 음식에 큰 환호를 보내진 않았다. 열심히 한다고 다 맛이 있는 건 아니니깐.. 괜찮다.... 다만 아주 조금 괘씸할 뿐이다.



2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겨우 2년이란 말이 무색하게 또다시 신세계였다. 반조리 식품은 그 종류가 더욱 다양해졌고 맛 또한 훌륭해졌다. 냉동생지로 구운 크로와상은 갓 구운 빵 못지않았고, 냉동 붕어빵을 에어프라이어에 살짝 돌려주면 간식 걱정은 5분 만에 해결이 되었다. 야채랑 생선도 얼마나 다양한지 한번 장을 보러 나가면 사고 싶은 재로 들이 한가득이었다. 싱싱한 생선들이 매대에 놓여있는 것을 보면 얼른 사다가 육수를 내서 

맑은 국을 끓여내고 싶었다. 고깃값은 싼데 비해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던 미국의 사골에 비해 품질도 가격도 좋은 사골을 사다 한 솥을 끓이니 뽀얀 국물이 우러나서 두 끼는 저절로 해결이 되었다. 비단 요리뿐이랴. 버튼 앱 하나로 편히 먹을 것들이 배달이 되니 피곤한 날에는 가끔 아이들과 그토록 졸라대는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먹기도 했다. 진정 이곳이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외국생활이 체질에 맞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한국의 편리한 배달과 반조리도 한껏 게을러진 나는 조금씩 요리하는 것이 귀찮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맛있게 먹는 가족들은 보는 기쁨만큼 주부에게 또 뿌듯한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현재는 반조리식품과  완조리를 왔다갔다 하며 나름  현명한 주부생활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은 분들은 지금쯤이면 그래서 도대체 요리 맛이 좋아진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다. 사실 아직도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솜씨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남편이 궁금해했던 비법을 밝혀보자며면, 그건 바로


신토불이! 우리 요리는 우리 땅에서 난 재료로 먹어야 한다는 것!

내가 지난 2년간의 미국 생활 동안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본연 이상의 맛을 내며 즐기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이건 나만의 생각임을 소심히 밝히는 바이다) 플러스 국물 맛을 더해주는 각종 양념들의 도움도 있었다는것도 안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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