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식 풍경
야외에서의 예식을 마친 우리는 쌀쌀한 날씨에 서둘러 실내로 들어간다.
피로연이 열릴 공간 앞에 칵테일파티가 마련되어있고 사람들이 술과 음료,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다. 바로 폐백상을 준비하고 신랑 신부 폐백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폐백은 그들만의 새로운 버전이다.
절을 한 뒤 올리는 술도 차로 바뀌어져 있고 절을 받는 범위도 양쪽 집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형제들 간의 맞절까지 확대되어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부모에게는 한국식 절을, 대만의 부모에게는 중국식 절을 한다.
타민족 간 결혼의 융합된 모습인데 썩 괜찮다.
절을 받은 우리도 미리 써놓은 덕담을 읽어주는데 한국에서 온 큰 이모가 메모도 없이 유창한 영어로 덕담을 건넨다. 예전 수출대국 한국의 무역회사 직원이었던 이모답다.
절을 받은 신랑 부모님이 상위의 밤과 대추를 한 움큼씩 집어 신랑 신부가 맞잡고 있는 하얀 손싸개 위에 던져준다. 폐백 진행을 맡은 아이들이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설명한다. 문득 돌아보니 칵테일 파티장 하객들이 두 사람의 폐백 의식을 빙 둘러 서서 지켜보고 있다. 미국 결혼식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받은 밤과 대추수만큼은 아니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생겨나고 그 가족이 번성해나가기를...
이제부턴 즐거운 파티다.
입담 좋은 디제이의 호명에 맞추어 "Mr. & Ms. Lee!!"가 춤추듯 홀 안으로 들어가고 이어서 호명된 가족들이 쌍쌍이 환호성을 지르며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 신랑 신부가 입장한다. 신부는 새하얀 드레스를 새빨간 치파오로 갈아입었다. 중국 신부들은 결혼식에서 세 번 옷을 갈아입는다는데 딸도 드레스와 활옷 다음의 세 번째 옷이다. 한국인 딸을 대만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열심히 운동하며 다이어트를 한 신부의 몸매가 치파오의 잘록한 맵시를 너끈히 소화해내고 있다.
디제이의 멘트에 맞추어 음악이 흘러나오고 신랑 신부가 플로워로 나온다. ED Sheeran의 Perfect이다.
조명이 은은하게 바뀐 가운데 호소력 있는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 I found a love for me. Darling just dive right in, and follow my lead. Well I found a girl, beautiful and sweet. I never knew you were the someone waiting for me...."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어가며 추는 춤에 모두들 가벼운 탄성을 뱉어내며 그들의 로맨스에 물들어간다.
그래, 우리 모두도 저런 삶의 순간이 있었지, 신기루처럼 또는 오로라처럼 피어올랐다가 청춘의 시간과 함께 잦아들었던 그 순간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이 이어지는 동안 홀 안은 말 그대로 마법에 휩싸이고 만다.
몇 사람의 축하 스피치 뒤에 신부와 아빠의 춤이 이어진다.
홀의 한 벽면 스크린에 어린 딸과 러닝 차림의 아빠가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진이 띄워져 있다.
어린 딸이 그렇게 활짝 웃을 수 있도록 함께 하며 아빠의 자리를 지킨 남편에게 지금 이 순간은 일생의 가장 큰 선물을 받는 순간이다.
만화영화 Coco의 sound track인 Remember me가 흘러나오고 아빠와 딸은 서툰 춤을 춘다. 춤이야 서 툴건 말건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아빠는 딸에게 마음을 전한다.
"기억해다오, 내가 멀리 가더라도 널 나의 마음에 안고 갈 거란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매일 밤, 너에게 비밀 노래를 불러줄게.."라는 가사처럼.
신부와 아빠의 춤에 이어 신랑과 신랑 엄마가 춤을 춘다. 화면에는 젊은 엄마와 품에 안긴 어린 신랑의 모습이 있다.
둘은 며칠 전까지의 불편했던 긴장을 털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춤을 춘다. 아들과 엄마는 웃음 섞인 대화를 이어가며 춤을 춘다. 그들의 대화는 무엇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의 웃음으로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이 말랑해진다.
파티가 무르익자 음식이 서빙되기 시작하고 서빙된 접시들이 비워지기 시작할 즈음 디제이가 목청을 높이며 춤판에 모두를 초대하기 시작한다. 춤이라고는 젬병인 나와 남편도 플로워로 나가고 대학 졸업 후 30여 년 만에 춤을 춰본다는 막내이모도 힘든 몸을 일으켜 나가서 흥을 돋운다. 신랑 신부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다시 플로어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춤판은 신랑신부의 젊은 친구들과 직장동료들이 점령해버렸다. 지금은 모두가 흥겨움에 몸을 맡길 시간이다. 하루종일 한복과 드레스를 입고 종종거렸던 나는 기분좋은 피곤이 몰려옴을 느낀다.
파티는 그렇게 밤 9시가 되어가도록 계속되었다.
딸의 결혼식, 그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아빠의 팔짱을 끼고 걸어 들어오던 딸, 편지를 읽으며 가슴 벅차 목이 메던 딸, 둘이 나란히 큰절을 올리던 신랑 신부, 그들의 아름다웠던 First dance, 돌이켜보는 지금 이 순간도 모든 장면이 하나하나 생생하다.
그리고 모든 순간들에 신부의 엄마로서 가슴 벅차고 즐거웠던 기분에 또다시 젖어든다.
신부의 엄마로서 나는 그날 참 감사하고 평안했다.
딸, 나의 딸로 태어나 준 것도, 내가 신부의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게 해 준 것도 고맙다.
내게 그런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해주어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