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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토 Sep 13. 2023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포기가 주는 마법

말이 씨가 된다고 하니 우선 제목부터 질러본다.

유재석과 이적은 "말하는 대로"라고 했으니 나는 "써보는 대로"라 칭해보자.


남편은 지난 세월 말 그대로 항상 '남의 편'이었다. 사실, 남편은 성향상 누군가를 편드는 사람은 아니니 그냥 항상 '자기편'인 사람이 더 정확하겠다. 오해는 마시길. 나는 여기서 남편의 뒷담화를 시작할 의도는 아니다. 그건 두고두고 이리저리 써먹어야 하는 소재니 잘 남겨두겠단 유치 찬란한 심보를 간직 중이니,

오늘은 계획대로 18년 만에 일어난 아주 작은 기적을 이야기해야지.


사건이다!

남편이 이불을 정리하고 출근했다.

단언컨대 그 어떤 압력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정신없는 아침 시간, 아이들과 남편을 각각 학교와 직장으로 보내고 나면 본격적인 로봇 청소기와의 협업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청소기가 힘들지 않게 나는 각 방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정리하는데 그때마다 안방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이불들이 참 싫다. 절대 타고난 성격이 깔끔하거나 정리강박 같은 훌륭한 부지런함을 장착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저 정도는 아침에 출근 준비하며 간단히 정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서운함이었다. 게다가 우울증이 심해진 요즘 같은 날들에는 널브러진 이불들이 마친 내 구겨져 있는 내 인생 같다는 궁상맞음까지 겹쳐지는 이상한 짜증 포인트였다.


그럼에도 입 밖으로 이런 마음을 내지르지 않았다. 정신없는 아침 시간에 이런 것까지 잔소리할 시간이 없음이 가장 큰 이유이나 18년간 굳건한 무심함에 더 이상 서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언제나 바닥 가득 깔려 있었다. 물론 두어 번 남편 옆에서 한숨으로 내쉬며 이불을 정리하거나 아들에게 아침에 일어나 이불 정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기본이라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소리친 적 있는 건 인정하는 바이다. 물론 그럼에도 꿋꿋하게 미동 하나 없던 남편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적에는 남편의 모든 행동이 더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분했으며 어쩌나 이런 인생을 살게 되었나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마법은 사뿐히 다가와 어느새 조금씩 감정을 무디게 하고 마음을 어루만진다.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았던 서운함들이 조금씩 기억의 저 한편으로 잊혀 가고 사소한 것들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고 무엇보다 적당한 거리감과 무심함이 조금씩 더 편해지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가도 대단한 관용의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현명함을 느는 것도 아니지만, 포기를 통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을 얻게 되고 적당한 무심함으로 안달복달함이 적어진다. 그러니 남편의 사소한 이불정리는 충분한 감동이고 감사함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소한 기쁨이니까.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저녁 과연 남편은 나의 존경까지 얻게 될까?


결과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련다.

삶은 항상 흐르고 우리는 계속 살아가니까




                     #글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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