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다섯 손가락쯤 더하면 그 아이와 알고 지낸 지 벌써 30년이 된다. 소중한 친구지만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항상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바쁘다고, 무언가 다른 일이 생겼다고 그렇게 항상 열 가지도 넘을 듯한 이유로 보고 싶은 친구는 자주 볼 수 없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나섰다. 나는 세종에서 고속터미널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친구는 경기도 신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역으로 온다. 우리는 반갑게 만나 손을 잡고 얼싸안고 맛있게 밥을 먹으며 끝 모를 수다를 떨며 또 그렇게 즐거었다. 한창 수다에 흥이 오릴 때쯤 친구가 말끝을 잠깐 흐리더니
"있잖아.."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겨울에 너희 집에 갔을 때, 돌아오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많이 후회했어."
올해 겨울, 이 친구와 다른 친구 한 명이 내가 사는 세종까지 와서 하룻밤 자고 간 날이 있었다. 술의 달짝지근한 기분 좋음이 우리를 한 껏 끌어올렸고 우리는 그렇게 오후부터 밤까지 또 새벽부터 떠날 때까지 쉼 없이 이야기를 내뱉어 냈다. 그 많고 많은 이야기에 가리고 가려 도드라 보이지 않던 친구의 이야기지만 그녀에게는 가장 쓰리고 아픈 기억의 한구석을 다시 끄집어낸 것 같았으리라
국어교사인 친구는 한 때 노무사인 남편을 따라 전주에 가 산 적이 있었다. 서울 여자인 친구는 아이가 없었기에 이동이 자유로웠지만 그렇기에 연고 하나 없는 그곳에서의 삶들이 어렵게 그려보지 않아도 분명 외로웠으리라. 항상 야무지고 반짝반짝 빛나던 내 친구는 그곳에서 새 집을 장만했고 ,수영을 시작했으며 , 전주의 공부 꽤나 하는 아이들 과외도 시작했다고 했다. 딱 한번 친구와 그 남편의 초대로 전주에 간 적이 있다. (친구의 남편도 내가 스스럼없이 오빠라 부르는 지인이며 우리는 결혼 전에 다 같이 어울리며 꽤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 했었다.) 전주에서의 그 하루는 유쾌했고 너무나 즐거웠기에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친구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서운했을지.
그 겨울, 끝이 없을 것 같은 수다 어느 자락에 우리 모두 얼큰히 취해있는 그 시간에 친구는 사실 그 시간이 무척 힘들었더라고 친구들이 조금쯤 원망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항상 늘, 언제나 그렇듯 바빴다. 꼴랑 한 번의 전주 외출을 빼고는 친구와 전화통화도 자유롭지 않을 만큼 나는 늘 정신이 없었다. 왜 그리 살았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그냥 늘 바빴고 나의 지인들은 심지어 친정 엄마도 아직까지 나에게 전화를 걸면 늘 첫마디가 한결같다. "바쁘지? 전화받을 수 있어?" 나의 매일 한낮동안 단거리 선수처럼 달리고 밤에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구석에 처박혀 홀로 술을 마셨댔기에 나의 하루는 그 어느 누구와도 온전히 공유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친구는 매일매일 외로왔을게다. 지금의 나처럼.
생각을 해본다. 이유 없는 서사가 어디 있겠으며 어느 누구가 자신의 삶이 애달프지 않겠는가? 나는 바빴으니까 이랬으니까 저랬으니까.. 이유야 수만 가지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조금씩이라도 지켜나가야 할 것들이 있다면 그 작은 마음 진심으로 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는 진한 후회이다. 사실 그 시절 나는 심각한 마음의 빈곤을 끊임없는 물질로 채우고자 했던 시기기에 더 빈곤하고 더 바빴으며 더 슬펐다. 그러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주위를 제대로 둘러볼 수도 없었던 불쌍한 나였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 놓으면 그때는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껏 만나 여행도 가는 삶을 종종 상상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니 그전에 그 사랑하는 이들이 이미 다 도망가고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게 있으면 닦아주고 조여주고 기름칠해줘야 함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다만 그어느것도 나를 기다리지 않은 채 소리없이 으스러져 버릴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세월이 주는 작은 지혜로 이제 정말 예쁘고 소중히 반들반들 윤내야 할 것들이 무언인지 알아가니 이는 불행 중 다행인걸까? (나이 듦은 이럴 때 참 감사한 존재이다.)
사람의 관계에도 먼지가 쌓인다. 먼지가 없어야 원래의 예쁜 본모습이 드러나듯 우리는 사실 어느 인간관계나 노력해야 하는 게 맞다. 나는 세상에 일방적인 무조건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 믿는 사람이다. 서로의 번식이나 진화를 돕는 모든 종들은 사실 자기 자신의 존속위해 서로에게 다정하니 실은 사랑의 본모습도 실은 나의 존속을 위함이라해도 그리 큰 비약은 아닐 것 같다
그러니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대 주변의 불필요한 먼지를 털어내라. 혼자는 결코 행복하기 힘든것이 우리 인간 아니겠는가?(물론 어느것이든 백퍼센트는 없으므로 혼자임이 진정 행복한 소수가 있을 수 있음 또한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