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토 Oct 17. 2023

달콤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내가 억울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칠 때면 나를 지탱하는 말이 하나 있다.


"달콤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게 하고서."


미국 어느 시골 교회에서 한 한인 교수가 앞에 나가 기도하며 했던 말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이 힘들 때면 항상 이 구절이 떠오른다.



오늘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마음이 뾰족했다. 해야 할 일이 가득한데, 6시 10분에서야 눈을 떴다.  어젯밤 11시까지 일을 하다 결국 맥주 한잔 마시고 뻗어 잠이 든 의지력 박약의 내가 한없이 한심했다. 매일이라고까지 칭하기 부끄러운 아침 홈트를 건너뛰고 저녁에 볼 시험 대비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마음이 조급하니 교수님의 인터넷 강의가 귀에 쏙쏙 들어왔지만 이내 아이들과 남편 아침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이어폰을 빼고 나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간신히 잡아놓은 루틴대로 운동을 했으면 싶었다. 그리곤 밤 10시에 시작될 영 자신 없는 시험을 대비에 다시 한번 강의를 돌려보며 시험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맘대로 나의 시간을 짜 넣는 건 당최 해 본 일이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한없이 서러운 마음이 몰려운 것은.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텍사스의 토네이도를 몰려오듯 이 작은 마음은 하루 온종일 엄청난 감정들을 몰고 왔다. 생각해 보니 온통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왜 이리 나 자신을 소모하며 사는 걸까?"

- 사실 그건 내가 자청한 일이다.


"아니, 왜 또 그건 하겠다고 해서.."

-얼마 전 덥석 하겠다고 한 일이 생각났다.


"아니, 걔한테 대체 몇 번 보강을 한 거지?"

-내가 안달이 나 여러 번 보강을 부른 학생까지 소환된다.


한번 시작한 감정은 끝도 없이 쏟아졌다. 중간중간 마음속에서 위험수위를 울려댔지만 진정 댈 리 만무했다. 그리곤 인생에서 절대 경계하고자 했던 그 자기 연민이 스멀스멀 밀려오기 시작했다. 남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손해 보고 해주는 듯한 마음, 불쌍하고 부족해서 나만 손해 보고 사는 것 같은 한없이 지질하고 비루한 마음이었다. 그 많은 순간 감사하던 그 많은 이들도 전혀 생각나지 않고 내가 해준 거, 내가 퍼준 거,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만 머릿속에 윙윙 가득 찼다.


이런 순간이 닥치면.

사실 방법은 없다.

그냥 이를 꾹 다물고 이 감정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느낀 뒤 이런 지질한 감정이 결국 더욱 기분을 망치게 됨을 온몸으로 느끼는 수 밖에는 없다.


내가 가진 감사함을 세어보아요.


나는 집에서 몇몇 성인과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몰아칠 때면 경력이 20년이 되는데도 남들에 비해 적은 금액에 성심성의껏 정성을 다하는 나의 모습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온라인에서 강의를 해대는 이들이 ' 다 퍼주는 강의'라 했을 때 속으로 그다지 동의하지 못했다. 세상 어디에 다 퍼주는 강의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이 먼저 들어주는 이들에게, 찾아와 그 강의를 좋다 해주는 그들에게 큰 절 올릴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거만의 늪은 나에게도 종종 찾아왔고 부끄럽게도 나는 오늘 내내 그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지난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늘 생각해 왔다.  동네 작은 학원을 공부방을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항상 감사했던 건 매달 들어오는 아이들의 교육비였다. 대단한 대기업도 탄탄한 중소기업도 아니기에 언제 아이들이 모두 나가 망할 수도 있었지만 매달 꼬박꼬박 월급처럼 받아 나의 생활에도 같이 일하던 선생님들에게도 나눌 수 있었던 그 현금흐름이 참으로 감사했다. 하기에 나는 부모님들이 너무 부담되지 않기를 바랐다. 매달 크게 부담되지 않을 금액에 아이들이 꼬박꼬박 성실하게 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학부모님들도 나도 서로 윈윈 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부응하듯 작디작은 나의 학원을 꽤 잘되었다. 학원을 접고 이후 개인 교습을 할 때도 나는 이 마음을 잊지 않았다. 간혹 누군가 학원비나 교습비를 올리는 게 어떠냐고 그러므로 너의 가치를 올리는 게 더 좋다고 충고해 주었지만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하고 싶었다.


헌데 이러던 마음에 고장이 나 버렸다. 짧은 시간에 큰돈을 척척 버는 이들을 보며 살짝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다. 시간당 수업료를 올린다는 주변 이들의 말에 마음이 한 번씩 요동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예전의 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사실 나의 연민은 그것뿐만은 아니잖아.


자기 연민의 늪은 생각보다 달콤하다. 나만 희생하고 있고 나만 대단히 무얼 하고 있다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흔히 착각의 늪에 빠지게 된다. 주변의 그런 이들을 보며 나의 경계로 삼아야지 했었지만 어느새 나도 그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자기 연민의 늪을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나의 오류가 곳곳에 눈에 뜨인다. 앞뒤가 맞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가 잘못했구나....


내 마음대로 하루를 살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내 소중한 아이들이 따뜻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 조금의 고단함을 이기고 약속된 모임에 나간 덕분에  사랑하는 이들을 보고 마음이 충만해졌다. 나 하나만 생각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득 찬 할 일을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며 놓쳐버렸을 따뜻함으로 나는 오늘의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가 직접 구워온 빵 한입의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란 종이 한 장과도 같다. 억지로 감사한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지만 덕분에 감사함으로 충만해졌다. 내일은 조금 더 먼저 일어나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보여야지. 항상 잊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는 이들에게 카톡으로도 인사를 전해봐야지. 알고 보니 나는 연민의 대상이 아닌 부러움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구나.


#글루틴 #팀라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