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Sustainable, 위기의 식탁을 구하라>, 2016
나는 종종 샐러드를 먹는다. 비건도 아니고 다이어트 중인 것도 아니다. 그냥 샐러드가 맛있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채소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흐물흐물하게 익힌 채소를 먹는 건 솔직히 뭔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채소의 맛을 진정으로 알고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채소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다만 그냥 샐러드 해 먹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 채소 모종을 크고 긴 화분에 심고 키워보기도 했다. 호기롭게 채소를 키워보며 느낀 점을 글로 쓰려고 했는데, 뭔가 내키지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묵혀두었다.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Sustainable / 위기의 식탁을 구하라, 2016)를 보게 되었는데 아, 이거였구나! 싶었다. 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지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다큐멘터리였다. 내용은 농작물을 키우는 2가지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한 가지의 품종을 대량생산으로 키우는 방식과 여러 가지의 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제일 중요하지만 거의 모르는 흙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마티 트레비스(다큐멘터리의 주인공)는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지속 가능한 방법의 농업을 이끄는 사람이다. 그가 공장식 농업(쉽게 말하면 개량된 하나의 작물만 수만 평에 이르는 땅에서 화학비료와 제초제 등의 약으로 키우는 것)으로 몇 년간 사용한 땅을 구입하려고 했을 때 임대업자가 불편한 진실을 당부했다.
“경고를 꼭 해야겠어요. 잡초 말고는 아무것도 안 자라요.”
임대업자가 말한 대로 정말 그랬다. 흙이 예전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고, 창고에는 그전 농부가 수확한 옥수수가 남아있었는데 2, 3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고 했다. 제초제를 쓰지 않아도 잘 자라도록 씨앗 자체에 그 기능을 넣어서 개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품종 씨앗만 흙에 심어지면 토양에 무리가 간다. 그 씨앗 외의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약을 써야 하고, 건강이 나빠진 흙에 다시 화학비료를 뿌려 생명을 연장한다. 그 씨앗은 잘 자랄지 몰라도 수확이 끝난 흙의 생명은 진짜 끝나는 것이다. 결국 흙은 화학비료로 수명을 연장하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건강한 흙과 죽은 흙, 나는 한 번도 흙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흙은 그냥 흙이지, 죽은 흙이라니! 흙에는 미생물이 살아있어야 살아있는 건강한 흙이 된다. 녹색식물이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이를 액체로 만든다. 단당류의 형태로 흙 속 미생물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밭을 갈거나 화학물질로 파괴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흙이 된다. 건강한 흙에서 식물이 자란다.
“다들 이 땅을 너무 착취해 왔어요. 토양에 큰 무리를 준 셈이죠. 제가 농장을 관찰하며 깨달은 점은 손상이 있는 종이 일반적으로 가장 잘 자란다는 겁니다. 그리고 논밭이 잡초로 뒤덮일 때는 자연이 우리가 만든 문제를 고치려고 한다는 겁니다. 자연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순간에 우린 그저 돈을 좀 못 벌고 먹을 게 없을 뿐이죠. 토양을 위해 심었던 식물이라도 심어야 합니다. 그게 농업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니까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애니어그램에서는 인간을 9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유형이 잘나고 못나고가 아니라, 이 9가지 유형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있어야 평화를 유지하며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책 <초예측>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국민을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한 부류는 에너지가 넘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부류는 지금까지 해온 과정을 고수하려는, 야심 없는 사람들이지요. 이민은 둘 중 위험을 택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합니다. 위험이 겁나는 사람은 이민을 엄두조차 못 내지요. 미국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덕분에 가장 야심만만한 국민을 얻은 셈입니다.”
사회적 다양성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처럼, 다양한 작물을 윤작하는 것이 토양의 건강상태에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이 다큐멘터리에선 화학비료와 제초제 사용량을 95%까지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바로 윤작이었다. (윤작 : 같은 작물을 계속 재배하지 않고 몇 가지 작물을 돌려가며 재배하는 방식, 땅의 힘이 저하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병충해나 잡초가 잘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면 붉은토끼풀에 귀리를 첨가해서 옥수수를 윤작하면 귀리가 공기 중에 질소를 잡아내 뿌리에 이를 저장하여 비료를 사용했을 때의 양만큼 다시 받아올 수 있게 해준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줬다. 다양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이를 유지하는 일은 흙에도 이롭고, 결과적으로 인간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마트에 가보면 유기농 식품들은 분명 값이 비싸다. 장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똑같은 채소인데 왜 이건 비싸고, 이건 싸지?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시스템으로 인해 나뉘었다는 것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건 아무래도 힘든 일일 것이다. 기계처럼 원하는 것을 입력하고 얻는 일이 아니니까. 엄청나게 복잡하게 얽힌 자연의 사이클을 이해하면서 타이밍에 맞게 경영하는 일과 비슷하다. 이 엄청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농부인 것이다.
아주 쉽게 설명하면 자연을 이해하는 전문가 vs. 결과물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전문가, 이 둘이 키우는 식재료가 마트에서 다른 가격대로 판매되는 것이다. 비전문가가 키우는 농장의 식물들은 얼마나 많은 수확량이 있느냐, 품질이 균일하냐가 중요한 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키우기 좋게 유전자 조작된 종자를 사고(+) 화학비료를 사고(+) 제초제를 사고(+) 그렇게 비용을 쓰는 것에 비해 수확량은 유기농법보다 적다(-). 그렇게 반복하다 잡초만 살아남는 땅이 되면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으니 장기적으로는 돈이 더 많이 드는 셈이다. 비싼 유기농 제품을 삽시다, 라고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인식하고 건강한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환경이 훼손되는 일은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돌이키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이 지속 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서 직접 마케팅을 기획하고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채소보다 중요한 건 ‘그들’과의 관계예요. 저희가 하는 중요하면서 복잡한 마케팅이죠. 하지만 그들에게 단순하게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의미가 있어요.”
여기서 ‘그들’은 요리사들이다. 아니, 농부가 마케팅을 이렇게나 잘하다니! 자연에서 지혜를 배운 농부들은 일처리도 프로였다. 농부는 키운 농작물들을 팔아야 한다. 중간 유통업자에게 한 번에 팔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작물의 가격이 결정되는 중요한 사실을 알고 유통업자에게 팔지 않고 요리사들을 만나러 갔다.
“사람들은 옥수수가 잘 크지 않으면 그 종자가 별로라고 불평하는데 가격은 올라가죠. 그리고 옥수수가 정말 잘 자라면 그때는 또 옥수수 가격이 하락한다고 불평해요. 다른 사람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체계에 의존하면 그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나하나에 모두 신경을 쏟아붓는다. 최대한 많은 요리사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마케팅을 한다. 그리고 가치관이 비슷한 다른 농장들을 모아 무엇을 키울 것인지, 작물이 겹치치 않게 계획을 짠다. 마티는 농사를 짓는 것보다 이렇게 회의를 하고, 요리사들과 관계를 맺고, 이메일을 쓰는데 시간을 꽤 많이 쓴다고 했다. 이렇게 열심히인 이유는 딱 하나다. 이렇게 하는 게 옳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채소를 많이 먹고 패스트푸드를 너무 먹지 말자는 뻔한 이야기를 할 뻔했다. 치킨 한 마리는 거뜬히 혼자서 다 먹어야, 단짠단짠으로 계속 먹어야 뭔가 재밌고 위대(大)해진 사람이 된다. 솔직히 채소의 맛은 어설프다. 어딘가 심심하고 먹은 것 같지도 않고 너무 건강한 느낌 그 자체가 일단 재미가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 어설픈 맛이 진짜인지도 모른다. 나의 몸이 비료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죽은 흙처럼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두 개의 접시에 한쪽은 삼겹살을, 다른 한쪽은 양배추를 같은 양으로 놓고 비교해보면 알게 된다. 삼겹살은 몇 접시 더 먹을 수 있지만, 양배추는 기껏해야 한 접시도 다 먹기가 힘들다. 위대해지면 감각도 둔해지는 건 사실이다.
샐러드를 먹다가 여기까지 왔다. 채소가 자라는 흙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는데 말이다. 그 누구보다 높은 직업의식을 가진 농부들을 보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직접 농사를 지을 것이 아니라면, 그럴 능력이 없다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뭐가 중요한지, 뭘 사고 뭘 사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게 문제다. 의식적으로 농사를 하는 사람들, 쉽고 빠르고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자연이 오래도록 지속되도록 인식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편한 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인식이 바뀌면 시스템도 바뀔 수 있고, 죽은 땅도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삶에 있어서 자신이 해온 일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 씨앗을 물려주게 되죠. 그 씨앗이 자라서 여러 세대를 살아가겠죠. 그걸 오래도록 지속했으면 좋겠어요.”
- 다큐멘터리 <Sustainable / 위기의 식탁을 구하라>, 2016
참고 영상 : 넷플릭스 Sustainable
https://www.netflix.com/title/80134814
글을 쓰고 생각을 담은 글쓰기 모임,
‘쓰담’ 멤버로 함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