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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Feb 17. 2022

어느 햇볕 좋은 날의 나들이

쉼이 필요해? 그러면 사과 사러 가야지.

차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새파랗다. 스쳐 지나치는 나무들도 여전히 잎새 하나 없는 겨울나무들이다. 그런데도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은 겨울의 그것이 아니다. 나는 새파란 하늘과 살갗을 간질이는 햇볕에 나를 온전히 맡긴 채 머리를 뒤로 기댄다. 차가 서쪽을 향해 달리는 동안 나는 계속 그렇게 겨울 속 봄볕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햇볕 좋은 날, 사과를 사러 과수원을 향해 달리는 시골길 드라이빙은 지친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휴식 중 하나였다.


지난 며칠간 '내 삶의 한가운데'에서 보낸 시간들로 나는 안 그래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던 내 '에너지 항아리'의 바닥을 기어이 보고 말았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무기력하게 보내는 하루. 머릿속에서는 이러면 안 되는데를 되뇌면서도 움직여지지 않는 몸. 이럴 땐 무조건 쉼이 필요하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일들이었다.

만 삼 년을 우리 집에서 사셨던 분이 돌아가셨다. 그동안 말기 치매로 가족도 잘 알아보지 못했던 분이 지난 몇 달간 참 편안하게 계셨다. 도저히 나을 것 같지 않던 엉덩이의 욕창도 기적처럼 나은채, 돌보는 이들과 눈으로 말하고, 끼니때마다 죽 한 그릇씩을 너끈히 비우며 안정적인 바이탈을 보여주셨다. 

그동안 몇 번의 고비를 넘기던 할머니는 끝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고, 점점 죽 한두 스푼도 넘기기 힘들어하셨다. 그렇게 일주일. 주말을 맞아 할머니를 방문한 아들 가족에게 할머니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무엇인가 말하려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의식 있는 모습이 되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시작된 할머니의 임종.

심하게 끓기 시작한 가래와 보통의 두배에 해당하는 맥박수와 호흡수. 우리는 호스피스 센터에 시시각각으로 연락을 취하며 모르핀과 로라제팜 투여량을 늘려갔다.

뒤이어 급하게 다시 방문한 가족들과 호스피스 간호사. 

힘겹게 숨을 쉬는 어머니를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던 아들은 담배를 핑계 삼아 자주 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봤다.


아들 부부와 대화 중 나는 불교신자였던 할머니가 미국에 와서 성당에 잠시 나갔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영세 없이 미사 참례만 했었다는 할머니를 위해 급하게 내가 임종전 대세를 드리기로 했다. 엉터리 신자인 내가 해본 적도 없는 대세를 주려고 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할머니를 위해 나는 무엇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던가보다. 그렇게 꺼내 든 가톨릭 기도서를 들고 나는 평신도로서 임종전 대세를 드렸다. 기도중 쏟아지는 눈물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어떻게 마쳤는지 모르겠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돤 프로세스는 만 아홉 시간이 지나면서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있었다.

140에 육박하던 맥박수도 30 정도로 떨어졌다. 그러면서 나타난 간헐적 무호흡의 상태.

그런 호흡은 때가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아들 내외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엄마, 한평생 수고하셨어요. 사랑해요.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나요...."

그렇게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그녀를 돌봤던 우리들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셨다. 

엉덩이 골절로 마지막 몇 년을 고생하셨던 것에 비하면 고통 없고 평화로운 임종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일은 아직 남아있었다. 할머니의 바디를 보내드리는 것. 호스피스 간호사가 방문해 할머니의 죽음을 선언하고 장례식장에 연락을 취하고 나서도 세 시간이 지나 할머니의 침대는 비워졌다.

그렇게 또 한 생명의 거품이 터지고 파도에 휩쓸리며 검푸른 영혼의 바다로 돌아갔다.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만 이틀 동안의 집중과 긴장은 우리 모두의 심신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산자는 산자의 일을 해야 하는 것. 우리는 할머니가 남긴 옷가지와 소지품들을 정리하고 그동안 쌓인 서류들을 마감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 집 레지던트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레지던트가 되었다. 

내가 드린 대세가 유효했기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 일상을 시작한 다음날이었다.

할머니 한분이 저녁식사 후 이상한 컨디션을 보였다. 갑작스러운 혈압 저하, 그리고 400이 넘는 혈당치. 이런 상태면 무조건 응급실행이다.

전날 임종의 늪에서 채 빠져 나오기도전에 우리는 다시 할머니를 위해 911을 불렀다. 서류를 카피하고, 구조요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의식이 있는 할머니에게 병원에 다녀오셔야 한다고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늦은 밤까지 이어진 가족들과의 의사소통.

그렇게 우리는 할머니 한 분을 병원 응급실로 보내는 또 다른 힘든 밤을 보냈다.




연이어 벌어진 일들은 우리를 극도로 고갈시켰다. 멍하고 무기력한 상태. 거기에 늘 있는 자잘한 문제들.

하지만 이미 번아웃 상태의 우리는 작은 일들에도 쉽게 걸려 넘어졌다.

그때 들려오는 내적 속삭임. "잠시 쉬어야 해"

마침 한겨울의 징검다리 같은 포근한 날이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그 사이로 부서져 내려앉는 햇살들.

이런 날은 아무 생각 없이 나서야 한다. 남편과 나는 다른 일들을 미뤄두고 차에 올랐다. 우리가 나서는 핑계는 사과를 사러 과수원으로 가는 것, 하지만 우리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안다. 그저 잠시 쉼이 필요해서 나서는 길이라는 것을.


겨울에 찾아갈 과수원은 사실 없다. 정확하게는 과수원에 딸린 저장창고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주변의 이웃들이 사다 먹을 수 있도록 창고 입구에 매대를 마련하고 1/2 부셀씩 팔고 있다. 가격은 물론이고 신선도가 남다르다. 복숭아나 사과 철이면 우리의 드라이빙을 부추기고 그렇게 쉼과 넉넉함을 주는 곳이다.

그날도 우리는 뒷 좌석이 차도록 넉넉하게 사과를 샀다. 

무엇보다도 한 시간 이십 분 거리의 드라이빙 동안 나의 온몸은 따사로운 햇볕으로 재충전되고 파란 하늘로 과열된 뉴런들을 식힐수 있었다. 어쩌면 맛있는 사과는 덤 일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

거래하고있는 약국에 들러 우리 집 어르신들의 약 몇 가지를 요청하고 이미 준비된 버블팩들을 받아 들었다. 그날따라 약국에는 주인 약사 부부와 여러 직원들이 분주했다. 

문득 바쁜 그들에게도 사과를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을 옮겨 한창 분주한 주인 약사 부부에게도, 아이들 셋을 씩씩하게 키워내고 있는 혼자된 C약사에게도, 늘 친절하게 고객들을 맞고 있는 모든 직원들에게도. 

내가 건넨 사과가 바쁜 일과 후 그들에게 작은 쉼과 재충전의 에너지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다섯 봉 지중 세 봉지를 건네는 넉넉한 마음을 냈다.


그렇게 그날의 드라이빙은 따사롭고 평화로웠으며 이미 내 마음속 항아리는 다시금 채워져 있었다.


하퍼스페리의 파란하늘
하퍼스페리에서 바라본 쉐난도강


위에서 내려다본 하퍼스페리 올드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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