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강항의 발자취는 마침내 역사와 문화가 되었다.
서론
1. 강항선생의 탄생과 역사적 배경
2. 유학과 주자학, 성리학의 관계
3. 강항선생이 일본에 끼친 영향
본론
1. 강항선생의 유품 및 저서활동
2. 『간양록』은 어떤 책인가?
3. 현재 일본에서의 강항
결론
1. 강항 문화제의 필요성
2. 강항 문화제로 한•일간 발전적 방향
3. 강항 문화제의 미래
들어가면서
강항선생의 탄생과 역사적 배경
영광 불갑사를 조금 벗어나면 수은 강항선생(1567~1618)을 배향한 사우인 내산서원이 있다. 1592년 조선은 임진왜란, 1597년은 정유재란으로 온 나라가 전쟁으로 찌들어 있을 무렵이다.
강항선생은 처자식을 잃은 체 일본으로 잡혀가서도 조선 선비의 기질을 굽히지 않고 일본에 주자학의 새 물결을 일으킨다. 강항선생은 詩書畵가 뛰어난 강희맹의 5대손으로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공조와 형조의 좌랑을 지냈으며 , 휴가로 고향에 돌아왔다가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 군량 수송과 의병 모집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왜의 수군이 한산도를 거쳐 서해로 밀고 올라올 때 잡혀 두 형과 가족들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
강항선생은 대마도로 포로로 끌려가던 중 갖은 학대와 물갈이 등으로 육지를 밟아 보기도 전에 자식들과 처 등 일가족을 처참히 잃고 말았다. 특히 큰 조카는 배 멀미와 고열로 심한 갈증을 호소했으나 물 한 모금 주지 않자 갈증을 견디지 못해 바닷물을 마시고 배앓이를 호소하자 왜놈에 의해 바다에 던져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선생이 일본으로 끌려가 2 년의 포로생활 동안 강항선생은 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 승려 藤原惺窩 (후지하라 세이카 )에게 정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藤原惺窩 (후지하라 세이카 )는 평소에 강항선생을 향해 말하기를 ‘제가 조선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조상의 음덕이 부족함이요 , 중국이나 조선을 가 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고 한탄하기도 했다. 藤原惺窩 (후지하라 세이카 )는 일본의 큰 승려로 <도요데미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일본의 근대화에 영향을 미친 일본의 위대한 승려로 지금도 일본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승려이다.
藤原惺窩 (후지하라 세이카 )는 1593 년 여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秀吉 )이 명나라와 조선을 공격하기 위하여 축성한 구주 (九州 )의 비전 나고야성 (肥前名護屋城 )에서 명군 (明軍 )의 강화 사절 (講和使節 )인 사용재 (謝用梓 ), 서일관 (徐一貫 ) 등과의 만남에서는 필담을 교환하기도 했던 인물. >에게 조선의 주자학 이론과 과거제도 등을 가르쳐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었다.
강항선생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적국에 잡혀 갔던 죄인이라 하며 나서지 않고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내산 서원은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철거됐다가 1974 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다시 세워졌는데 , 1992 년부터 문화재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항선생이 일본에 끼친 영향
강항선생은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일본의 정치가들의 정신적인 참스승이었던 일본 승려들에게 주자학과 유학을 가르치며 미개한 일본의 당시 사회와 문화적인 당시 교육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켰던 것이다.
또 강항선생은 적중 봉소라는 그 누구도 감히 생각을 못할 처지에서 지리와 군사시설 등 왜군의 사정을 고국에 세밀하고도 자세한 사항들을 알려줬던 것이다.
수은 강항선생께서 남긴 유, 무형의 유산은 이처럼 우리나라를 떠나 그 당시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수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여러 분야에 긍정적인 교훈을 심어주고 있다.
세세히 말할 것도 없으나 그 당시 일본의 역사와 문화사상에 영향을 끼친 강항선생은 영광의 자랑이며 한국의 인물이기도 한 선생의 유산은 앞으로도 더욱 잘 보존하고, 또 현재에 맡게 가꾸고 선양해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또, 강항선생에 대한 생애와 업적 전반에 대한 고찰과 영광군의 내산서원의 보존 등에 대한 논의가 정, 관계를 떠나 포괄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스승의 나라 포로 강항선생과 제자의 나라 후지와라 세이카
이 뿐 아니라 강항이라는 역사적 문화적인 인물이 갖는 문화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도 영광군과 오즈시의 자매결연을 넘어 올바른 역사 재고와 국익차원에서도 심도 깊이 논의해야 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포로로 끌려가 가장 낮은 위치에서 스승으로 존경받은 강항은 스승의 나라이며 가장 높은 식자 계층의 승려인 후지와라 세이 까는 제자의 나라 사람으로 깍듯이 8세 연하의 스승을 모셨다는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본론
강항선생의 유품 및 저서활동
수은 강항이라는 이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큰 비중과 가치만큼 현대에 맞게 재조명되고 창조되어야 한다고 많은 연구학자들은 한 때 입을 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차별화된 프로그램과 창작콘텐츠를 개발하여 활용하고, 그의 생애와 학문·업적, 영광지역과의 관련성이 담긴 각종 교육자료집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또한 영광에서 강항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자원화하려면 가장 먼저 영광에 관련된 여러 부분의 자료들을 연차적으로 조사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이러한 연구 성과가 매년 축제 기간과 심포지엄, 포럼을 통하여 홍보되고, 그 결과가 학술지로 발간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다면 그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특히, 우리 고장엔 불갑면 내산서원을 비롯해 강항의 생애와 관련한 유적이 곳곳에 분포돼 있다. 연구자와 교육자, 후손들과 역사와 문화 전문가가 함께 모여 연계하고, 각기 적절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이런 유적 현장에서 여러 장르의 종합 창작예술로 재현시킨다면, 과거의 역사와 문화가 현재와 미래의 문화로,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쉽게 접하고 즐기면서 배우는 문화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중차대한 차원에서 강항선생의 정신을 되살리려고 하는데 몇 년 전 사당인 내산서원 경장각에서 전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213호인 강 감회요 목판(숙종 28년 제작) 380점이 사라진 것이다. 유물과 문화제를 대표할 만한 글을 언론과 매스컴을 동원해서라도 우리나라 전 지역과 일본 등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2.『간양록』은 어떤 책인가?
간양록
임진왜란은 노예 전쟁이다
『간양록(看羊錄)』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갔던 조선의 포로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강항(姜沆)이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체험을 기록한 글이다.
그 시기는 선조 30년(1597) 9월에서 33년(1600) 5월까지이다. 현전 하는 『간양록』의 판본은 필사본, 목판본이 있는데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간양록』은 「적중 봉소(賊中封疏)」 - 적중에서 올리는 상소 -, 「적중 문견록(賊中聞見錄)」 - 적중에서 듣고 본 것의 기록 -, 「섭란사적(涉亂事迹)」 - 난리를 겪은 사적 -, 「고부 인격(告?人檄)」 - 포로인들에게 고하는 격문 -,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 승정원에 올리는 계사 - 등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간양록』의 역사성과 문학성
『간양록』은 실기 문학이다. 실기 문학은 실존인물이 전쟁이나 난(亂), 사회적 의미가 있는 역사적 현장에서 직접 겪은 체험을 기록한 것으로 역사와 같은 사실 지향적인 서술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성보다도 감성에 호소하는 체험중심의 문학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성룡의 『징비록』,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글은 강항선생이 1598년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쓴 시.
봄비가 한 번 지나고 나면
돌아갈 생각 배나 많아진다오.
어느 때나 우리 집 담장 밑에
손수 심은 꽃 다시 볼거나.
금장(錦帳)의 명부(名部)가 일본에 떨어지니
머나먼 천리길 바람 편에 맡겼다오.
대궐의 소식은 큰 파도 넘어 아득한데
학발(鶴髮)의 모습은 꿈속 희미하도다.
두 눈은 일월 보기 부끄러운데
일편단심 옛 조정만 기억되누나.
강남이라 방초(芳草) 시절 뭇 꾀꼬리 요란한데
우공(寓公)을 돌려보낼 빠른 배 있을는지.
3. 현재 일본에서의 강항선생
일본에 성리학을 전수한 공으로 오즈시에 강항 선생의 유물관과 현창비가 세워져 있으며 영광군과 매년 교류를 하고 있다.
『간양록』의 사료로서의 가치는 당시 일본 내부의 정세와 상황을 아주 자세히 기록한 점에 있고, 문학으로서 가치는 포로 체험이라는 사적 체험을 통해 당시의 수많은 조선 포로의 애환을 대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주자학과 유학이 일본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조선 문명을 떨쳤다는 의미를 갖는다.
지금 일본의 오즈시, 그곳에선 강항을 연구하는 모임이 있고, 또 그를 기리는 현창비까지 세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오즈시의 초등학교 부교재에도 강항이 소개되어 있다.
<강항선생 시 한 수>
해동이 여기던가 천리 밖 아득한 곳,
바람 편에 보내는 소식 아는가 모르는가?
봉성 옛터의 소식은 아득하고
꿈도 물결에 쌓여 오도 가도 못하네
두 눈 씻고 보라 일월이 아닐 거야
한마음 기러기 뜻을 사귄 지 오래다
강남에 꾀꼬리 울고 꽃은 피어 만발한 곳
나는 배를 타면 돌아와 그대에게 묵으리
<강항선생 현창비 뒷면에 새겨진 詩 - 오즈 시민회관>
결론
1. 강항 문화제의 필요성
- 1980년대 영광이 나은 역사학자 이을호 박사(당시 강항선생 축제 추진위원장, 안진 오전 대철학과 교수, 이영희 제일 사학자 등이 추진위원으로 구성됨)에 의해 강항선생의 간양록이 빛을 보고 1980년대 MBC 방송국의 드라마로 탄생되며 강항선생의 업적이 이어지는 듯했으나 일부 세력에 의해 소멸되었다.
- 2001년 3월 30일 문화관광부 선정 3월의 인물 '수은 강항 선생'의 문화심포지엄이 영광군청 대회실에서 열렸다.
- 2002년 11월 11일 일본 오즈시장 일행 8명이 영광군을 공식 방문. 영광군청에서 김봉열 군수 및 관계자와 접견 자리에서 마스다 요이치 오즈시장은 2004년 9월에 완공 예정인 수은 강항선생 억류지의 오즈 성 복원 행사에 영광군수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 줄 것을 요청했다. 2004년경 자매결연을 맺고자 했다
- 2009년 4월 11~12일 불갑사와 내산서원 일원에서 영광 청년회의소 주최로 강항 문화제가 처음 개최되었으나 재정난으로 일과성에 끝나다.
- 2010년 4월 30일 영광읍 한전 문화회관에서 강항선생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목포대, 원광대, 전남대, 공주대, 순천대 등 대학의 사학자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가했다.
- 2014년 3월 4일 나주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강인규전 나주시의회 의장의 출판기념회에서 강원 구종 회장과 강대의 광주 서구 종회장, 강재원 수은 공종 회장, 강대 석광 주남 구종 회장이 모여 수은 공 강항선생의 업적에 대해 강항선생축제위원회가 창립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 3월 7일 12시에 영광군 나주곰탕집에서 강재원 수은 공종 회장을 만나‘강항선생축제추진위원회’ 자료를 검토하였다.
- 4월 2일 강원 구종 회장과 의논해 추진위원장을 강대욱 상임고문으로 모시고 추진키로 하고 9~10일에 제1차 창립총회를 갖기로 하였다.
- 4월 6일 10시 한식날을 맞이해 영광군 일대의 선산 조상님(명암 처사 공파)들 제사에 참석해 강대욱 위원장과 추진위원회 창립총회에 대한 의견과 카페 공지사항 글을 갖고 최종 의논하다.
- 4월 10일 17시에 강항선생축제추진위원회(가칭) 창립총회를 열고 강항 문화제 후원회로 명명하고 강항문화제추진위원회가 창립될 때까지 강성에서 적극 협조할 것을 결의하다.
- 7월 10일 영광군수 집무실 2층
주 제 : 강항문화제후원회 임원과 김준성 군수 면담회의
참석자 : 강태수 상임고문. 강대욱 후원회장, 강재원 상임부회장,
강정복부회장, 강양원영광군종회장, 강도원영광전교/사평공종 회장, 강대석광주남구회장, 강대의 간사, 김준성 영광군수,
영광군문화예술과장, 문화예술팀장 이상 10명
내 용 : 당일 2시에 군수집무실에서 면담회의를 갖고 이후 문화관광 과 회의실에서 이 지역 강항선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2~3,000만 원 정도의 세미나 자금을 약속받다.
- 7월 29일 10시 영광내산서원
주 제 : 수은 강항선생 학술발표회
참석자 : 강대욱 후원회장, 강원구 종회장, 강재원 상임부회장, 강대의 간사 외 종친 30여명 참석과 동양문헌학회 정환담 교수 외 30여명 참석해 총 60여명이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이개호 국회의원후보 이하 이 지역 소속 이장석, 이동 권 도의원외 김양모 군의회의장단이 다녀가다.
내 용 : 동양문헌학회 주최/주관 강대욱 회장 후원금 300만원 지출
- 11월 28~29일 사평공시제와 강항선생 세미나 설명회관련
주 제 : 강항선생 세미나관련 회의
참석자 : 강대욱 후원회장, 강재원 상임부회장, 강대의 간사 외 50여명 의 종친참석(29일 참석자 : 광주전남종회 강원구 회장 포함해 100여명)
내 용 : 강대의 간사가 강대욱회장의 명을 받고 28일 정형택 문화원장을 영광군문화원에서 만나고 29일 정택근국장을 만나 세미나책자와 팜플렛의 후원명칭이 영광군의회, 영광내산서원보존회에서 강항문화제후원회로 변경하다.
- 12월 2일 9시 광주 쌍촌동 진주강씨광주전남종회 사무실
주 제 : 강항문화제추진원회 비영리단체 영광군청 접수의 건
참석자 : 강대욱 후원회장, 강재원 상임부회장, 강원구 종회장, 강정복 상임부회장, 강선희 종무국장, 강대의 간사 이상 6명
내 용 : 11월 29일 강항문화제후원회로 등록을 위해 정관에 임원들의 날인을 모두 받고 영광군종회 강양원 회장을 만나 최종 임대 계약서를 작성 단체 등록이 다시 보류로 결정되다.
- 2015년 4월 2일 수은 강항선생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및 학술워크숍 개최
박석무다산연구소이사장 총회서 만장일치로 기념사업회장으로 추대하고 참석하신 분들을 위해 기념타월과 45인승 버스 2대, 만찬과 음료, 술 등을 준비해 강항선생학술토론회(심포지움)를 갖다.
- 2015년 6월 1일
영광군의회, 제211회 임시회 개최
수은 강항선생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
법적근거
가. 관계법령
-「지방 재정법」제 17조 및 제32조의2
-「지방 자치법」제9조 및 제22조
- 2015년 06월 10일 강지원변호사(매니페스토실천가), 이낙연지사면담
<한옥마을> 조성하고, 분양사업으로 수익 창출하여 힐링으로 충만
참석자명단 : 강지원변호사(매니페스토실천가)일행(백인철탈랜트, 황풍익드라마촬영감독 등)은 10일 오후 5시무렵에 전남도청을 찾았다.
- 2015년 10월 28일 ‘수은강항선생과 광양수월정’학술세미나
한국유교대학총연합회(이사장 강대욱)에서 전남 광양시청 1층 대강당에서 ‘수은강항선생과 광양수월정’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참석자 : 강대욱 후원회장, 강원구 종회장, 강재원 상임부회장, 강대의 간사 외 종친 150여명 참석
- 2016년 12월 07일
2016강항기념관 건립 추진 토론회
수은강항기념사업회 주최주관으로 광주 청명회관연회실서 30여명의 명사들 모여 열띤 토론회 갖다. 참석자 : 강지원변호사, 강원구 종회장, 강대만장군, 강진성종손, 강대의 간사 외 명사 30여명 참석
- 2017년 04월 10일
2017년 수은강항선생 2차 토론회 및 춘향제
강항기념관 건립 추진과 수은 강항선생 일대기 관련 책 편찬, 발간 안건토론 후 춘향제 봉향 참석자 : 김준성영광군수, 강지원변호사, 강재원회장, 강도원사평공종회장, 강진성 종손, 강대의 간사 외 20여명 참석
- 2017년 03월 22일 ~ 12월 31일
2017 ‘자유학기제’ 내산서원 문화체험학교 정착
2017년 1학기 체험형 자유학기제 운영 및 찾아가는 인문학 강의로 진행 중
- 2017년 05월 04일
탁인석 수은강항선생 선양사업 추진위원장 일행, 영광군방문
김준성영광군수와 강필구영광군의회의장 만나 2017년 기념사업회 선양사업 및 향후 비젼 제시
강대석남구종회장, 강대의 간사 외 명사 3명 참석
- 2017년 05월 27일 안동교 교수, '睡隱 姜沆 선생의 학문과 한일 교류'특강
대계서원의 안방준선생과 수은 강항선생의 특별한 인연에 대한 설명과 함께 명 강의가 이어졌다.
강원구 종회장, 강재원회장, 강진성종손, 강대의 간사 외 60여명 참석
- 2017년 06월 15일 수은 강항선생기념관(문화재)사업회 종친임원회의
<지난 6월 13일 진주강씨부산종회에서 70여명의 종친이 이흥서원과 내산서원을 방문했는데 특히 '睡隱 姜沆 선생의 업적에 대해 선양사업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선생께서 들어온 포구에 표지석을 1차 제안했다.>
강지원변호사, 강원구 종회장, 강재원회장, 강대석남구회장, 강대식회장, 강선희국장, 강대의 간사 7명 참석
- 2017년 07월 31일 수은 강항선생기념사업회 임시총회
<참석자 명단>
기세락성균관부관장, 최홍렬광주향교재단이사장, 탁인석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최형주 전, 목포시 의회의장, 박균순합동타월회장(위임), 정인수 전, 3급공무원(위임), 김종택광주일보 전, 회장(위임), 박준화영광군조합장(위임), 김덕진광주교육대교수(위임),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위임), 김연풍 전, 위생소장 박사(위임), 김종영호남연감공동대표, 문병현신용사회만들기 호남본부장, 이재형 전,멕시코 한인회장(위임), 강대욱광주향교 전교, 기념사업회 이사장, 강원구 진주강씨광주전남 종회장, 강정복상임고문, 상임부회장, 강충웅상임부회장, 강도원사평공종회장, 강재원수은공종회장, 강성열영광군종회장(위임), 강대석광주남구회장, 강태수통정공회장, 강대식직손회장, 강평호부회장, 강선희종무국장, 강원배보이스카웃부총재, 강래원다문화복지신문본부장, 강채현직손, 강진성종손, 강대의 간사 31명
- 이후 강항 문화제 후원회에서는 물 흐르듯 강항문화제추진위원회가 전남 영광군 지역에 결성되어 순조롭고도 활발한 강항 문화제가 매년 개최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2. 강항 문화제로 한•일간 발전적 방향
일본에 성리학을 전수한 공으로 오즈시에 강항 선생의 유물관과 현창비가 세워져 있으며 영광군과 교류를 하고 있다.
- 앞으로 강항 문화제는
'강항선생 춘향대제,
'부산 앞바다의 강항선생 맞이 행사',
'강항의 빛, 문화와 역사의 길',
'성리학'(한·일 상생 프로젝트), 상징조형물
'강항선생 동상' 제막, 팔 용정마을 전통문화체험존,
'영광 우수 농·특산물 홍보·판매관,
강항선생 포로 귀향 문화체험,
조선시대 선비 의상 스튜디오,
도전! 성리학!!,
학생 강항 선발대회 등으로 지역사회 발전과 강항 문화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가야 할 것이다.
3. 강항 문화제의 미래
영광은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와 불갑사, 일본에 성리학을 전파한 수은 강항선생의 사당인 내산서원, 원불교
발상지 영산성지와 기독교 순교지가 자리 잡고 있어 한국 종교문화의 요람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선사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의 분포와 각종 민속자료 등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영광은 관광자원도 풍부해 법성포 단오제, 노송이 우거진 가마미 해수욕장, 황금빛 석양과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백수해안도로, 칠산도 괭이갈매기섬, 안 마군 도의 기암괴석, 200여㎞나 되는 해안선의 절경과 서해 낙조, 바다낚시 등으로 외지인을 유혹한다.
또한 영광하면 떠오르는 굴비는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진상품으로 특유의 맛을 지니고 있으며 모싯잎 송편, 천일염, 태양초 고추, 간척지 쌀, 청보리 한우 등은 영광 천혜의 자연환경과 기상을 바탕으로 품질의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천혜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 영광군이 2009년을 ‘영광 방문의 해’를 넘어 이제는 ‘매년 찾아오는 영광‘으로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 승화시키기 위해 강항문화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해 ’ 강항 문화제‘가 매년 성공리에 개최될 수 있도록 민관이 똘똘 뭉쳐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유학과 주자학 , 성리학의 관계
대표적인 학자를 보자면 고려시대 이색 , 정몽주 , 길재이다. 그리고 이성계의 오른팔인 정도전도 상당한 학자였다.
주자학의 주요한 수용 계층은 신진 사대부였다.
그들은 주자학을 당시 현실 사회의 모순을 시정하려는 개혁 사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그 당시 주자학과 성리학에 대한 개념이 똑같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들 학문은 크게 봐서는 조선시대에 와서 그것이 발전하고 사상적으로 집대성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반해 조선은 숭유억불로 국책을 세워 주자학에 거리를 둔 듯했으나 주자학에 의해 유학의 발전이 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더 요약해서 말하자면 유학은 유가의 학문을 뜻한다. 유가의 학자들이라면 공자, 맹자, 순자를 들 수 있다. 여기에 성리학은 신유학이라고도 불린다. 공자, 맹자, 순자 시대의 유학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하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선진 유학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성리학은 유학의 발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또 주자학이란 것은 중국의 '주자'라는 사람이 성리학을 연구하고 집대성하여 재해석한 학설이다.
발전의 예를 들자면 조선 후기에는 주자의 성리학으로 각각의 연구가 이루어져 이이의 성리학(일원론적 이기 이원론)과 이황의 성리학(이기 이원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유학에서 성리학으로 발전되고 주자학은 성리학에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