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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Apr 06. 2020

매일 글쓰기는 처음이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매일 쓰지’ 싶었다.




매일 글쓰기는 처음이라

2019년 12월 26일부터 2020년 4월 3일까지, 딱 100일이다. 매일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침 일기를 쓰는 게 좋다는 편집자님의 말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 밤에 쓰는 일기는 너무 감성적이게 되지만, 아침에 쓰는 일기는 꿈꿨던 이야기, 오늘 하루를 계획하는 이야기, 자고 일어났는데도 또렷이 생각나는 이야기 등등 아무튼 좋은 것들이 정말 많다는 거다. 그리하여 무작정 시작했다. (시작은 아침 글쓰기였으나 끝은 매일 글쓰기로 조금 바뀌긴 했지만.)


사실 이렇게 마음만 먹었을 때에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매일 쓰지’ 싶었다. 나는 2주에 한 번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도 겨우겨우 마감을 지켰었는데 말이다. 스스로 결정했으나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남아있었다. 그러다 글쓰기에 관련된 좋은 영화가 있다는 남자 친구의 추천으로 <파인딩 포레스터>를 보게 되었다. 딱 한 권의 책만 내고도 천재 작가가 된 괴팍한 노인 ‘포레스터’와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흑인 소년 ‘자말’의 이야기다. 염치없지만 내가 ‘자말’이 되어 글쓰기 스승에게 한 수 배우고 싶은 욕망의 마음으로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시작해”
“뭘 시작하죠?”
“쓰라고”
“뭐 하시는 거죠?”
“글을 쓰는 거야. 키를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왜 그러고 있지?”
“생각 좀 하고요.”
“아니, 생각은 하지 마. 생각은 나중에 해. 우선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나서 머리로 다시 쓰는 거야. 작문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는 거야. 생각하지 말고.”
“...... 맙소사”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중에서



정말 맙소사,였다. 스승님이 자신의 글 쓰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빠른 비트의 노래 속도로 타자기를 마구 두들겼는데 글이 완성되었다. 그것도 깜짝 놀랄만하게 멋진 글이. 매일 글쓰기를 시작도 하기 전에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재들의 경지를 엿본 평범한 글쓰기 인간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멋져 보이는 건 왜일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거지?’ 아니, 잘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글쓰기에 재능 있는 전업작가도 아니었으면서 지금 당장 그들처럼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서 매일매일 그려본 적 없는데 하루아침에 대작을 완성하고 싶어 하는 로또의 확률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림은 그렇게 생각한 적 없으면서 글은 쉽게 생각하는 나의 이중적인 생각이 들통나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바꿔서 생각해봤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멋져 보이는 건 왜일까?’


글쓰기는 일상이다. 작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매일 하는 활동이다.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말하고, 듣고, 또 말하고, 무언가 본 것을 적어 놓기도 하고, 생각한 걸 쓰기도 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도구들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치면, 12색 크레파스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12가지 색으로 완성하지만, 어떤 사람은 똑같은 12색으로도 120색으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을 완성한다. 남몰래 추가 색을 구입해서 쓰기도 하겠지. 어쨌든 돈을 쓰든 시간을 쓰든 항상 애를 쓴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도구를 능숙하게 연마해서 습득한 결과물인 것이다.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말하고 듣고 쓸 수 있다 / illustration ⓒkimpaca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

인간의 기억력은 믿을 게 못된다. 어떨 땐 조작하기도 하니까.

매일 일기와 원고를 쓰면서 느낀 것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매일 잘 써지는 날은 거의 없음. 나만 봐야 하는 수준.

2. 써놓지 않았더라면 절대 기억하지 못할 날들이 많아서 놀람

3. 12색 크레파스에서 18색을 만드는 법을 배운 것 같음

4. 3번을 습득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게 됨


50일째 되었을 때, 뇌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야, 이제 절반 왔어. 지금쯤이면 슬럼프 같은 거 한 번 와줘야 돼.’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글이 잘 안 써졌다. 뭐 대단한 걸 쓴다고 의자에 앉아서 한 줄 적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지(차라리 놀걸), 원통하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쉽게 뇌에 조종당했다.


70일째쯤 되었을 때, 원고에 쓸만한 글감을 찾기 위해 지난 69일들을 뒤적이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제야 기억나는 것들이 많았다. 매일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영영 까먹고 있을 사소한 것들까지 적혀있으니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싶을 정도였다. 지난밤 꿨던 꿈같은 것이나, 누군가 나에게 건넨 한마디, 그때 그 순간의 짧은 결심, 의욕과 무기력, 기쁨과 우울의 반복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은, 별 쓸모없는 문장들이지만 나에게만큼은 도움이 됐다. 내가 나를 기억해준 셈이다.


100일 하고도 3일이 더 지났다. 3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00일째 되는 날엔 뭘 적었나 기억이 안 난다.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고, 까먹지 않게 써놨다.


"책을 읽다가 멋진 문장을 발견할 때면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만, 결국엔 내 생각과 내 말투로 쓰는 문장에 제일 나답고 어울린다. 재미없고 어설프고 잘 못쓰더라도 내 생각을 쓰자."



쓰다보면 언젠가는 생각이 멋진 사람이 되겠지! / illustration ⓒkimpaca






글을 쓰고 생각을 담은 글쓰기 모임,

‘쓰담’ 멤버로 함께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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