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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ug 19. 2021

화(anger)를 만나다.

몸과 마음이 지치자 화(anger)가 찾아왔다.

저녁밥 먹을 시간이다.

할아버지 한분이 보이질 않는다. 이층 방에도 없다. 두리번거리던 내 시야 속에 할아버지가 들어온다.

뒷마당이다. 할아버지는 뒷마당 닭장 뒤편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아마도 닭장 뒷벽에 쌓아놓은 합판과 나무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쌓고 있는 듯하다.

하지 말라고 수십 번도 더 말했건만 여전한 그를 보며 내 안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화씨 100도에 근접한 이 더운 날씨에, 그렇게 바깥일을 하지 말라는 우리의 잔소리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꾹꾹 참았던 화가 터져버린다.

게다가 집안에서 소리쳐 불러봐야 귀 어두운 할아버지가 들을 리 없으니 데리러 나가야 한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뒷마당으로 나가던 나를 남편이 다급하게  불러 세운다.

"제발 화내지 말고, 아무 말 말고 그냥 데리고 들어와."



직원 두 분이 한국 여행을 떠난 지 한 달째였다.

예정되어있던 직원 공백이었지만 도무지 그들의 대타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코로나로 인해 지급된 실업급여와 생계보조금이 사람들의 노동 의지를 사라지게 했다고는 하지만 예전에 없던 구인난이었다. 게다가 한 달 남짓의 임시직을 누군들 관심이나 가질까..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임시직 한 분을 겨우 구했다. 

하지만 한분 한분 세심하게 케어해야 하는 역할은 온전히 우리 부부의 몫이었다.

게다가 90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남녀 내외를 하려는 할머니들에게 케어기버는 나여야 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일과는 9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처음 한주는 "까짓것, 못할 것도 없다."라고 생각했다.

한분 한분 케어의 루틴을 정하고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이 일들을 언제 다하냐???ㅠㅠㅠ"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속 바윗덩어리의 크기만 더 커질 뿐이었다.

아침해가 뜨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는 것처럼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런대로 할만했다. 이대로라면 너끈하게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두 번째 주에 접어들자 안 쓰던 근육들이 욱신거리며 무리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허리와 엉치뼈 근처의 통증을 달래기 위해 전기 통증치료기까지 동원되었다.

잠자리에 누우며 치료기의 패드를 네 개나 붙이고 타이머를 1시간에 맞추어놓는 일상이 이어졌다.


삼 주째가 되어가자 이젠 절반이나 지났다는 생각에 집중하기로했다. 그래야 겨우 버틸 힘이 생겼다.

어려움도 이렇게 하루하루, 한주 한주 견뎌내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마음이 살포시 솟아올랐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할머니 한분이 넘어졌다.

아침 케어를 위해 들어가 맞닥뜨린 낙상의 모습은 애써 만들어낸 용기와 자신감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지친 몸만큼 그즈음부터 마음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의 위험신호는 두통과 불면증으로 나타났다. 두통은 진통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불면증은 제멋대로 있다 없다를 반복하며 그다음 날의 일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때 무의식 깊이 감춰져있던 화(anger)가 찾아왔다.

지친 몸과 평정이 깨진 마음을 틈타 들이닥친 화는 그 대상을 구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 임시 케어기버를 못 찾은 것이 내 탓만은 아니잖아!),

짬짬이 바깥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그가 안 하면 잔디는 누가 깎을 건데??)

저녁마다 틀니 빼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할머니에게 짜증이 나고, 더운 날씨에 나가 움직이다가 몸이 굳어버린 할아버지에게도 화가 났다.( 레지던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권리가 있다. 다만 그로 인한 그들의 위험은 내 몫이다. 젠장..)

평소 같으면 "왜 지금 바깥에 나가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고 "왜 틀니를 빼고 자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황에서는 그냥 짜증과 화만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그러던 중이었다.

내 말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할아버지에게 화가 폭발한 것은...

화는 속수무책으로 나를 휘감았다.

남편의 다급한 제지가 없었으면 어쩌면 할아버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걷기의 힘이라니!!

할아버지가 있는 마당 끝까지 걸어가며 '화'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나 자신을 잠시 보았다.

그러자 '화'가 어느 순간 '절망과 허탈'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정도에 이렇게 격노의 감정을 느끼다니...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하다니..."


하지만 이런 감정의 변화는 나에게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주었다.

화(anger)와 내가 조금 분리되는듯했다. 아마도 씩씩거리며 걸어가는 동안 내 마음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던 긴장의 화살이 허공으로 쏘아져버렸나 보다.

그렇게 화가 들어차 있던 가슴이 "그저 피곤함"으로 대신 채워졌다. 

화도 에너지가 있어야 내는 법이니까.


물에 젖은 솜처럼 피곤한 나는 글자 한 줄 읽기도, 쓰기도 힘들었다.

모든 일과가 끝난 뒤 레지던트들과 함께 앉아(아니,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재미있다는 드라마를 멍하니 따라가는 것, 그것이 내게는 몸과 마음의 휴식 시간이었다. 

내 일이 아닌 타인의 일, 아니 허구의 일에 시선을 주며 내 머릿속을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내가 부정적 에너지로 꽉 찬 내 머리와 가슴속을 쓸어내고 청소하는 방법이었다.

피곤에 절은 몸과 화에 지친 마음이 선택할 수 있는 휴식의 방법은 내겐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드라마 속 동네 아지트, '정희네'를 만났다.

사는데 지친 영혼들이 모이는 곳, '정희네'.

그곳에 모여 술잔을 높이 들고 '휘게'(후계와 휘게를 매치시킨 작가의 재치가 놀랍다.)를 외치는 그들 속에서 나는 언뜻 내 모습을  보았다.

그들처럼 '휘게'를 외치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내 비워진 가슴속에 가득 차올랐다.

소박하고 평안한 일상에의 바램은  내 지친 몸과 마음속의  '화'를 다독이며 어루만졌다.


"이제 한주 남았잖아. 한주 뒤면 다시 예전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나의 휘게(Hygge)도 그리 멀지 않았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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