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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Nov 19. 2020

지금도 어디론가 가고 있을 당신에게

비 오는 날 아침에

학교 다녀오겠다고 씩씩하게 집을 나선 둘째가 1분도 안되어서 다시 돌아왔다. 놓고 간 게 있는지 물으니 "비가 너무 많이 와. 같이 가줘"라며 쑥스럽게 말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15분은 걸리는데 빗속을 뚫고 혼자 가는 게 걱정되는 모양이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강풍주의보라는 예고대로 빗물이 우산 안으로 들이쳐 이내 신발과 옷이 다 젖어버렸다.


"비가 많이 오면 학교가 취소되지 않을까?" 아들이 묻는다. 아직은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학교 간 날이 더 많은 아들은 눈이 오는 날이면 수업이 자주 취소되었던  미국  중부의 겨울학기가 생각나는 듯하다. 우리가 2년을 보냈던 아이오와 주 에임스에서는 10월부터 눈이 내렸고 아침마다 차로 아이들을 데려다줘야 했던 나는  아침마다 서리를 맞아 꽁꽁 얼어있는 창문을 녹여내느라 매번 애를 먹었다. 춥고 눈 오는 새벽이면 나 역시 오늘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전화나 문자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더란다.  아이들은 눈을 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게 웬 떡이냐며 잠옷 차림으로 신이나 방방 뛰어다녔다. 올해 2월까지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으니 가끔 그런 떡이 다시 떨어지 않을지 기대하는 아이의 간절한 바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엄연히 대한민국. 이 정도 비에 학교가 취소되는 일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학교까지 가는 길이 꽤 멀다. 예전에 살던 도시들은 아파트 단지 안에 학교들이 있어서 큰 아이는 학교 가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때문에  이 집에 이사 와야 했을 때 나를 끝까지 고민하게 했던 건 집과 학교 사이의 통학거리와 그 사이에 버티고 있는 6차선의 큰 대로였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긴 통학거리에 잘 적응했고 나보다 더 알아서 차조심을  하며 간혹 내게  차가 다니는 길에서 조심성이 없다면 잔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게다가 등교시간에 늦지 않게 나서야 하니 자연스레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듣는다면 예전에는 한 시간씩 걸어서도 학교에 다녔으니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걸을 일이 많지 않던 아이들이 등하교 시간이라도 걷게 되어서 그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는 길을 가방과 준비물을 들고 한참을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모로서 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아이 앞으로 또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들 앞으로 또 다른 아이들 그렇게 줄지어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군대 행렬이라도 하듯이


 바로 옆 도로에는 수많이 차들도 책가방 못지않게  끝이 없는 행렬을 이루고 있다. 아침마다 저 고단한 줄을  뚫고 일터로 향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문득 차들의 뒤태가 무척 고단해 보인다.    비 오는 날이라고 틀어줄 라디오의 달콤한 음악이 저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귀에  어떻게 들릴지 문득 궁금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도는데 아들이 빨리 가자며 재촉한다. 아이의 가방은 우산을 썼다는 게 무색하게 다 젖어있다. 물이 고여 웅덩이를 이룬 곳을 지나다 보니 어느새 신발까지 다 젖어버렸다. 저 젖은 신발을 신고도 제시간에 도착해서 끝까지 수업을 마쳐낼 아이가 오늘따라 자꾸 애처롭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어도 정해진 곳으로 어김없이 가고 있는 우리들. 비에 젖어 눅눅해진 몸을 끌고 도착한 그곳엔 오늘은 어떤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는지. 그 일이 혹여 더 고단함을 주지는 않을런지.. 삶을 영위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네가 유달리 짠해지는 아침이다.  어느 순간 끝날지 모르지만 또 어쩔 땐 한없이 길 느껴지는 우리네  인생은 내일도 그다음 날도 출근을, 등교를, 만남을, 일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허나 지치지 말자. 비가 그치는 내일은 본격적으로 추워진다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추위 속에 또다시 따뜻함을 도모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하여 우리네 삶도 비 온 뒤에 맑음을 따뜻함 뒤에 추위를 또 그 추위 뒤에 다시 올 따뜻할 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리라. 오늘은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이 또한 살아갈 이유가 되지 않을까 위로해본다.  오늘,  이 비를 뚫고 도착한 그곳에 당신을 웃음지게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도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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