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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Sep 21. 2021

'더 많이'라는 삶의 올가미

점점 늘어나는 '일'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자유'

첫 번째 이야기.

화학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농부들에게 비료를 주러 왔습니다. 농부들은 그 비료를 밭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그 부족에서 가장 지혜로운, 나이 들고 눈이 먼 추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작년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생산했어요.'

추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아이들아, 매우 좋은 일이다. 내년에는 절반 크기의 밭에만 농사를 지어라.'


두 번째 이야기.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그곳에 도착한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애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디언들은 보잘것없는 도구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미국인들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우리가 이들을 구해 주어야겠다.'

그들은 미국에서 큰 도끼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나무를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끼였습니다. 그 이듬해, 그들은 원주민들이 자기들이 준 도끼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보기 위해 호기심에 차서 마을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느긋해 보이는 마을 사람들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그들을 에워쌌습니다. 그때 추장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고마움을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이 도끼를 보내 준 다음부터 우리는 더 많은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세 번째 이야기.

미국인 여행자 부부가 어느 날 시장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인디언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미국인 부부에게 의자 하나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의자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정말로 멋진 의자예요.! 우리 이 의자를 사도록 해요.'

'그러지, 뭐.'

남편이 아내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의자가 하나뿐이라는 것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디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3주 더 이곳에 있을 거예요. 3주 안에 이것과 똑같은 의자를 다섯 개 더 만들어 줄 수 있으세요?'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지요.'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값이 얼마죠?'

'50달러입니다.'

노인의 대답을 듣고 백인 부부는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의자 하나에 50달러니까 모두 합하면 300달러, 맞죠?'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의자를 만들 때 나는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비슷한 것을 다시 만들려면 그 기쁨은 줄어들 것입니다. 세 번째 것을 만들 때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까 매번 가격은 두 배로 올라갑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 (장 피에르 카르티에. 라셀 카르티에 저, 길잡이 늑대 옮김, 조화로운 삶 출판)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생명 농업의 선구자이며, 농업과 생태학을 연결한 농부이고, 땅을 지키는 철학자 또는 현실적인 신비주의자로 불리는 피에르 라비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이 이야기들 앞에서 그만 멈추어야 했다.

문득 이 이야기들이 나를 향해 던져지는 메시지 같았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새 집에 세명의 레지던트를 입주시켰고 그들을 위해 새 직원을 채용했다.

무려 새 식구가 네 명이 생긴 것이다. 새로운 레지던트가 한분 들어와도 적응하기까지 한 달은 심란한데 세분이 시차를 두고 한 달새 들어왔고 그들 중 한 분은 나쁜 치매와 심각한 욕창의 문제를, 또 한분은 일주일에 세 번의 투석과 깊은 울화를 가진 분이다.

그동안 많은 다양한 레지던트들을 경험했다고 자부했다가 내 코가 납작해지도록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새 직원이 들어오면 해야 할 것들이 많다. 

백그라운드 체크, 매년 해야 하는 기본 교육, TB 테스트를 위한 X-Ray, 네 가지 전염병 항체검사 및 백신 접종, CPR과 First Aid 교육, 알츠하이머 5시간 교육 등


아침 7시부터 시작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급기야 지난 주말엔 감기몸살 기운까지 있었다. 왜 안 그렇겠나? 

몸이 힘들어지면 마음도 무너져내리는 법.

어느 순간 완전히 방전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때 집어 든 책이었다. 

더 이상 날카롭게 나를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억지로라도 나를 '일'에서 떼어놓으려 읽어 내려갔다. 

이번 주 북클럽을 위해 내가 읽고 준비해야 할 책임감도 한몫했다.


그러다 피에르가 자주 인용한다는 위의 세 이야기 앞에서 생각이 멈추어버렸다.

"내가 지금 바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 많이'에 사로잡힌 내가 끝내 시설을 하나 더 오픈을 하고 그곳에 세명이나 새 레지던트를 입소시키고, 그들을 위해 새 직원을 채용하며 일의 크기를 키워버렸다.

하나를 운영하며 감당할만한 일거리를 가지고 있다가 지금은 넘쳐나는 일거리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내손에 시설운영의 노하우(도끼)가 쥐어지니 필요한 만큼의 나무를(일과 수입) 베어내는 게 아니라 잘 드는 도끼를 휘둘러 밤늦도록 도끼질만 하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피에르 라비는 '그만 일하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일하느라 휴식과 자유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고 있었다.

내가 쫒고 있는 것이 바로 '더 많이'라는 잘못된 신념 탓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사실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삶은, 내게 남은 삶은 일만 하기에는 너무 짧게 남았다는 것을.

그래서 일을 점점 줄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마음먹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의 나는 여전히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몇 년 뒤에 은퇴할 것이라는 'until 각본'을 손에 쥔 채로 말이다.


피에르 라비의 가족들은 조화로운 삶을 위해 음악을 즐긴다.

그들의 음악처럼 나의 조화로운 삶에는 독서와 글쓰기가 필요하다. 

계절이 바뀌는 동네에서의 느긋한 산책은 말할 것도 없다. 

시설을 하나만 운영할 때는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닐지라도 짬짬이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며 가끔 웃을 수도 있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탓에, '더 많이'의 올가미에 묶인 지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한다. 

읽을 책들 위에는 먼지가 쌓이고 브런치는 컴퓨터조차 켜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웃음이 내 얼굴에서 사라졌다.


일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다. 

지친 나는 일속에서 더 이상 보람과 감동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피에르 라비의 충고를 들어야 할 때인 것 같다.

더 멀리 떠밀려 가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지.

'더 많이'가지려 하지 말고, '더 많이' 일하지 말고, '더 많이' 자유하기 위한 나의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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