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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Mar 02. 2021

인생은 고민의 연속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다. 매일 새로운 문제들이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새벽 배송처럼 아침잠도 없이 부지런히 도착한다.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문을 열고 박스를 뜯어 도착한 물건들을 냉장고에 하나씩 넣어둔다. 언제 얼마큼 어떻게 쓸지, 원래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과 어떤 식으로 조합해야 괜찮은 맛을 낼 수 있을지 생각한다. 매일 먹는 날도 있고, 가끔 꺼내 먹는 날도 있다. 유통기한 내에 해결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삶이다. 기왕이면 맛있게 잘 먹고 싶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제때 처리되기보단 다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냥 꾸역꾸역 쌓인다. 언제 넣어놨는지 잊어버리는 건 아주 흔한 일이고, 유통기한을 훌쩍 넘긴 것이 공룡발자국 화석처럼 보기좋게 발견되는 순간은 아주 드문 일이다. 문제를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은 냉동의 기술로 바뀐다. 괜찮은 상태로 최대한 늦출 수 있을 때까지 늦춰보려고 꽁꽁 얼려도 보지만, 그 끝은 별로 아름다운 맛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애초부터 한계가 정해져 있던 일과 무척 닮았다.     


내가 가진 고민과 문제도 게으름과 함께 냉장고 속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마치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우유의 최후처럼 급하게 처리된다. 마감기한에 닥쳐서야 ‘상한 우유 200% 활용법’ 같은, 읽기만 해도 번거로운 팁들을 검색하기에 나서고, 정말 효과가 있는지 입증되지도 않은 ‘우유로 세수를 하는 일’을 의심도 없이 해낸다. 그냥 쏟아부어버린 적이 훨씬 더 많지만, 쓸데없는 곳에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는 멍청한 사람이 되는 날이 종종 있다.     


누군가 우리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본다면 그건 아마 나의 못나고 찌질한 역사를 모두 공유하고 있는 가족이거나, 최소한 사계절 이상 충분한 시간을 보낸 믿을 만한 친구 몇 명뿐일 것이다. 그들만이 나의 고민을 조금씩 알게 모르게 본다. 정확하게는 ‘냉장고까지 열어볼 수 있는 사이’라서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결혼한 이후에는 한 남자와 냉장고를 매일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씹고 마시고 소화하는 모든 음식이 한 공간으로 모이게 되자, 그동안 감춰두었던,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이상한 습관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     

1.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뭔가를 먹는다.      

2. 먹고 남은 음식을 제대로 밀봉하지 않고 냉장고에 넣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3. 살을 빼고 싶다면서 온갖 양념을 듬뿍 넣어 간을 맞추고 맛있게 만든다. 그리고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는다.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     

1. 음식을 맛있게 만들면 많이 먹게 된다며 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는 걸 합리화시킨다.

2. 많이 사면 많이 먹게 된다고, 조금만 산다. 30구 계란 한판 사면 싼데, 10구나 15구짜리를 산다.   

3. 살을 빼고 싶다면서 아침에 초코 시리얼을 먹는다.     




이런 사소하고 이상한 사적인 습관들은 분명 어딘가 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중에 하나만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냉장고가 꽉 채워져 있고 주방이 더러운 게 싫었다. 지금도 잊지 못할 그 사건이 일어난 건 초등학생 때였다. 그 당시 나의 초코 시리얼 사랑은 대단했는데, 아마 할머니가 되어서도 입맛이 변하지 않고 초코 맛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유효하게 이어지는 중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초코 시리얼과 우유를 꺼내어 먹으려고 한 날이었다. 구석에 처박혀 있어 있는지도 까먹고 있던 오래된 것을 발견했다. 제대로 밀봉하지 않은 상태여서 눅눅해 보였지만 그래도 초코맛은 변하지 않았을 테니까 봉지를 열어 우유가 담긴 그릇에 쪼르르 쏟아부었다. 두 번째 떠먹었을 때였나, 그릇 안에서 갑자기 미세하게 무언가가 움직였다. 우유 거품이길 바랐는데, 그건 우유에 허우적대는 개미였다. 봉지 안에는 개미들이 골고루 토핑처럼 흩어져있었다. 진짜로 개미를 함께 씹었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구역질이 났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위가 약해짐과 동시에 유난스럽게 깔끔을 떨게 된 것이.     




삶은 완벽하지 않아서 매일 새로운 고민이 이어진다. 잘 꺼내지 않는 된장처럼 오래 묵혀둔 고민도 있다. 부모님이 챙겨서 보내주는 정갈한 반찬 같은 것이 우리 집에는 없다. 살가운 딸이 아니어서 이기도 하고, 나의 부모님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원하지 않으니 서로 잘 맞았다고 볼 수 있지만, 솔직한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사실 잘 모른다. 어느 집이나 상처와 불화쯤은 하나씩 갖고 있으니까. 된장은 오래 묵힐수록 깊은 맛을 내지만, 나와 부모님의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진 된장은 이것저것 예상치 못하게 조합되어서인지 처음엔 끈적이고 짭조름한 맛이 났다가, 허무한 맛이 나기도 하고, 시큼한 맛이 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한 어른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처럼 조금씩 친해졌다. 새로 이사한 집에 놀러 갔을 때, 나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


 “냉장고 열어봐도 돼요?” 


마음껏 집을 구경하라고 했는데, 냉장고 안까지 포함된 건지는 모르는 일이니 허락을 구해야 했다. “네, 그럼요. 별거 없어요.” 너무 빤히 오랫동안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게 잠깐 들여다보았다. 레몬이 한 바구니 있었고, 좋아하는 차 음료수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외에도 조그마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이유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곳에도 우리 집처럼 부모님이 싸준 반찬이라든지 그런 건 없었다는 것이다. 


“저 이제 마흔인데, 지난주에 부모님이 또 싸웠다니까요. 어우 정말, 그걸 또 중재하고 이야기 들어주고, 풀어주고 지금까지도 전 그러고 있어요.”     


웃음 섞인 하소연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런 대화가 가능한 이유는 그전에 한번 서로의 비슷한 고민을 나누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솔직하게 나오면 나도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훌훌 털어놓게 된다. 비슷한 스트레스를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아주 속 시원한 일이다. 있었던 일을 좋아 보이는 면만 골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서도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를 안전한 기분으로 무심하게 털어놓고 나면 한결 살맛 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도 있다. 이제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농담처럼 꺼내서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다.     


“저도 그래요. 둘이 맨날 싸우면 중간에서 화해시키는 거 진짜 짜증 나고 힘들거든요. 아무리 장녀여도 그렇지, 진짜 너무하지 않아요? 저도 솔직한 마음으로 어렸을 땐, 빨리 이 둘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발 나 결혼하기 전까지만 이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착한 딸 노릇을 하고요. 근데 아시죠, 어찌어찌해서 막상 결혼을 해보니 정말 쉽지 않긴 하더라고요.(웃음) 근데 더 재밌는 건 뭔지 아세요? 제가 풀지 못한 숙제를 조카가 해내더라고요. 그게 내 숙제인지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카가 태어나고부터 부모님이 잘 안싸워요. 돈독해진건가? 아니, 그 표현은 좀 그렇고, 그냥 별일 없이 살고 있는 건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라요. 심지어 아직까지 이혼도 안 하셨고! 존재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말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속에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어서 놀랐다. '내가 조카에게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네' 내가 풀지 못하고 포기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갑자기 정리됐다. 나보다 훨씬 밝고 씩씩한 어린이가 알 수 없는 에너지로 해결하고 있으니, 나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조카에게만큼은 평범하지 않은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런 마음은 또 다른 모양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내가 가진 보잘것없는 여러 고민 중에 가장 근사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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