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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an 27. 2022

선물을 보내는 마음

과자, 떡 선물의 그 특별함에 대해

내 외삼촌은 매년 설날 즈음이면 과자 종합 선물세트를 보내셨다.

큼지막한 박스 안에 여러 가지 과자로 가득 차 있던 과자상자 선물은 청년기를 우리 집에서 보냈던 삼촌이 고물고물한 어린 조카들에게 보내는 마음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명절이 되면 삼촌은 대학생활 동안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우리 엄마와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했다.  이제 겨우 청년 장교이거나 사회초년생이었던 삼촌은 잠시 고심을 했을 것이다. 넉넉지 않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서도 모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선물. 

그것은 여섯이나 되는 조카들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선물, 바로 과자 종합선물세트였을 것이다.

이제 막 텔레비전에서 "해태, 해태, 신용 있는 상표, 해태, 해태 정다운 선물~~"광고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쏟아져 나오던 과자들. 그것들이 상자 가득이 담겨있던 선물세트는 말 그대로 '받는 즐거움을 한껏 안겨주는 선물'이었다. 그날만큼은 엄마도 일일이 나누어주던 가족규칙을 깨고 우리들이 원하는대로 한두 개씩 집어 먹도록 허락하셨었다.

종종 '어린 왕자'와 같은 좋은 책들과 잡지들을 보내주던 외삼촌이 우리 형제자매들의 기억 속에 '과자 선물'이라는 동화 같은 삶의 순간을 선물해주었었다.



박 선생님은 건강상 일찍 퇴직을 하고 재취업을 하신 전직 공무원이셨다.

복지관 관리운영팀에서 청소를 담당하셨던 박 선생님은 그 정갈한 성품만큼이나 하는 일도 빈틈이 없고 부지런하셨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4층 건물을 물걸레질까지 다 마치고 출근하는 우리를 맞으셨던 분.

언젠가 출근한 우리들은 각자의 책상 위에 알 수 없는 노트 한 권씩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A4용지를 반으로 접어 검은색 끈으로 묶은 노트는 연습장이나 책상용 메모장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복사하면서 우리가 생각없이 무분별하게 만들어낸 이면지들로 만든 것들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모두가 불필요한 복사기 사용이나 이면지 남발을 각별히 조심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박 선생님이 60살이 되자 말리는 우리를 뒤로하고 퇴직하시고 고향 신안으로 내려가셨다.

정확하게는 신안도 아닌 신안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어느 외딴섬.

그곳에서 선생님은 예전에 살던 집을 고쳐 한가하지만 품격 있는 노년을 시작하고 계셨다.

"박 선생님 잘 계신대? 아프신 데는 없고? 뭐 필요하신 것은 없대?"

종종 안부를 주고받는 같은 부서의 젊은 직원에게 선생님의 근황을 물었더니 잘 지내신다고, 하지만 섬이라 간식 사 먹을 가게가 멀어서 조금 불편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래?, 그러면 우리가 보내드리면 되겠지. 나는 점심시간에 그 젊은 직원과 함께 근처의 마트로 갔다.

그리고 평소 그분이 좋아하셨던 초코파이와 양갱 같은 간식을 빈 라면박스 하나에 가득 채워 넣었다.

주섬주섬 맛있어 보이는 과자들을 넣으며 우편물로 전해받을 그 상자에 우리들의 마음도 함께 채워 넣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우리의 명절, 설날이다.

다른 나라에 살면서 음력 새해를 챙긴다는 것은 뭔가 일상의 불일치를 초래하는 일이지만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한쪽 벽에 걸려있는 달력에 시선이 가고 만다. 머릿속 깊이 박힌 설날의 경험이 재소환되기 때문이다. 

내 설날의 기억은 떡으로부터 시작된다.

방앗간에서 막 쪄내서 리어카에 싣고 오던 떡을 담은 나무 함지들. 기다란 가래떡, 갈색 나무 함지 속 반절 넘게 차있던 인절미, 팥시루떡. 

세월 좋을 때 엄마는 정미소집 맏딸답게 종류별로 푸짐하게 떡을 했었다.

그 떡들은 떡국떡으로 썰려서 설날 아침 떡국 쑤는데 들어가기도 했고 인절미와 시루떡은 겨우내 우리 집 온 식구의 군입거리가 되곤 했다.


내 초등학교 시절의 일들이니 이미 반백년이 넘은 기억들이지만 내 마음속 설날은 그렇게 해마다 떡들과 함께 찾아온다. 설날을 며칠 앞둔 오늘, 나는 문득 그런 기억들과 넉넉한 마음을 이 세상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어린 시절, 까치 까치 설날을 함께했던 형제자매들에게, 

남편이 어린 시절을 함께한  동생들에게, 

요양원에서 명절을 보낼 시부모님에게.

동네 방앗간에 주문해서 뜨끈뜨끈한 떡 상자를 직접 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불가능하다.

부득불 나는 전화로 한국에 있는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아 떡을 주문하고 택배 발송하기로 한다.

큰 나무 함지에 담긴 떡은 아닐지라도, 김 설설 나는 막 쪄낸 떡은 아닐지라도 그들이 내 기억 속 넉넉한 설날의 풍경을 함께 기억해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 즈음부터 내 셀폰의 카톡은 설날 인사로 도배가 될 것이다.

근사한 디자인의 그림들과 좋은 글귀들. 설날은 인터넷을 통해 멀리 이곳까지도 넘치게 전달될 것이다.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그래서 더 공허하고 더 진한 외로움이 밀려왔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 설날엔 조금 다를 것 같다.

설날 하루 이틀 전에 도착할 택배를 받아 들고 그들은 떡과 함께 전달된 내 마음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떡 한입을 베어 물으며 넉넉해진 마음을 카톡 메시지에 담아 다시 내게 보낼 것이다.


설날에 외삼촌이 보낸 과자 상자를 열며 느꼈던 그 기분, 

섬마을의 선생님께 과자 상자를 보내면서 느꼈던 그 기분, 

오늘 한국의 가족들에게 떡을 보내며 느끼는 이 기분은 바로 내가 '부자'가 된 느낌이다.

살면서 가끔 부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최소한 설날만이라도 부자의 마음으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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