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지난 세월 말 그대로 항상 '남의 편'이었다. 사실, 남편은 성향상 누군가를 편드는 사람은 아니니 그냥 항상 '자기편'인 사람이 더 정확하겠다. 오해는 마시길. 나는 여기서 남편의 뒷담화를 시작할 의도는 아니다. 그건 두고두고 이리저리 써먹어야 하는 소재니 잘 남겨두겠단 유치 찬란한 심보를 간직 중이니,
오늘은 계획대로 18년 만에 일어난 아주 작은 기적을 이야기해야지.
사건이다!
남편이 이불을 정리하고 출근했다.
단언컨대 그 어떤 압력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정신없는 아침 시간, 아이들과 남편을 각각 학교와 직장으로 보내고 나면 본격적인 로봇 청소기와의 협업이 시작된다. 사랑하는 청소기가 힘들지 않게 나는 각 방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정리하는데 그때마다 안방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이불들이 참 싫다. 절대 타고난 성격이 깔끔하거나 정리강박 같은 훌륭한 부지런함을 장착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저 정도는 아침에 출근 준비하며 간단히 정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서운함이었다. 게다가 우울증이 심해진 요즘 같은 날들에는 널브러진 이불들이 마친 내 구겨져 있는 내 인생 같다는 궁상맞음까지 겹쳐지는 이상한 짜증 포인트였다.
그럼에도 입 밖으로 이런 마음을 내지르지 않았다. 정신없는 아침 시간에 이런 것까지 잔소리할 시간이 없음이 가장 큰 이유이나 18년간 굳건한 무심함에 더 이상 서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언제나 바닥 가득 깔려 있었다. 물론 두어 번 남편 옆에서 한숨으로 내쉬며 이불을 정리하거나 아들에게 아침에 일어나 이불 정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기본이라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소리친 적 있는 건 인정하는 바이다. 물론 그럼에도 꿋꿋하게 미동 하나 없던 남편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적에는 남편의 모든 행동이 더 이상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분했으며 어쩌나 이런 인생을 살게 되었나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마법은 사뿐히 다가와 어느새 조금씩 감정을 무디게 하고 마음을 어루만진다.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았던 서운함들이 조금씩 기억의 저 한편으로 잊혀 가고 사소한 것들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고 무엇보다 적당한 거리감과 무심함이 조금씩 더 편해지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가도 대단한 관용의 마음이 생기지 않으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현명함을 느는 것도 아니지만, 포기를 통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을 얻게 되고 적당한 무심함으로 안달복달함이 적어진다. 그러니 남편의 사소한 이불정리는 충분한 감동이고 감사함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사소한 기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