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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Nov 20. 2022

신부 엄마의 아름다웠던 하루(1)

딸 결혼식 풍경

내가 신부가 되었던 날만큼이나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전날 집 뒷마당에서 리허설 파티를 치러야 했던 탓에 몸이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내 화장과 머리손질이 10시로 잡혀있으니 얼른 챙기고 아이들이 묵고 있는 결혼식장의 호텔방으로 가야 한다. 딸이 부탁한 몇 가지를 챙겨 들고 집에서 20분 거리의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딸이 묵고 있는 방은 신부 전용방처럼 침실과 작은 부엌, 그리고 큰 거실이 있는 방이다. 그 큰 거실의 소파에 이미 화장과 머리손질을 끝낸 들러리들이 앉아있다. 평소 가끔씩 보던 아이들이지만 어여쁘게 화장을 하고 있으니 뉘 집 딸들인지 하나같이 예쁘다.

이제 내 순서. 3-40대 백인 여자들이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들이 권하는 자리로 가서 얼굴을 맡긴다.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볼터치를 하고, 그러다 나에게 눈썹을 붙일 것인지 묻는다.

순간 나는 망설인다. 사실 나는 한 번도 가짜 눈썹을 붙여본 적이 없다. 내 결혼식 때도 붙이려고 애를 쓰다가 "신부님 눈매가 올라가서 눈썹을 붙일 수가 없네."라고 투덜거리는 메이컵 아티스트에게 그만두라고 했었다.

하지만 마침 나를 챙겨보러 온 딸이 완강히 붙일 것을 권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붙여보기로 한다.

나는 눈을 감고 온전히 내 얼굴을, 내 머리를 그들에게 맡긴다. 오늘은 그렇게 물 흐르듯이 흘러갈 생각이다.


화장을 마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다가 결혼식 답례품으로 주문한 떡을 찾아야된다는것을 깨닫는다. 얼른 차를 돌려 떡집으로 가서 떡을 찾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과 떡을 몇 가지 더 산다. 바쁜 중에도 먹는 것 챙기는 생존의 기본 정신은 남아있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내 한복과 드레스를 챙기고 남편의 양복을 챙겨준다. 

한국에서 온 언니들과 동생도 각자 준비해온 옷가지를 챙기고 머리손질을 하느라 분주하다. 

문득 동생의 얼굴을 살핀다. 우리들중 가장 어린 50대의 동생이 가장 힘들다. 미국으로의 장거리 여행에, 3박 4일 서부여행으로 동생은 몸져누운 상태다. 엊저녁 심각하게 참석여부를 의논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참석을 안 한다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핼쑥한 낯빛으로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 동생에게 많이 미안하다. 동생에게 와야 한다고 내 주장만 한 것이 많이 미안하고 두고두고 미안할 것 같다.


최대한 성장을 한 우리들은 빠짐없이 준비물을 챙겨서 식장으로 향한다. 청명한 날씨이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약간 쌀쌀하다. 밖에서 치러질 예식에서는 한복 위에 얇은 카디건을 걸쳐 입어야겠다. 어깨가 훤히 드러난 웨딩드레스를 입은 우리 딸은 춥지 않을까?, 떨리는 데다 춥기까지 하면 어쩌지?, 제법 세차게 부는 바람 따라 내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드디어 예식이 시작되고 있다.

하객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있고 신부 엄마인 내가 가장 먼저 사위 친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식장으로 들어간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말을 하는 사위 친구에게 두 사람이 서로 아끼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모든 친정엄마의 바람을 말한다. 내 뒤를 이어 신랑 엄마와 가족들이 입장해 자리에 앉는다. 나는 알 수 없게 차분해지며 마음이 깊고 넓어지는 느낌이다.



골프장 내 결혼식답게 골프 카트를 타고 저만치서 다가오는 딸의 모습이 보인다. 이어서 아빠와 함께 걸어 들어오는 신부. 세상 모든 신부들이 아름답듯이 활짝 웃으며 들어오는 딸이 눈부시게 어여쁘다. 

그 딸이 팔짱을 낀 아빠의 모습에 시선이 머문다. "당신, 참 애썼네, 이 세상에서 가장 당신을 닮은 딸을 저렇게 키워냈구려."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서로 너무 닮아 어긋나다 끝내는 서로를 너무 사랑하게 된 딸과 아빠의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아빠는 담담하게 딸의 손을 사위에게 건네준다.


주례는 나를 에스코트했던 사위의 친구가 하고 있다. 주례와 신랑 신부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신랑과 신부의 형제자매와 친구들이 들러리로 서있다. 신랑의 들러리로 서있는 사위의 형과 신부의 들러리로 서있는 사위의 누나가 고맙다. 막냇동생의 들러리로 서있는 그들에게도 어서 빨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를, 이런 자리의 가운데에 서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예식의 정점이다.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읽는다.

둘은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의 삶에 상대방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고백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이 결혼에 헌신할 것을 맹세한다. 가슴이 벅차오른 신부가 목이 메어 편지 읽기를 잠시 멈춘다. 그 모습에 엄마인 내 가슴도 벅차오른다. 누군가를 가슴 깊게 사랑한다는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딸의 아름다운 모습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온다.

두 사람의 사랑과 헌신을 확인한 주례와 우리들 모두는 그 둘이 아내와 남편으로 한 가족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날 그렇게 두 사람은 한 가족이 되었다.


(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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