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를 치지 마라!!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의 태양이 절망이라는 노을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by 강의나라

까마귀 싸 호는 골에 白鷺(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빗츨 새올 세라
淸江(청강)에 죠이 씨는 몸을 더러 일까 하노라
<정몽주의 어머니>

자식사랑이 깊은 어머니의 마음이 구구절절 느껴지는 시조이다. 구차하게 설명이 필요 없는 흑과 백의 두 동물을 빗대어 어머니의 심정을 그 당시에 맞춰 간절하게 표현했다.


모든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앞으로도 계속되어지는 것은 흑과 백의 논리에서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식의 논법을 자주 본다.
그것도 모자라 당사자가 없으면 험담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문제는 듣는 사람이 소위 말해 팔랑귀(귀가 팔랑거리듯 얇아 사물의 앞뒤를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가 듣게 되면 문제는 더 확대 재생산이 된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이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51%만 신임을 받으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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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혹자는 ‘모든 인간의 장점이 95%이고, 5%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장점을 보려고 하지 않고 5%의 단점만을 찾아 針小棒大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그 사람의 5%의 단점이 지나치게 작용을 하게 되면 그게 비방이 되고 남을 욕하며 비난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흠 담하는 자, 언제 어디서나 음흉한 모습만 보여
학창 시절, 한 싸움 잘하는 후배가 있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자기 친형 하고는 1년 차이로 우연찮게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게 되었다. 당연히 동급생들이 형과 동생을 싸잡아 친구처럼 굴었고 어느 날부턴가가 동생은 온몸을 던져 자기 형을 지키듯 그 누구도 자기 형에게 반말을 못 하도록 만들어 놨다.

이렇게 가치관을 뚜렷이 정립했던 그 후배는 지금은 모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좋은 가정생활로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자기 형을 업신여기며 친형을 노예처럼 부리며 위세를 떨며 자기 형도 꼼짝 못 하니 너희들도 까불지 말라는 식은 참으로 주변을 딱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남을 깎아 내려서 자기를 올리려고 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흔히 본다. 정말 비굴의 극치요, 하는 처세 역시 눈 꼴사나운 정도다. 있을 때는 동년배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00 회장님 하면서 아부를 하고 돌아서면 어릴 적 내가 어렵게 키웠다며 자기방식대로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 사람은 어려울 때 아무리 잘해주고 보살펴 줘도 은혜를 모르고 자기를 몰라준다고 그냥 험담만 늘어놓는다. 그 이유는 딱하나이다. 자기를 알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고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알아주라고 하는 식이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사람 역시 00 지역 사람인데도 ‘00 지역 촌놈들은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한다. 경술국치를 당한 시절 일본 놈의 앞잡이 고등계 형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조선 족발이 들은 어쩔 수 없어!!’


더 나아가 국민 정체성에 대혼란을 주는 말인 것이다.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즐겨 쓰는 말 중에 ‘있을 때 존경하고 없을 때 칭찬하라’고 감히 말한다.


교육계에 40여 년을 근무했던 어떤 선배는 이렇게도 말한다. ‘그건 참 사회생활에서는 어려운 말이네’
그 말이 어렵다면 이 사회가 문제가 있으며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라도 인간이 사회생활의 정서를 확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개혁이란 바로 이런 것부터 출발해야 되지 않겠는가?!
기본이 바로 서는 세상!! 그게 ‘있을 때 존경하고 없을 때 칭찬하라’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반대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시조 한 편을 음미해보자.


'까마귀 검다고 속까지 검을쏘냐'
까마귀 검다 하고 白鷺(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조차 거물 소냐
것 희고 속 거믄 즘생은 네야 하노라
<이직(李稷)-청구영언(靑丘永言)>


진실과 정의는 하나임에도 그걸 규명하는 데는 이렇듯 이분법적 사고가 옛날부터 서도 존재했던 것이다.


정몽주의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빗대어 아들에게 교훈을 주었고 이직은 인간의 속성을 파헤치듯 신체발부가 더럽더라도 心性이 맑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명품 정승 황희 선생의 명판결의 “네 말도 맞고 또 너의 말도 맞는구나”일화처럼 누구를 험담하기 이전에 또는 험담하고자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이런 논리를 갖다 대면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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