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건강하게 우리곁에 계셔주시길...
나에게는 이제 구순이 되시는 은사님이 계신다.
한국전쟁 중에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미국유학까지의 학업과 학위를 성취하고 평생 혼자 사신 분이다.
공부할 때는 학문적 기준이 너무 엄격하셔서 제자들이 모두 어려워하던 분이셨는데 은퇴 후 점점 활동을 줄여가며 노년의 삶을 살아가시는 은사님을 보고 있노라면 은퇴식에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하느님은 내게 가족을 이루지 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선택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나에게 있어 가족은 바로 당신들, 나의 제자들입니다."
평생 제자들을 가르치고 사회사업 실천가로서의 삶도 놓지않으셨던 그분의 삶은 말그대로 헌신의 삶이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노년의 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계신데 병고를 마주한 그분 곁에 피붙이가 없다는 사실이 제자들을 당혹스럽게한다.
그 제자들 중 한 사람인 나는 은사님에 대한 걱정이 많다. 아마도 나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점점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해지는 시기에 접어드는 은사님 노년의 삶이 걱정스럽다.
성탄 즈음해서 보내주신 안부 편지에 은사님은 허리통증이 있다고 하셨는데 답장을 쓰며 아무래도 올해는 한국에 한번 다녀와야지 마음을 먹는다.
위중한 상태의 시부모님이나 병고에 시달리는 은사님을 바라보며 또다시 맞이하는 새해는 동녁을 물들이는 붉은 여명만큼이나 묵직하다.
교수님,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밤이 저물어갑니다.
방금 전 스텝분들과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성탄일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많은 가족들이 부모님들을 찾아뵈었고 다양한 그들을 보면서 만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가족은 명절을 맞아 부모를 찾아와서 떠들썩하게 굴며 오히려 다른 분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떤 가족은 십 년 전 건강했던 할머니의 동영상으로 보여주며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저녁 늦게 방문한 딸이 못 삼키는 문제를 갖고 있는 엄마를 붙들고 하염없이 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스트로크로 치매가 온 할머니는 말하는 것도, 삼키는 것도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지금처럼 못 드시면 조만간 호스피스가 오더 될 것이고 그러면 머지않아 할머니는 하늘의 별이 되고 말겠지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딸은 그저 엄마를 붙들고 울기만 했습니다.
저는 그 딸을 다둑이면서 아직 시간이 남아있음을, 아직 엄마를 쓰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저의 시부모님들도 그 분과 비슷한 상황이랍니다.
시아버지는 위중한 상태로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한답니다.
시어머니는 얼마 전 두어 주 입원을 했다가 엊그제 퇴원을 한 상태입니다. 치매에 췌장에도 문제가 있답니다.
두 분을 돌보고 치료하는 비용을 감당하고는 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같습니다.
남편은 연초의 바쁜 일이 정리되고 나면 두 분을 뵈러 한국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남편에게도 살아계신 부모님을 어루만지고 안아드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엄중한 일을 앞두고 마음 무거워하는 남편에게 제가 해줄수 있는 말은 "그저 감당할 수밖에"뿐입니다.
제가 대학 1학년때와 삼십 대일 때 돌아가신 저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 일찍 가신 것이 늘 한스러웠는데 지금 남편을 보면 치매와 병고에 시달리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에 못지않게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노인 돌봄 일을 하면서 그동안 많이 단련되어서 이 정도인듯합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마음 준비 없이 닥친 부모님 돌봄 일을 감당하느라 버거워하는 모습들입니다.
남편이 한국을 다녀오고 나면 저도 한번 시간을 내 보려고 합니다.
5월 중에는 큰아이 부부와 여행을 가기로 되어있어서 5월 이전이거나 그 이후가 될 것 같습니다.
일정이 잡히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십 대부터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서 사실은 손가락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답니다. 하지만 조심하면 특별히 통증이 없어서 견딜만한데, 허리는 아니랍니다. 조금만 무거운 것을 들어도 곧 문제가 생깁니다. 그동안 한의원 신세를 진적이 수도 없습니다.
해서 최근에는 아침마다 네댓 가지 스트레칭을 합니다. 두어 달 되었는데 평소에 느끼던 허리 통증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교수님 말씀하신 허리통증도 치료와 운동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교수님이 다니시는 짐의 트레이너에게 허리 유연성과 통증완화를 위한 스트레칭을 물어보면 어떨까요?
제가 하는 것은 변형된 요가 스트레칭인데 해볼 만하답니다.
한국에는 통증 클리닉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허리통증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고 통증클리닉의 도움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제가 미끄러운 눈길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두 시간 걷고는 꼬리뼈를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폭설로 차가 다니지 않아서였는데 꼬리뼈가 너무 아파 의자에 앉지도 못하다가 통증 클리닉의 스테로이드 주사 후 금방 회복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쉽게 클리닉을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의 의료 환경이 이럴 때는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땐 멀리 있어서 교수님께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 형편에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아무쪼록 빨리 쾌차하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한국 날씨가 폭설과 강추위로 어르신들에게는 위험천만인듯합니다.
날씨가 풀리고 미끄러운 길이 없어질 때까지 직접 운전하시거나 외출하시는 것은 지양하시면 좋겠습니다.
이곳도 많이 춥습니다.
코로나뿐이 아니라 독감과 호흡기 질환환자가 넘쳐나고요.
이번 겨울 잘 보내실 수 있도록, 늘 건강 유지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봄에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릴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오늘은 이만 마칠까 합니다.
미국에서 제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