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 다녀와야지 마음먹는다.
이틀 전 한국행 비행기 티켓팅을 했다. 이번엔 무려 한달간이다. 코비드 전에 다녀온 뒤 간만의 한국행이다.
그동안 처음 겪는 전염병의 큰 파고를 넘었고 올해 들어 부쩍 노쇠해진 어르신들의 수발에 밤낮없이 분주한 올해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노련한 스텝들이 자리를 지켜도 어려울 판에 두 분의 스텝이 그만두고 새로운 분들이 들어왔다. 그 소리는 새 스텝들이 다시 익숙해지기까지는 나 역시도 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8개월을 보내고 이제 9월이다. 며칠 전 복잡하게 무엇인가가 메모되어 있던 8월의 달력을 넘기며 마음을 굳히기로 했다. 그래, 가을이 되면 한국에 한번 다녀오려고 했었지... 그렇게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버렸다. 그동안 쉼 없이 흐르는 시간에 '질질 끌려갔다면' 앞으로 두 달은 흐르는 시간의 등에 균형 잡으면서 '올라탈' 생각이다. 마치 파도 위의 서핑보드를 타는 것처럼.
내 삶은 일주일 단위로 지나간다.
풀타임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분들이 어르신들의 일상을 평안하게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식사를 준비하고 먹여드리고, 시간 맞춰 화장실을 다녀오게 하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등등, 내가 일일이 손을 보태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런 일상을 기록하고 약 관리를 책임지고 가족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된다. 하지만 누구 한분 아프기라도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입원을 시키거나 의사와 의논하고 약을 바꾸거나 늘리고 등등 내가 해야 할 일이 갑자기 늘어난다. 다행히 그런 일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풀타임 직원 두 분의 휴무로 파트타임 직원들이 근무를 하는데 매일매일이 아슬아슬한 노인분들을 그분들께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하는 수없이 파트타임들이 일하시는 금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직원들의 신앙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보장해 주는 예배참석 시간등은 온전히 우리의 책임이 된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면 우리의 바쁜 한 주일은 드디어 끝난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아침 새로운 한 주를 맞으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또 하루의 일상을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나도 남편도 60을 넘어섰다는 현타가 왔다.
자칫 넋 놓고 있다가는 80이 넘어서도 자신의 리커스토어로 출근하시는 어떤 선배님처럼, 또는 70대에도 팔리지 않는 가게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선배님 부부처럼 일만 하다가 상노인이 될지 모르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 나섰다. 우리보다 젊고 건강하고 유능해서 우리 일을 우리보다도 더 잘할 수 있을만한 사람을... 그리고 운 좋게도 그런 사람을 찾았다. 마침 자신의 일이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라기보다는 건강을 해치게 하는 일이어서 께름찍하게 생각하던 후배 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와 우리가 돈과 시간을 맞바꾸기로 했다. 매니저로 채용된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일들을 할 것이고 우리는 시간을 갖는 대신 그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게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일을 줄이기로 작정하고 보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 생각난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도 찾아뵈어야 하고, 가끔씩 주시던 안부 메일도 못하고 계신 은사님도 찾아뵈어야 하고, 나랑 같이 늙어가고 있는 자매들 손도 잡아봐야 하고, 은퇴를 앞둔 예전 동료들의 등도 두드려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그들이 있는 나의 고향, 한국에 다녀와야 한다. 팬데믹과 장거리 비행의 부담으로 미루고 미루었던 한국여행을 결심한 이유이다.
여행일정이 잡히니 그저 무심히 흐르던 일주일 단위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아침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는 여행이 잡힌 10월의 한국 날씨는 어떨지 궁금증이 인다.
문득문득 누구부터 만나야 할지, 무슨 일부터 보아야 할지,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런 궁금증이나 생각은 평소의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평소의 일상적 번잡함으로부터 나를 잠시 떼어놓는다.
여행까지는 앞으로 한 달이 못되게 남아있다. 그동안 나를 대신해 관리를 맡아줄 신입 매니저 훈련도 끝나야 하고 힘든 한국여행을 감당할 체력도 길러야 한다.
한주씩 살아지던 일상이 앞으로는 한주씩 여행을 준비하는 일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 뒤엔 한주씩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혀 다른 넉 주가 또 흘러가겠지.
이렇게 내 앞에 놓인 두 달은 끊임없이 이어지던 지루한 일상이 여행으로 채색되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