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학교종이라는 앱을 이용하여 학부모님들에게 필요한 사항을 전달하고 있는데 각 반의 알림장도 앱을 통해서 전달되기에 나같이 꼼꼼하지 못한 아들을 둔 엄마들은 앱의 알림장을 통해 아이의 준비물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알림장에는 학부모 사인 안 받아온 친구들 4명, 배움 노트 통과하지 못한 친구 4명이라고 표시되어 내일까지 꼭 제출해야 한다는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4명 중 한 명이 우리 아들일 거라는 나의 예상은 역시나 적중했다. 아들이 사인을 받아가야 하는 여러 종이 중에는 화려한 빨간 색연필이 유달리 눈에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아들의 수학 시험지였다.
총 20문제의 빼곡히 적힌 문제들엔 앞쪽에만 쭈르르 6개의 동그라미가 모여있었고 뒷장은 손도 대지 못한 걸 보여주듯 깨끗한 종이 위에 무자비한 빨간 막대기만 죽죽 그어져 있었다. 시험이란 것에 익숙지 않아도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주는 위압감은 저절로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아들은 연신 내 눈치를 살핀다. 마음속으로는 참아햐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하얀 뒷장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너 왜 뒷부분은 하나도 못 풀었어?" 끝내 내뱉고 말았다. "뒷장까지 풀 시간이 없었어."아들이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진다. "너희 반 아이들 모두 같은 시간 내에 푸는 건데 다른 아이들이 다 풀 동안 너만 시간이 없었어?." 결국 난 또 두고두고 후회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내 눈치를 살피던 아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한다.
아들은 12월생이다. 주위에서는 12월생 아들을 키우려면 조금 늦되더라도 기다릴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아들은 말이 빠른 편이었다. 20 개원을 넘어섰을 때부터 제법 문장 단위의 말들을 구사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과 문맥을 맞는 문장들도 내뱉곤 했다. 고습 도치 어미는 이제 두 돌이 지난 아들의 유창한 언어 실력을 보며 언어영재의 꿈을 키우키도 했지만 꿈은 딱 거기까지였다. 말이 또래보다 유달리 빨랐다면 글자 인지는 또래에 비해 현저히 느렸다. 여타의 이유로 5 제 세부터 보냈던 영어유치원에선 7살이 되었는데도 리딩과 파닉스가 잘 되지 않는다며 아이에게 난독증 검사를 권유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즈음에 한글 읽기를 마친 상태라 난독증이 아님을 확신한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원장에게 분기탱천했지만 간신히 한글을 잘 읽는 걸 보니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고 애써 에둘러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그냥 두면 알아서 글을 읽는 아이들도 많은데 나한테 유난을 떨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하며 후회하고 있다. 내 상황이 이랬노라 사실 나도 그리하고 싶지 않았다고 아무리 구구절절 이야기해봤자 결과적으로 난 어린아이를 일찍부터 영어유치원이라는 곳에 노출시켜 스트레스를 가중시킨 극성 엄마일 뿐이었다. 남편의 국비유학으로 미국에 2년간 가게 되었을 때, 벌여놓은 학원사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를 찰나였지만 이렇게라도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오롯이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나는 기꺼이 모든 것을 빠르게 정리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학제가 달라 3학년이었던 누나는 4학년으로 입학하였지만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간 아들은 반 학년을 낮춰 다시 1학년 첫 학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난 아들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듯해서 무척 마음이 놓였다. 나의 죄책감을 가중시켰던 아들의 영어유치원 생활은 읽기에서는 스트레스를 주었으나 말하기는 여전히 빨랐던 덕에 미국에서의 의사소통도 어렵지 않았다. 여전히 몇몇 파닉스 파트를 어려워했지만 미국 학교 1학년에게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제 나이에 맞게 처음부터 시작하는 공부에 아이는 무척 신나 했고 이전에 배운 것보다 더 자세히 제대로 익혀가며 그렇게 진짜 파닉스를 배워나갔다. 나는 이런 아들을 지켜보며 다시는 이 아이에게 선행이나 빠름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미국 1학년의 수학은 한국 아이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아들은 수학 시간이 너무 시시하다며 말해댔고 4학년 수학을 맞아 쩔쩔매고 있는 누나에 비해 상대적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1, 2학년 수학은 아들에겐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가끔 계산문제를 빨리 풀어 상장을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에서 2학년을 마치고 온 아들은 돌아와 반학기를 건너뛰어 3학년 2학기로 들어갔다. 아이의 상황과 수준을 고려할 때 반학기의 공백은 부담스러울 게 분명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BS 문제집을 구입하여 나름 공부도 해 보았지만 문제는 정해진 식에 맞추어서 시간내에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답은 구해도 정해진 식을 따라 푸는 것을 어려워했고 시간 내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더욱 힘들어했다.
역사와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수학 문제를 풀 때면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아들은 문제집 한 장을 푸는데도 종종 주위가 산만해졌다. 아이와 집안에 있는 동안 집중하는 습관을 잡아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성향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래보다 두배는 덩치가 큰 아들은 엄마와 있으면 앉아서 문제를 풀기보다는 엄마품에서 뒹구는걸 더 좋아했고 조금 주의를 주면 한 손으로 엄마손을 꼭 부여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문제를 풀었다. 학원 운영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못 보내서 이러는 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드는 어미는 아들의 꼭 잡은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렇게 문제 푸는 걸 지켜보곤 했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는데 습관이 제대로 잡힐 리 만무하다. 게다가 올 한 해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이사에 새로운 도시로의 두 번째 이사마저 겹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4개월이 되도록 아이들이 학교에 나 간 날은 채 20일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요 근래 방역단계가 1단계로 낮아지면서 처음으로 1주일 내내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이 때 처음으로 빼곡한 한국의 시험지를 받아 35분 안에 풀라는 미션을 받아보게 되었으니 아들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플만도 했다.
20개 중 동그라미가 쳐진 6개를 하나당 5점씩 하면 30점.. 손으로는 시험지를 들고 머릿속에 짧은 계산이 지나간다. 시험지 한 장에 아이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울먹이는 아이의 눈물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못 푼 문제는 내일까지 다 풀어오래." 아들이 기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엄마가 도와줄게" 풀 죽은 아들이 안쓰러워 달달한 간식을 하나 입에 물리니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지면 좋아한다. 근래에 혼자하는 습관을 길러주러 옆에 있지 않았는데 오랫만에 아들 옆에 앉아 있으니 신이 난 아이는 엄마에게 한번 기대기도 하고 간혹 몸을 부벼대기도 하며 묻지 않고도 문제를 잘 풀어나간다. "이렇게 잘하는데, 학교에서는 왜 안 했어.?"라고 묻자 "학교에서는 집중이 잘 안됐어. 시간도 없고"라고 바로 응수하며 헤헤거린다.
30점짜리 시험지를 받아온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은 얼마큼 될까? 사교육계에 오랫동안 있어온 나는 이전이라면 아마도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아무리 초등 3학년이라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얄밉게 말했을 게다. 그리고 건 사실일 확률도 크다. 그러면 30점짜리 시험지를 받아온 아이가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은 얼마큼 될까? 이건 질문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상수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 시험지와 인생의 성공은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30점짜리 시험지와 인생의 행복이라고 다시 말하면 그 상관성이 더욱 떨어진다.
나는 부모다. 내가 진정 바라는 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다. 속이 상했던 건 아이의 시험 점수가 아니다. 이 작은 종이 조각에 그어진 빨간 선들이 혹여나 아이를 판단하는 수많은 기준 중에 한 가지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가장 컸을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울타리를 가로 두르며 이래야 해 한다고 규정짓고 있는 사람이 내 아이 눈에는 바로 엄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혹여 켜켜이 쌓여온 나의 고정관념이 아이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면 부디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 뭔지 이제야 하나씩 알아가니 이번에는 더디더라도 제대로 배워야겠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란 제출시간을 넘기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