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뭘 할 진 모르겠지만, 작가가 될 거야”라고 했었는데
딱 4년 전 일이다. 정확히 계산해보니 2015년 10월 퇴사를 했다. 나는 공간 디자이너였는데 그 일은 매번 새롭고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없애는 일이었다. 왜 내가 없었냐면 특히 공간 디자이너는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직장인은 다 그런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우리 팀에 맡겨진 새로운 공간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입히는 일이고, 그 색깔을 대신 표현해줘야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열심히 번 돈으로 땅을 사서 새 집을 짓고 그 공간을 디자인해달라고 맡겼는데 디자이너의 취향대로 만들어버리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더 좋은 계획이 있으면 제안하고 설득하는 일도 우리가 하는 일이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다. 상업 공간이라면 그 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오고 싶게 하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덕분에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최적화된 귀를 갖게 되었다. 그분들조차도 뭘 원하는지 모르는 그것을 제안하기 위해 관찰하고 찾아내는 눈을 갖게 되었다. (추후 이 능력은 식물키우기에 아주 도움이 되었다)
“퇴사하면 뭐할 거야?”
같은 날 입사한 그리고 나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친한 동기 언니가 물었다.
“모르겠어. 나중에 정확히 뭘 할 진 모르겠지만, ‘작가’가 될 거야.”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뭘 하든 ‘작가’는 어떤 주제를 품고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월급쟁이 인생이 어디 가겠는가. 카드값을 내기 위해 또 다른 회사에 취직하게 될 확률이 컸다. 나중에 어떤 회사를 가서 뭘 할진 모르겠다는 건 사실이었고, 작가가 되겠다는 건 취미로라도 하겠다는 나의 의지였다. 회사에서 내 꿈을 찾는 건 불가능하니까.
회사에서는 꿈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선택할 방법은 몇 가지 없었다.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회사에 들어가거나 꿈을 좇거나. 두 번째 안은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뭘 모르면 무서운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나의 인생 다음 계획은 철저히 가족에겐 비밀이었다. 딱히 숨기려고 한건 아니지만 이야기해봤자 바뀌는 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라. 그 사람들과 목표를 공유하라. 하지만 당신이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과만 공유하도록 하라” 나는 이 말에 100% 공감한다. 엄마는 디자이너인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회사엔 직원이 몇 명이나 있냐고 항상 물어보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딱 한 명 있었다. 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할지는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계약은 심플했다. 나는 매달 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비용과 책, 영화, 맥주 한 잔 할 비용을 조금 더해서 월급을 받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닌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 월급의 이유이고 책임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잼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지었다. 사업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서툴고 프로젝트라고 말하면서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계획이었다. 3년 동안의 (지금도 진행 중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짠! 하고 새로운 것을 선보인다고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는다. 무시하는 게 당연한 거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것만 기억한다. 코카콜라를, 스타벅스를 기억한다.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3년째 식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객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식물 프로젝트가 지겨워질 때쯤 돼서야 사람들이 우리 프로젝트를 기억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가장 친한 친구들도 지금에서야 ‘식물’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나를 찾는다. 그만큼 충분히 반복하기 전에 그만둬버리면 신뢰를 얻을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글을 썼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눈에 띄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보다 잘 못 키우는 사람이 더 많기에 그들에게 흥미를 끌고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썼고, 얼굴 없는 회사가 쓰는 글보다 나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반응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앞세워서 조금씩 이야기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일기장에나 써둘 것이지 관종이 되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고, 진실해 보이기 위해서는 나를 노출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래서 꾸준히 글을 쓰고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린다.
“나중에 뭘 할 진 모르겠지만, ‘작가’가 될 거야.”
나는 정말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 계속 남기고 또 남긴다. 한 명이라도 더 알아줄 때까지.
그리고 이제는 정말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수상 발표가 나기 딱 일주일 전 처음 이 소식을 알게 됐을 때 겁도 없이 기뻤다. 마감 하루 전에 그동안 썼던 글을 엮어서 브런치 북으로 제출했는데 그게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소식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3년간 이것저것 시도할 때마다 근근이 조명받고 외면받았던 시간들을 누군가 알아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식물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17년 2월부터였다. 네이버포스트에 <내 방의 한뼘, 비밀정원>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매주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정말 1명, 3명, 5명... 씩 사람들이 클릭하는 수준이었다. 매주 하나씩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리면 한 달에 4편, 1년이면 48편이 된다. 딱 그렇게 1년을 보냈고 조금 더 썼다. 그때부터 매일 조금씩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아졌다. 최소한 2주에 한 번씩은 뭐라도 꼭 쓰기 위해서 글쓰기 모임을 같이 만들었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글 쓰고, 매주 데이트라 할 것도 없이 남자친구(곧 남편)와 나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일을 했다. 정말 평범하고 별거 아닌 내가 글을 쓴다. 왜 그렇게 글을 쓰는지 생각해봤는데, 두려움을 벗어버리기 위해 쓴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에 대한 두려움을 떨구어내려고 쓴다. 남들에게 해석당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나를 해석해서 남기면 그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브런치북에서 대상을 받다니,
믿기지 않지만 드디어 오늘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설레고 긴장되고 그런 와중에 카멜북스 편집장님이 내 브런치북을 선정한 이유를 써놓은 담백하고도 멋진 글을 마주쳤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나를 정성껏 돌보는 일과 닮아 있다. 화분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천천히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이파리를 더해가는 식물의 모습은 그 어떤 조언보다 명확하고 감동적이다. 식물 킬러들이 식물뿐 아니라 자신의 삶도 잘 키울 수 있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 카멜북스
이제는 식물 킬러의 삶을 끝내고 싶은 사람들, 식물과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기분을 몽글몽글하게 만들 글과 그림으로 멋진 책을 써보겠다! 나의 모든 생각과 노하우를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